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
전국 이순신 유적 360곳 답사해 새 책 '난중일기 유적편'에 실어
"이순신 솔선수범 리더십 배워야"
국내 대표적 이순신 연구가 중 한 사람인 노 소장은 최근 새 저서 '난중일기 유적편'(여해)을 냈다.
5년 동안 5만㎞가 넘는 길을 왕복했다.
산과 바다, 육지, 해안, 섬, 성곽, 관아, 누대, 사당, 봉수대….
대부분 '난중일기'와 고지도에만 나올 뿐 때론 지번(地番)도, 가는 길도 없는 곳을
현지의 원로 학자와 주민에게 자문해 찾아다녔다.
"여수 율촌면의 채석장은 전라좌수영을 지을 때 돌을 채취한 곳인데,
비 오는 날 현장을 확인하고 돌아오다가 1.5m 구덩이에 빠져 만신창이가 됐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원균의 패전 이후 시찰을 위해 찾았던 합천의 동산산성은
암벽을 타고 올라간 끝에 해발 1000m쯤 정상에서 깃발을 꽂기 위해 구멍을 뚫은 바위를 찾아냈다.
기쁨도 잠시, 금세 해가 저물어 산을 내려오다 나뭇가지에 옷이 모두 찢기다시피 했다.
그래도 합천에서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 중 숫돌을 채취하고 무 농사를 지은 현장을 찾아내는 등
적지 않은 성과를 얻었다.
이토록 많은 '이순신의 흔적'들을 찾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노 소장은
"임진왜란 7년 전쟁 동안 갖은 고초와 역경을 겪으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국난을 극복한 현장이기 때문"
이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이 곧잘 '이순신'을 언급하는 세태에 대해 그는
"이순신 장군의 희생정신과 배려·겸양의 자세 없이 정치적 이득을 얻기 위해 마구잡이로 인용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순신'이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를 몇 가지로 설명했다.
"이순신은 모두가 '누군가 하겠지'라며 수수방관할 때 '이건 내 일'이라며 팔 걷고 나선 인물입니다.
혼자 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따르도록 리더십을 발휘했죠.
그냥 열심히 한 게 아니라
오직 '승리'라는 결과가 나오도록 철저한 플랜을 마련해서 성취한 사람이기도 하지요.
성공하지 못할 모든 계획은 집착하지 않고 과감히 버렸습니다."
배가 12척만 남았을 때 '이걸 가지고 싸워보라'고 부하에게 지시한 사람이 아니라,
그런 상황에서도 이길 수 있도록 최적의 작전을 직접 짠 사람이 이순신이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