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빌리지 않았다. 당당하게 내 능력을 인정받았다!
2000년대 초반 한 대기업 카드사의 카드론 광고 문구였다.
지하철 역사에서도 신용카드 가입이 가능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알다시피 몇 년 후 신용 불량자가 쏟아졌다.
댄 애리얼리의 '부의 감각'은
돈에 대한 우리의 비이성적인 인지적 편향(심리적 회계, 매몰 비용 등등)을 파헤친 책이다.
'이 커피는 하루에 4달러입니다'라는 말과 '
이 커피는 1년에 1460달러입니다'라는 말은 같은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비슷한 예로 사람들은 은퇴 뒤에 현재 소득의 80퍼센트만으로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고 대답하지만,
현재 소득 가운데 20퍼센트가 줄어들면 제대로 살지 못할 거라고 응답했다.
같은 말에 반응이 왜 이렇게 다를까.
가령 100달러짜리 티셔츠에는 눈이 가지 않지만
200달러짜리 티셔츠 옆에 '파격 50퍼센트 세일!'이란 문구가 붙어 있다면 눈길이 간다.
이 역시 심리적 편향과 연관 있다.
과거의 가격이 '닻'(앵커링 효과) 역할을 하며 가격이 싸 보이기 때문이고,
다양한 선택지 중에서 세일 문구가 눈에 띄어 선택 폭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격표에 무엇이 쓰여 있든 100달러는 100달러일 뿐이다.
저녁으로 뭘 먹을래, 라고 묻는 것과 치킨과 피자 중 뭘 먹을래, 라고 묻는 건 어떤가.
사람들은 대부분 둘째 질문을 더 좋아하는데, 머리를 더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우리 뇌는 '심리적 지름길'을 좋아한다.
이처럼 손쉬운 선택을 선호하는 뇌의 경향 때문에
우리는 애초에 사려던 물건은 잊고, 1+1이나 반값 세일, 미끼 상품에 휘둘리는 것이다.
"만약 아인슈타인이 물리학자가 아니라 경제학자였다면
그는 그 유명한 상대성 이론을 E=mc²이 아니라
'100달러〉200달러 반값 할인'으로 바꿨을 것이다."
심리학을 꿰뚫은 마케터와 광고업자들에게 매번 지고야 마는 내겐 잠언 같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