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포 놓다'는 뜻의 블러핑(bluffing)은 카드 게임의 묘미다. 고도의 심리전과 배짱으로 자신보다 높은 패를 잡은 상대방을 굴복시킬 때 짜릿함은 비할 바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냉철한 상황 판단이 뒷받침되지 않은 블러핑은 말 그대로 '무모한 허세'일 뿐이다. 특히 블러핑 치고 있는 게 상대방 눈에 뻔히 보이면 게임은 끝이다. 한두 번은 성공할지 몰라도 결국 큰코다친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부동산업자 시절 블러핑류(類)의 거래 협상 기술로 큰 성공을 거뒀다고 자랑해왔다. 1980년대에 플로리다 '마러라고 리조트'나 초호화 요트 '트럼프 프린세스'를 온갖 기술을 동원해 최초 가격에서 반의반도 안 되는 헐값에 손에 넣었다고 한다. 그즈음 '거래의 기술'이란 책도 썼다. 하지만 미 언론에 따르면 트럼프는 이 책을 내기 전후로 10년간 카지노와 호텔, 아파트 등 핵심 사업에서 11억달러(약 1조3000억원) 넘게 손실을 봤다. '협상의 달인'이라는 자랑에 거품이 많다는 얘기다.
▶대통령이 된 이후 트럼프의 블러핑 무대는 전 세계로 확장됐다. 그는 주요국에 수십% 관세 폭탄을 일방적으로 부과했다가 양보를 받아내면 절반으로 깎아주는 식으로 판을 흔들었다. 작년 김정은과의 첫 회담을 앞두고도 갑자기 '회담 연기'를 발표했다가 북이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자 하루 만에 철회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전임 대통령들과 다른 협상 기술로 미국에 큰 성공을 안겼다"고 선전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트럼프가 1년 넘게 가장 공을 들여온 미·중 무역 협상에 대해 언론과 시장은 '시진핑의 판정승'이라는 평가를 일제히 내놓았다. 협상은 중국의 미 농산물 구매와 미국의 추가 관세 인상 보류 등 일부 조건을 주고받는 '스몰딜'로 일단 휴전했는데, 트럼프가 호언장담해왔던 것과 달리 중국이 양보한 게 거의 없다. 재선을 앞둔 트럼프가 경제에 부담을 주는 추가 관세 카드를 쓰지 못할 것을 중국이 간파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트럼프는 "위대한 합의"라고 주장했지만 그 허세를 믿는 사 람은 별로 없다.
▶트럼프의 공갈 허풍식 협상술이 이제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억지를 부리고 거짓말을 해도 '미국 대통령'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던 상대방들이 이제 대처법을 알아가고 있다. 이란과 북한은 트럼프의 허세를 파악했다. 미국 대통령의 말이 힘과 권위를 잃으면 세계 곳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쿠르드족의 위기가 보여주고 있다. 남 얘기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