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魚友야담]
사골 칼국수를 앞에 두고 선배는 겸연쩍어하고 있었습니다.
함평 출신의 386세대인 그는 현재 글로벌 자산운용사의 한국지사 대표.
성문종합영어를 호미 삼았던 산골 출신이지만,
특유의 근면함으로 해외파 네이티브들을 경쟁에서 물리친 입지전적 인물입니다.
그가 쑥스러워한 이유는 자신의 대학생 딸이 싱가포르 투자 회사에서 인턴을 하고 있다는 것.
처음에는 딸이 똑똑해서 자기 힘으로 외국 기업 인턴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최근 사태를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
자신이 운용사 대표가 아니었다면,
그 싱가포르 회사가 딸을 인턴으로 뽑았겠냐는 새삼스러운 자각(自覺)이었습니다.
형님은 표창장을 위조한 것도, 법무부 장관도 아니라고 위로한 뒤 함께 웃었지만, 찜찜함은 남았습니다.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를 통과한 대한민국은 이제 조금 다른 신분 사회로 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최근 프랑스 현지에서 신간 '자본과 이데올로기'를 출간한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논문 중에
'브라만 좌파 대(對) 상인 우파'가 있습니다.
'21세기 자본'으로 스타 학자가 된 이 불평등 연구의 전문가는 이런 주장을 합니다.
유럽과 미국에서 정치는 이제 두 부류 엘리트만의 스포츠로 고착됐다고.
인도 신분제도인 카스트에서 브라만은 지적 기능을 수행하는 지식인·사제 계층입니다.
따라서 이 논문 제목을 쉽게 번역하면 '지식인 좌파 VS. 부자 우파'가 되는 셈이죠.
부자 우파야 그러려니 하지만,
이제는 미 민주당이나 영 노동당조차도 더 이상 가난한 사람들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게
피케티 주장의 핵심입니다.
겉으로는 그러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자기들 지식인 계급만 대표하고 있더라는 것이죠.
정치는 최상류층과 (중)상류층의 싸움이지, 저학력·저소득층은 갈수록 배제되고 있다는
실증적 분석이었습니다.
지리멸렬하게 버티는 법무부 장관과 그 가족에 대한 비판이
이 글의 목적은 아닙니다.
좌우 진영 논리나 비리와 위선의 차원을 넘어,
이제는 한국 사회 역시 신(新)계급 사회로 진입했다는 공공연한 자각을 하게 됩니다.
대학을 다닌 86세대와 대학을 다니지 못해서 8로 시작하는 학번이 없는 6세대의 이해관계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조국 사태가 드러낸 또 하나의 '벌거벗은 임금님'은 바로 이 대목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