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경기 침체를 우려하는 가운데 유독 환하게 웃는 나라가 있다. 한때 이탈리아(Italia), 그리스(Greece), 스페인(Spain)과 함께 '재정 적자가 넘쳐나는 돼지들(PIGS·피그스)'로 조롱받던 포르투갈(Portugal)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와 막대한 재정 적자의 영향으로 포르투갈은 2010년 전후로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4%까지 떨어지고 실업률은 17%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다른 '피그스'들이 여전히 재정 적자에 허덕이는 사이 포르투갈은 빠르게 환골탈태했다.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2.8%를 기록했고, 780억유로(약 102조원)의 구제금융도 조기 상환했다. 실업률은 6.7%까지 떨어졌고 올해는 40여년 만에 균형 재정을 달성할 전망이다.
이런 회생에는 저유가와 글로벌 관광 호황이 호재로 작용했다. 하지만 외신과 전문가들은 포르투갈의 실용적 경제 정책에 더 주목한다. 정치적 반발에도 꾸준히 재정 긴축 기조를 유지한 동시에 외국인 이민·투자를 적극 유치한 게 큰 효과를 냈다는 평가다.
2011년에 집권한 중도 우파 사민당 정권은 2012년부터 50만유로(약 6억5000만원) 이상 부동산을 구매하거나 직접 투자한 외국인에게 장기 체류 비자를 발급하는 '골든 비자' 제도를 도입했다. 덕분에 돈 많은 외국 부유층이 대거 들어와 이 제도로만 지난해까지 30억유로(약 4조원)를 유치했다. 이들이 부동산을 구입하고 창업에 나서자 외국인 직접투자(그린필드 FDI)는 근 3년간 유럽 국가 중 가장 빠른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15년 극좌파와 손잡은 중도좌파 사회당이 정권을 잡았지만, 사회당은 전 정권의 경제 정책을 크게 흔들지 않았다. 개정된 국적법으로 500여년 전 포르투갈에서 추방됐던 이베리아계 유대인의 후손 1만여명에게 포르투갈 시민권을 부여할 정도로 이민·투자 유치에 더 적극적이다. 스타트업과 외국 기업 유치를 위해 정부가 2억유로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는 등 관광업에 편중된 산업 구조 개선에도 적극적이다.
안토니오 코스타 포르투갈 총리의 경제정책에 잡음이 없진 않다. 좌파 진영은 "재정 지출을 더 늘리라"며 불만을 터트리고, 우파 진영은 코스타 총리의 증세를 문제 삼고 있다. 하지만 코스타 총리는 "현 정권하에 경제가 좋아진 건 정치적 논쟁거리가 아닌 명백한
사실"이라며 의연한 모습이다. 경제 문제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그에 적합한 대책으로 효과를 냈다고 자부하는 것이다.
내달 열리는 총선에서 사회당은 재집권이 유력하다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국정 전반에 정치·진영 논리를 내세우기 급급한 우리 정부와 여당이 실용주의를 앞세운 포르투갈 좌파의 승승장구를 보며 일말의 교훈이라도 얻길 바라는 건 과한 기대일까.
입력 2019.09.26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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