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진실의 순간 (신상목 대표, 조선일보)

colorprom 2019. 8. 2. 14:27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45] 진실의 순간


조선일보
                         
  •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입력 2019.08.02 03:07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한국어로 '진실의 순간'으로 번역되는 'the moment of truth'는

본래 스페인 투우(鬪牛) 용어인 'el momento de la verdad'에서 유래한 말이다.

1930년대 헤밍웨이의 투우 논픽션 '오후의 죽음'에서 소개되면서 영어권에 퍼지기 시작했고,

이제는 한국에서도 흔히 사용되는 유행어가 되었다.

투우의 클라이맥스는 투우사가 물레타(붉은 천)로 소를 농락하다가 소의 급소에 검을 찔러 넣는 순간이다.

가공할 뿔을 휘두르는 흥분 상태의 소에게 다가가 일격을 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때 얼마나 침착하고 우아하게 소의 급소에 검을 꽂아 절명(絶命)시키느냐가 투우사 기량의 척도가 된다.


이처럼 투우사가 소와 일대일로 맞서 담력과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순간이 바로 진실의 순간이다.

영광의 순간이 될 수도 있지만, 치명상을 감수해야 하는 '위기의 순간'이라는 의미가 본래 뜻에 내포되어 있다.

일본어에는 '도탄바(土壇場)'라는 말이 있다.

본래 뜻은 에도시대에 죄수를 참수(斬首)하기 위해 흙[土]을 볼록하게 쌓아 만든 단(壇) 형태의

사형 집행장이다.

포박을 당해 꼼짝 못 하고 단두(斷頭)의 칼날을 기다려야 하는 장소라는 뜻에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뜻하는 관용어로 사용된다.


'도탄바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다' '도탄바에서 대역전극을 펼치다' 등의 표현을

현대 일본어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개인이건 국가건 진실의 순간은 가급적 맞이하지 않는 것이 좋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듯 불확실성은 줄이고 리스크는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베트남의 전쟁 영웅 보응우옌잡(武元甲)은 자신의 불패 철학을 '3() 전략'으로 요약한 바 있다.


적이 원하는 시간에 싸우지 않고,

적이 좋아하는 장소에서 싸우지 않고,

적이 생각하는 방법으로 싸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숙적(宿敵)이 걸어온 싸움이니 굳이 진실의 순간을 마다하지 않겠다면

감정은 절제하고 장군의 지혜를 되새기면 좋을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8/01/201908010337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