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화 안 됐다고 기업 때리는 정권의 실력자와 관료들
최고 제품 어떻게 만드는지 아나… 지금 '이순신'은 기업인
"국내에서 생산 능력이 충분히 있음에도 기업들이 일본의 협력에 안주했던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
"삼성전자가 반도체 세계 1위를 한 20년간 뭐 했는지 반성해야 한다."
(김기식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장·전 금감원장)
일본의 경제 보복 후 '죽창' '의병' 등 선동 구호를 빼면 현 정권에서 나오는 유일한 해법이 국산화인 거 같다. 좋은 말이다. 그런데 피 말리는 글로벌 경쟁 속의 '첨단 산업 전사(戰士)'들에겐 곤혹스러운 화두다.
이번 정권 사람들에게 '경제 이해도가 낮다'는 지적이 왜 나오는지 알 법하다.
문제가 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생산 구조를 들여다보자.
기본 재료인 웨이퍼는 SUMCO(일본), 포토 장비는 ASML(네덜란드), 식각 장비는 램리서치(미국),
증착 장비는 AMAT(미), 에칭가스는 스텔라(일), 검사 장비는 KLA(미)를 사용한다.
스마트폰도 마찬가지다.
두뇌인 AP는 퀄컴(미), OLED는 삼성디스플레이(한국), 커버글래스는 코닝(미), 카메라센서는 소니(일),
지문센서는 퀄컴(미), OS(운영체계)는 구글(미)의 기술이 합쳐져 탄생한다.
현존 최고의 전자 부품과 제품들은 이처럼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기술과 노하우를 종합하는
'글로벌 분업'의 산물(産物)이다.
이를 토대로 각 기업은 자신이 가장 잘하는 분야에 집중해 경쟁력을 키웠고,
그 덕분에 소비자들은 최고의 제품을 가장 효율적 가격에 공급받는다.
그런데 글로벌 분업은 외면하고 소재 국산화만 외치면 어떡하나.
국산이란 이유로 순도 떨어지는 부품을 쓴다는 건 현실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다.
그래서 정권 차원의 '국산화 공세'는 책임 소재를 '외교 무능'보다 '기업 책임'에 돌리려는 의도로 읽힌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일본 보복 조치의 롱(long) 리스트를 갖고 있었는데,
이번 품목이 그중 가장 아픈 1~3번을 딱 집어 놀랐다"고 말했다.
우선 이 말은 잘못된 보고에 기초했다고 본다.
일본이 우리에게 줄 타격 강도로 따지면 이번 품목은 "100개 중 중위권 정도"란 게 전문가들의 상식이다.
설혹 그 말을 수용한다 쳐도 '롱 리스트'(100개일지, 200개일지) 품목이 국산화 대상이란 것인데,
꿈같은 얘기다.
오죽하면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소재·부품 산업을 국산화하는 데 전문가들은 20년 정도를 본다"고 했고,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일본 따라가려면 반세기가 걸리고, 단기간 국산화는 불가능하다"고까지 말했겠는가.
윤증현 전 기재부 장관의
"비교 우위에 있는 중간재를 버리고, 소재·부품에 매달리면 죽도 밥도 안 된다"는 지적도 같은 맥락이다.
'스스로의 해법'도 없는 이 정권은 결국 사태 해결을 위해 두 가지 축에 의존한다.
하나는 '한·미 동맹'을 내세워 미국에 중재를 부탁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글로벌 분업 체계의 핵심인 삼성, SK 등 '대기업'의 역할을 내세워 전 세계를 설득하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두 해법의 주역은 '한국 좌파'들의 오랜 증오 대상이다.
2000년대 초 미 언론에선 '실리콘(반도체 원료)
방패'란 표현이 나왔다.
대만이 세계 3위의 하드웨어(PC 등) 국가가 되자
중국은 대만과 거래하는 미국, 유럽 기업이 무서워 더 이상 대만을 무력 침공 못한다는 것이다.
이번 위기를 겪어보니 우리도 비슷하다.
글로벌 시대엔 '좋은 기업'이 안보까지 책임지는 셈이다.
현 정권이 입에 달고 사는 '이순신'과 '거북선'은 결국 우리 기업인과 기업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