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우리나라

워싱턴 한 묘지엔 130년前 조선 아기의 무덤이 있다

colorprom 2019. 8. 1. 15:26



[단독] 워싱턴 한 묘지엔 130조선 아기의 무덤이 있다


조선일보
                         
             
입력 2019.08.01 03:00 | 수정 2019.08.01 07:50

서 태어난 첫 조선인 이화손주미 공사관 이채연 공사 아들로
출생 두달 만에 병으로 사망하자 명문 외교묘역 한쪽에 묻혀

1890년 10월 12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조선인 아기가 태어났다. 아버지는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 4대 공사 이채연(1861~1900). 낯선 이국 땅에서 아들을 낳은 부부는 뛸 듯이 기뻐 아기 이름을 화손이라 지었다. '화성돈(워싱턴)에서 태어난 아이'란 뜻이다. 당시 현지 신문에 '미국에서 태어난 첫 조선인'이란 기사가 실렸다. '이 작은 아기가 장차 자라나 미국을 좋아했으면….'(이브닝 월드, 1890년 10월 13일 자)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기는 두 달 닷새 만에 사망했다. 사인(死因)은 습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관계자는 "기록 카드엔 습진이라고 나오지만 면역력 저하와 관련된 합병증으로 사망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미국 첫 시민권자의 묘비가 워싱턴에

구한말 외교관으로 미국에 건너가 당당히 조선을 알린 이채연의 파란만장한 가족사가 공개됐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이번 주 출간할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 복원 보고서'를 통해서다. 재단은 "기록을 토대로 추적한 결과 화손이란 아기가 워싱턴 조지타운의 유서 깊은 묘역인 '오크 힐 묘지'에 묻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공사관 건물주이자 미국 국무부 차관인 세블론 브라운의 가족 묘에 이화손의 묘비가 있었다"고 31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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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 조지타운 오크 힐 묘지에 묻혀 있는 조선인 아기 이화손. 외교 명가 펠프스 가족 묘역 안에 작은 묘비(흰 동그라미)가 놓여 있다. 유서 깊은 묘지인 오크 힐엔 거물 정치인 딘 애치슨, 워싱턴포스트 사주였던 캐서린 그레이엄 등 워싱턴의 정치인·외교관·군인들이 다수 묻혀 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채연은 1888년 초대 주미 공사 박정양을 수행해 번역관으로 미국 땅을 처음 밟았다. 서기관으로 승진한 후 일시 귀국했다가 1889년 참사관 이완용과 함께 부부 동반으로 워싱턴에 복귀했다. 1890년부터 1893년까지 4대 공사로 재임했다. 공사관 건물은 남북전쟁에도 참전했던 정치인이자 외교관 세스 펠프스의 저택이었는데, 당시 소유주는 펠프스의 사위인 브라운이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채연의 아들 이화손의 묘를 자기 가족 묘역에 마련해 줄 정도로 이채연과는 막역한 관계를 맺었다.' 재단의 강임산 협력지원팀장은 "워싱턴 외교 명가의 가족 묘지에 '조선의 첫 외교관 자녀'가 묻히게 된 것"이라고 했다.

펠프스가(家) 묘역 안에 놓인 화손의 묘비는 높이 30㎝가 채 안 된다. 앞면엔 'Ye Washon, 1890년 10월 12일~12월 17일', 뒷면엔 한글로 '조선 니화손'이 새겨져 있다.

◇사교계 주목받은 'Mrs. Ye'

보고서는 이채연의 아내 성주 배씨에 관한 이야기도 풍부하게 전한다. 배씨에 관한 국내 기록은 거의 없고, 정확한 이름도 모른다. 배씨와 이완용 아내는 1889년 2월 26일 공사관 개관 파티를 통해 워싱턴 사교계에 등장한다. 피츠버그 디스패치는 다음 날 기사에서 '조선이 최초로 연 가정식 연회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미국 내에서 두 명밖에 없는 공사관의 두 조선 여인은 풍성한 옷을 입어 눈부셨고 그림같이 아름다워서 많은 칭찬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두 여인은 파티를 매우 즐기는 듯했고 매우 편한 모습이어서 여성이 아무런 사회적 권리를 갖지 못하는 나라에서 왔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두 여인은 이 기회를 통해 자유라는 축복을 고맙게 느끼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들의 남편들 역시 아내에게 향하는 찬사와 주목에 몹시 기뻐하고 있음도 알 수 있었다.'

워싱턴 주미대한제국공사관에 전시된 액자. 왼쪽은 이채연 공사. 오른쪽은 남편과 함께 미국 땅을 밟은 성주 배씨(우)와 이완용 부인.
워싱턴 주미대한제국공사관에 전시된 액자. 왼쪽은 이채연 공사. 오른쪽은 남편과 함께 미국 땅을 밟은 성주 배씨(우)와 이완용 부인.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특히 'Mrs. Ye'는 미국 해리슨 대통령 영부인과 가깝게 지낼 만큼 사교적 열망이 컸고 민간 외교에 적극적인 신여성이었다. 이목구비 또렷한 미인이었고, 영어를 빠르게 습득했으며, 적응력이 놀라웠다고 한다. 1893년 7월 발행된 미국의 한 잡지는 '그녀는 새로운 환경에서 자유를 즐겼다. 출산과 동시에 아이를 잃음으로써 삶의 자세가 강화되었다'고 평가했다.

◇워싱턴 모델로 서울 개조

이채연은 귀국 후 한성판윤(지금의 서울시장)으로 부임했다. 1896년 아관파천 직후 진행된 '한성 근대화' 사업의 실무를 맡아 도시를 개조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워싱턴을 본보기로 삼아 보고 배운 것을 조 선에 빠르게 적용했다. 한성 시내에 전기·수도·전차·철도를 도입하고 도로를 정비했다. 이후 한성전기회사 사장도 지냈으나 1900년 39세에 세상을 떠났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관계자는 "이채연 가족의 스토리는 19세기 후반 조선의 대미 활동을 보여주는 구체적 사료"라며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 사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발굴돼 그 의미가 크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8/01/2019080100099.html



형남민(ba****)
모바일에서 작성2019.08.0111:11:52신고
"미국 해리슨 대통령 영부인"(?) 남의 아내를 높여 '영-부인(令夫人)'이라 이른다. 퍼스트레이디란 뜻으로 '영부인(領夫人)'이라 했다면 잘못이다. '영(令)'은 사족(蛇足)이다.
황광열(zizi****)
2019.08.0108:01:01신고
이채연이 39세 나이로 단명하지 않았으면 이완용처럼 매국노로 불렸을거다. 나라는 무능한 고종과 민비의 척족이 다 해쳐먹어 망국의 길로 들어섰으나 이완용은 망해가는 나라의 대신으로서 피하지않고 고종의 뜻대로 한 죄로 매국노가 됐다. 이완용은 말년, 망해가는 나라의 정리 대신, 망한 회사의 파산관재인, 망해가는 대갓집 며느리가 세상에서 제일 힘들다고 말했다.
신규식(sks****)
2019.08.0114:55:16신고
오죽했으면 이완용이 친미에서 친러에서 친일파가 되었을까? 지금도 친일팔아 정권연장하려는 매국노 집단에 박수치는 무뇌아들이 많으니 정날 역사는 돌고도는 모양입니다.

최중신(qw****)
2019.08.0107:24:17신고
자유와 민주가 살아있는 나라 미국입니다. 서로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을 하는 당파의 나라 조선이 망하고 지금 또 다시 망 할려고나라를 개판으로 만들고 있는 정치인들 몽땅 저세상으로 보내고 새로운 인물이 도래 했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8/01/201908010009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