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9.07.29 01:31 | 수정 2019.07.29 10:17
[오늘의 세상]
6500㎞ 강제이주 한인들의 카자흐 첫 정착지에 추모공원 기공식
지난 26일 찾은 카자흐스탄 우슈토베의 바슈토베 언덕은 황량했다.
1937년 10월 러시아 극동 지방에 살던 고려인이 강제 이주돼 최초로 정착한 곳이지만,
허허벌판에 표지석 같은 기념비 하나만 서 있었다.
얕은 깊이의 토굴 흔적 두 개와 수백 개의 묘지만이
바슈토베 언덕에 한때 사람이 살았다는 유일한 흔적이었다.
고려인 3세라는 인근 마을 주민은
"80여년 전 늦가을에 맨몸으로 이곳까지 내몰린 선조들은 손으로 토굴을 파고 농사를 지어 살아남았다"고
했다.
망국(亡國)의 한이 서린 이곳 바슈토베 언덕에 고려인을 추모하고 기리는 공원이 조성된다.
조선일보와 통일문화연구원, 남양주 현대병원은 카자흐스탄 알마티주와 함께
26일 바슈토베 언덕에서 고려인 최초 정착지 추모공원(한국·카자흐스탄 우호 기념공원) 기공식을 갖고,
새로운 고려인 추모비를 세웠다.
추모비엔 동족여천(同族如天·동포를 하늘과 같이 섬기라)이라는 문구가 들어갔다.
추모공원 조성 사업은 향후 10년간 추진된다.
독립 유공자 추모비 건설 및 고려인 거주 토굴집 복원, 전시관 건립 등을 우선 검토할 예정이라고
통일문화연구원은 전했다.
바슈토베 언덕은 카자흐스탄 동남부 우슈토베역에서 약 2㎞ 떨어져 있다.
바슈토베 언덕은 카자흐스탄 동남부 우슈토베역에서 약 2㎞ 떨어져 있다.
러시아 극동 지방에서 약 6500㎞를 열차로 달려 1937년 10월 9일 우슈토베역에 도착한 한인들은
이곳에서 새 삶을 시작했다.
일제를 피해 조국에서 이역만리(異域萬里) 러시아로 쫓겨나듯 이주한 데 이어,
소련의 정책으로 다시 한 번 삶의 터전을 강제로 바꿔야 했다.
어머니가 세 살 때부터 18년간 우슈토베에 살았다는 전 로지온(고려인 3세·51)씨는
"수없이 많은 고려인이 영하 40도에 달하는 추위와 굶주림을 못 견디고 죽었다는 참상을
어머니와 할머니에게 여러 번 전해 들었다"고 했다. 전씨의 외삼촌도 정착 과정에서 숨졌다.
해외 한인사(史) 전문가인 김 게르만 건국대 초빙교수는
"우슈토베 지역은 물론이고 전체 고려인 사회에서도 '1937년 또는 1938년생'은 극히 드물었다"며
"강제 이주 전후로 태어난 영·유아들이 극한 환경에서 많이 죽었다는 얘기"라고 했다.
바슈토베는 현재 약 50만명에 달하는 유라시아 고려인들의 '뿌리'와 같은 지역이지만
바슈토베는 현재 약 50만명에 달하는 유라시아 고려인들의 '뿌리'와 같은 지역이지만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2012년 한·중앙아시아 친선협회와 카자흐스탄 고려인협회 주도로 '정착 기념비'가 세워진 걸 빼면
별다른 추모·기념 사업도 없었다.
그 기념비 역시 추모 의미보다는 그곳이 '고려인 최초 정착지'임을 알려주는 표지석에 가깝다.
추모공원 건립사업 공동대회장으로 위촉된 라종억 통일문화연구원 이사장은
"우리가 해외 동포들의 삶과 역사에 소홀했던 게 사실"이라며
"소외 동포들을 한 울타리로 엮고 주변 국가들과 관계를 개선하는 것도 통일 기반 조성에 필수적인 사업"
이라고 했다.
추모 공원이 첫 삽을 떼는 데엔 지난해부터 쌓아온 '신뢰'가 한몫했다.
조선일보와 통일문화연구원은 지난해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중앙아시아 통일과나눔 아카데미'를 설립하고 한글 교육에 앞장섰고,
현대병원도 대대적인 의료 봉사를 해 왔다.
올해는 전문의 9명을 포함해 중·고등학생부터 의대생, 통역까지 약 80명이 봉사에 참가해
1200여 명의 현지인을 진료했다.
현대병원은 지난해 시작한 의료 봉사를 10년에 걸쳐 계속할 계획이다.
김부섭 현대병원장은
"의료 봉사를 계기로 학생 봉사단이 우슈토베 지역을 찾아 추모하는 데에도 앞장설 계획"이라고 했다.
의료 봉사로 이곳을 찾은 유수정(16) 학생은
"지금까지 잘 몰랐지만 꼭 우리가 알아야 할 역사를 배울 수 있었다"며
"추모비 설립이나 의료 봉사 같은 '민간 외교'의 필요성도 절감했다"
고 말했다.
이날 행사엔 한국뿐 아니라 카자흐스탄 현지에서도 바탈로바 아만디카 가바소비차 알마티주(州) 부지사,
이날 행사엔 한국뿐 아니라 카자흐스탄 현지에서도 바탈로바 아만디카 가바소비차 알마티주(州) 부지사,
김로만 우헤노비치 하원 의원, 베쿠바세일하나 이브라이모비차 카라탈구 노병회장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홍준호 조선일보 발행인은
"나라가 힘이 없고 망하면 백성들이 어떤 수난을 당하는지 보고 배우는
역사와 추모의 장(場)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관련기사를 더 보시려면,
- "우슈토베는 고려인 恨 서린 곳이자 정신적 고향… 이번 추모공원 조성으로 자긍심 더 높아질 것"우슈토베(카자흐스탄)=윤형준 기자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