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100년을 살면서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김형석 교수, 조선일보)

colorprom 2019. 4. 27. 15:21

100년을 살면서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조선일보
                             
  •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          
    입력 2019.04.27 03:01

    [아무튼, 주말- 김형석의 100세 일기]

    [아무튼, 주말- 김형석의 100세 일기]
    일러스트=이철원
    자주 받는 질문이 있다. '100년을 살아오는 동안에 언제가 가장 행복했는가'이다.
    대답하기 망설여지는 것은 어떤 기간을 묻는 것인지, 한 사건의 전후인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젊은 세대가 물었을 때는 내가 겪은 사건 중의 하나를 말하고,
    나이 든 사람에게는 행복했던 기간을 소개하곤 한다.

    내 일생에 걸쳐 가장 행복했던 시기가 있었다면
    1961년과 62년에 걸쳐 미국 대학 사회에 머물렀다가 유럽을 비롯한 세계 일주 여행을 한 기간이다.
    친구인 안병욱 교수와 한우근 서울대 교수와 함께였다.
    만일 그 1년 동안의 학문과 사회적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 인생과 하는 일의 소중한 일부를 갖추지 못했을 것 같다.

    세계적인 대학에 머무를 수 있었고 석학들의 강의와 세미나에 동참할 수 있었다.
    철학계는 물론 관심을 갖고 있던 P. 틸리히, K. 바르트, R. 니이버
    20세기를 대표하는 신학자들의 강의와 강연에 참여하기도 했다.
    유럽 등지의 문화적 유산과 문물도 찾아볼 기회를 얻었다.
    여러 날 인도를 방문한 것도 유익했으나 바이블의 고장들을 순방하는 기회도 생겼다.
    한마디로 내 정신세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를 행복하게 만든 개인적인 사건 중 하나는 최근의 일이다.

    7년쯤 전이었다. 충북 영동에 강연을 갔다. 청중 몇백 명이 내 강연에 심취해 주었다.

    강연을 끝내고 휴게실에서 혼자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노크 소리가 들려 들어오시라고 했더니 지방의 유지로 짐작되는 70대 후반의 신사였다.

    나와 마주 앉은 그 손님이 "피곤하실 것 같은데 한 5분만 인사드리고 가겠습니다"라고 했다.

    안병욱 선생 건강을 묻기에 병중이어서 외출이나 활동은 못 하신다고 했더니 그가 말했다.


    "워낙 고령이시니까요. 두 분 연세가 같으신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안 선생님은 직접 뵈올 기회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선생님께서 고령에도 불구하고 저희 고장까지 방문해 강연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희들 젊었을 60년대, 70년대는 정말 살기 힘들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은 견딜 수 있었으나 정신적 방향 상실이 그렇게 힘들 줄 몰랐습니다.

    그럴 때 두 분 선생님이 계셔서 방송, 강연을 해주셨고 책도 남겨 주셔서 그 기간을 넘길 수 있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하느님께서 힘들어 애태우고 있는 우리 젊은 세대를 위해 두 분 선생님을 보내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직접 뵈오니까 감개가 무량합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피곤하실 줄 알면서도 인사드리고 싶어 찾아 뵈었습니다."

    나도 일어서서 따뜻한 인사를 나누었다.

    돌아서서 나가던 그가 발걸음을 멈추더니

    "안 선생님을 만날 기회가 생기면 꼭 감사 인사를 전해주시면 좋겠습니다"고 했다.

    나는 그 고마운 마음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런 인사를 받을 때마다 수고의 보람에서 오는 행복을 느끼게 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4/26/2019042602064.html


    김고치(love****)2019.04.2717:20:15신고
    정말 멋있는 인생을 살라오신 분입니다. 저도 79세로 선생님의 저서 "백세를 살라보니" 숙독했습니다. 선생님은 지식과 덕망을 두로 갖춘 분이라 존경합니다.
    선생님을 가장 본 받아야 할 생은 많은 견문을 통해 자신의 생을 아름답게 다듭으 섰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우리 젊은이 들은 물밀듯 동서양을 여행 하면서 그 우수한 문화 본 받아 행하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서유럽 나보다 남을 존중하는 문화 말입니다.
    유홍재(digi****)2019.04.2716:49:59신고
    안병욱 선생이 1967년 경 내가 경북고교 시절 학교에 와 안창호, 칼 힐티 등에 관해 강연해주셨고,
    김형석 선생은 라디오 방송으로 칸트 헤겔식의 철학은 아니지만, 다양한 삶의 지혜를
    수필같이 평이하게 강의해 주셨습니다.
    그때 시그널 뮤직이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이었는데 참으로 아름다운 사색적 음악이었습니다.
    이 곡은 조르즈 상드가 시장을 갔는데 귀가가 늦어지자 빗방울 떨어지는 것을 보고 걱정하면서
    작곡했다는 전설같은 명곡입니다.
    두 분은 한 시대의 위대한 스승이었습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4/26/201904260206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