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김형석의 100세 일기]
내 일생에 걸쳐 가장 행복했던 시기가 있었다면
세계적인 대학에 머무를 수 있었고 석학들의 강의와 세미나에 동참할 수 있었다.
나를 행복하게 만든 개인적인 사건 중 하나는 최근의 일이다.
7년쯤 전이었다. 충북 영동에 강연을 갔다. 청중 몇백 명이 내 강연에 심취해 주었다.
강연을 끝내고 휴게실에서 혼자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노크 소리가 들려 들어오시라고 했더니 지방의 유지로 짐작되는 70대 후반의 신사였다.
나와 마주 앉은 그 손님이 "피곤하실 것 같은데 한 5분만 인사드리고 가겠습니다"라고 했다.
안병욱 선생 건강을 묻기에 병중이어서 외출이나 활동은 못 하신다고 했더니 그가 말했다.
"워낙 고령이시니까요. 두 분 연세가 같으신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안 선생님은 직접 뵈올 기회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선생님께서 고령에도 불구하고 저희 고장까지 방문해 강연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희들 젊었을 60년대, 70년대는 정말 살기 힘들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은 견딜 수 있었으나 정신적 방향 상실이 그렇게 힘들 줄 몰랐습니다.
그럴 때 두 분 선생님이 계셔서 방송, 강연을 해주셨고 책도 남겨 주셔서 그 기간을 넘길 수 있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하느님께서 힘들어 애태우고 있는 우리 젊은 세대를 위해 두 분 선생님을 보내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직접 뵈오니까 감개가 무량합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피곤하실 줄 알면서도 인사드리고 싶어 찾아 뵈었습니다."
나도 일어서서 따뜻한 인사를 나누었다.
돌아서서 나가던 그가 발걸음을 멈추더니
"안 선생님을 만날 기회가 생기면 꼭 감사 인사를 전해주시면 좋겠습니다"고 했다.
나는 그 고마운 마음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런 인사를 받을 때마다 수고의 보람에서 오는 행복을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