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에스토니아 탈린항에서
현지 경찰이 주(駐)스웨덴 대사관 소속 북한 외교관들이 타고 있는 승합차를 덮쳤다.
차 안에는 덴마크산 '프린스' 담배가 가득 실려 있었다.
경찰이 담배 상자를 뜯는 장면은 사진기자들에게 찍혀 전 세계에 공개됐다.
'고난의 행군'이 한창이던 당시 스웨덴 주재 북 대사관은
담뱃값이 싼 발트 연안 국가에서 담배를 밀수해 비싸게 넘기는 수법으로 수만달러를 벌었다.
태영호 전 공사는
"외무성이 전 세계 공관에 '스웨덴 대표부의 자력갱생 정신을 배우라'는 전보까지 내려보냈다"고 했다.
▶재작년에는 모잠비크에서 북한 태권도 사범 등이 코뿔소 뿔 4.5kg을 밀수하려다 체포됐다.
이들은 동상이나 조각 등에 코뿔소 뿔을 나눠 담아 국경을 넘으려 했다.
모잠비크에서만 북한인이 연관된 코뿔소 뿔, 상아(象牙) 밀수 적발 건수가 29건이 넘는다고 한다.
▶북의 밀수는 뿌리가 깊다.
무기는 물론이고 금괴, 위조지폐, 마약, 담배 등 손을 안 댄 게 없다.
'치외법권'이 적용돼 소유국 동의 없이 열 수 없는 외교 행낭까지 밀수에 이용한다.
몇 년 새 '사치품'도 대북 제재 대상이 되면서
김정은이 즐긴다는 고급 술, 캐비아, 시가 등도 밀수 대상에 추가됐다.
'김정일의 요리사'로 알려진 후지모토 겐지는
"김정은이 하룻밤에 보르도 와인을 열 병이나 마셨다"고 한 적이 있다.
김정은이 식습관을 바꾸지 않았다면 이젠 밀수 외에는 방법이 없다.
▶김정은은 미·북, 남북 정상회담 때 보란 듯이 금수품인 벤츠, 렉서스 등 고급차를 타고 나왔는데,
엊그제 뉴욕타임스가 이런 북한의 차량 밀수 경로를 추적해 보도했다.
최고 19억원에 이르는 마이바흐 S600 풀만 가드 등 2대는 지난해 네덜란드 로테르담 항구를 출발,
중국 다롄, 일본 오사카, 한국 부산, 러시아 나홋카까지 선박으로 옮겨졌다.
이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한 화물기를 통해 북한으로 최종 반입됐다고 한다.
반년여 동안 5국을 돌고 돌며 경로 세탁을 했다.
'최고 존엄'의 요구를 맞추기 위해 북 관리들이 머리를 짜내 이런 루트를 '개척'했을 것이다.
▶지난해 트럼프 미 대통령이 '중국이 대북 제재 구멍'이라고 하자
한 중국 교수가 "미국도 멕시코에서 불법 마약이 넘어오는 것을 못 막지 않느냐"고 받아쳤다.
제재가 작동하고 있지만, 죽기 살기로 밀수하는 걸 다 막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를 적당히 눈감아주는 '친구'들까지 있다면 앞으로도 꼬리는 쉽게 잡히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