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세상]

[미국]리오그란데의 父女 (한현우 위원, 조선일보)

colorprom 2019. 6. 28. 15:21



[만물상] 리오그란데의 父女


조선일보
                         
             
입력 2019.06.28 03:16

멕시코 영화 '신 놈브레(Sin Nombre·이름도 없이)'에서
미국으로 밀입국하려는 사람들은 '죽음의 열차'라는 멕시코 종단 화물열차에 무임승차한다.
기차 지붕에 올라타다가 떨어져 죽기도 하고 간신히 탄 뒤에 살해나 강간을 당하기도 한다.
이들은 과테말라·온두라스·엘살바도르 같은 나라에서 왔다.
점쟁이는 주인공에게 말한다.
"너는 무사히 미국에 도착할 거야. 그렇지만 신이 아니라 악마가 인도할 것이다."

리오그란데강을 건너 미국으로 밀입국하려던 25세 아빠와 두 살배기 딸이
강 기슭에 엎드린 채 숨져 있는 사진이 어제 신문에 났다.
딸을 업고 폭 30m 강을 건넌 아빠가 엄마를 데리러 다시 강을 건너가자
영문 모르는 딸이 아빠를 따라 강물로 들어왔다.
놀란 아빠가 다시 딸에게 갔다가 함께 급류에 휩쓸렸다.
엘살바도르에서 온 이 가족도 '죽음의 열차'를 탔을 것이다.
악마는 끝내 이들을 미국으로 인도해 주지 않았다. 

[만물상] 리오그란데의 父女
▶아이는 아빠 셔츠 안에 있었다. 아빠가 아이를 잃지 않으려 그랬을 것이다.
물살을 이겨내려 했던 아빠의 다리는 물위에 수평으로 뜬 채 무기력했다.
아이의 빨간색 바지는 기저귀 때문에 불룩했다.
새 기저귀가 담긴 가방을 든 엄마는 강 건너편에서 두 사람이 껴안은 채 떠내려가는 걸 보며 울부짖었다.
사진 한 장이 사람들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미국 국경 순찰대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밀입국하다 숨진 사람들 시신을 거두는 일이다.
익사자, 열사병 사망자 등이다.
순찰대밀입국자들의 은신처를 사막에서 찾아내 숨겨둔 음식과 물을 전부 쏟아버린다.
먹을 것이 사라진 밀입국자들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사막을 헤맨다.
제 조국은 이 사막보다도 못한 것이다.
밀입국을 막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밀입국을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다.

최근에는 멕시코뿐 아니라 내전과 범죄, 가난을 견디지 못한 다른 중남미 국가에서
미국으로 밀입국하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열 살도 되기 전에 마약과 살인 범죄에 연루되는 나라,
정부와 경찰을 믿을 수 없는 나라,
가난과 폭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 나라에서 목숨 걸고 국경을 넘는다.
 
내 나라만 아니면 어디든 좋다는 이들이다.

그래서 중남미 가수가 부른 노래 '돈데 보이(Donde voy·어디로 가나)'가 더욱 구슬프다.
"태양아 부디 나를/ 들키지 않게 해다오/ 어디로 가나/ 어디로 가나/
희망이 내 목적지인데/ 나는 외로이/ 사막을 도망쳐 가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6/27/201906270414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