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t / 가짜 뉴스가 넘쳐나는 세상… 현장에서 진실을 전합니다]
응급실부터 日양로원까지 의사출신 김철중 의학 전문기자
서울의 한 대형 병원 응급실 일요일 오후, 그날 따라 환자가 밀려왔습니다.
2004년 말, 영상의학과 의사 출신 의학 전문기자인 저는 응급의학과 의사 체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응급실은 북새통이었습니다.
목숨이 분초를 다투는 심근경색증 환자부터 암 진단 받았다고 지방서 올라온 마음 급한 환자까지
다양했습니다.
그때 3층 건물에서 떨어진 70대 남자가 실려 왔습니다.
저는 초음파로 간 파열이나 복부 출혈이 있는지 살폈습니다. 사진은 그 장면입니다.
당시 저는 일주일간 대형·중형·소형 병원 응급실 세 곳에서 근무하고, 온종일 구급차도 타면서
응급 의료를 직접 겪었습니다.
그러고는 응급실 르포 기사를 5회에 걸쳐 썼습니다.
응급 의료는 누구에게나 닥칠 목숨이 달린 문제지만, 개인이 선택할 수 없는 의료 인프라입니다. 국방이나 소방과 같은 것이죠. 그러기에 조선일보는 우리나라 응급 의료 개선을 위해 현장의 문제를 찾아내고 개선을 요구하는 기사를 줄곧 써왔습니다.
특히 야간 응급실에 전문의가 없는 문제를 기획 기사로 썼습니다. 그러자 정부는 응급실 전문의 당직 의무화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심폐 소생술을 배우자' 보도는 국내에 심폐 소생술 교육 붐을 일으키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 흐름이 이어지면서 최근 10년간 길거리 심장마비 환자에 대한 일반인 목격자 심폐 소생술 시행률이 11배 늘었고, 생존율은 4배 늘었습니다.
자동 제세동기(AED)는 응급으로 심장마비가 발생한 환자 가슴에 패치를 붙이면 자동으로 심전도를 읽고 전기 충격을 줘 심장 박동을 되살리는 장비입니다. 국내에 AED 개념조차 없고 AED를 의사 아닌 일반인이 쓰면 불법으로 여기던 시기에 조선일보는 AED 해외 사례를 취재하고 국내 도입 필요성을 제기하는 기사를 연이어 지면에 담았습니다. 이를 계기로 다중 이용 공간에 AED를 의무로 설치하는 법이 마련됐습니다. 이후 KTX에서, 인천공항서, 음악 공연장 등에서 심장마비가 일어난 환자를 AED로 살려내는 사례가 이어졌습니다.
근육·치아·집안 문턱까지… 노인을 위한 나라는 달랐다
김철중 의학 전문기자가 들여다본 '장수국가 일본이 사는 법'
저는 최근 국내 언론에서 최초로 시도한 전문 기자 해외 특파원 생활을 했습니다. 1년간 초고령 사회 일본에서 살면서 의료 기사를 썼습니다. 이는 '미래 경험'이었습니다. 고령화 속도를 감안하면 지금 일본은 한국의 15~20년 뒤 모습이니까요.
65세 이상 인구가 29%에 이른 일본은 세 가지가 국가적 화두였습니다. 움직이는 고령 사회, 병원에 입원하지 않고 동네에서 늙어가기, 고립되지 않고 어울리기 등입니다. 고령 인구 15%에 들어선 우리 사회가 미리 준비해야 할 것들이죠.
움직이는 고령 장수의 핵심은 근육에 있다는 것을 일본에서 깨달았습니다. 이에 근육 운동 일상화를 강조한 '근육이 연금보다 강하다'는 기획 보도를 했습니다. 도쿄 건강 장수 의료센터에서 권장하는 근육 운동을 소개했습니다. 조선일보는 이를 브로마이드 포스터로 만들어 독자들에게 배포했습니다. 각지에서 이 포스터를 달라는 요청이 쇄도했습니다. '근육이 연금보다 강하다'는 전국 노인회관, 시민센터 등을 통해 국민 캠페인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잘 움직이려면 역시 잘 먹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일본은 잘 씹는 구강 건강을 강조합니다. 80세까지 치아 20개를 유지하자는 운동을 하여 80세 50% 이상이 그 목표를 이루는 작은 기적을 이뤘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돼야 하기에 일본의 80·20 기사를 크게 보도했습니다. 일본은 휠체어 고령자도 지낼 수 있도록 한 해 50만 채의 문턱을 없애고, 곳곳에 손잡이를 달고, 슬로프를 설치하고 있습니다. 동네 치매 환자들을 보살피는 의료 사랑방도 5400여 곳에 이릅니다. 이런 초고령 사회 현상을 지면에 소개해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를 알렸습니다. 쇠약해진 노인들은 병원에 가기도 힘듭니다. 이에 일본에서는 의사가 환자 집으로 찾아가는 왕진이 1년에 1000만 건 넘게 이뤄집니다. 이틀 동안 왕진하는 일본 의사와 지내면서, 왕진이 거동 불편 노인에게 필요한 의료 제도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1면 톱기사로 시작해 일본 왕진 제도 기획 보도를 2회에 걸쳐 했습니다. 이후 국내서 방문 진료 활성화를 위한 의료법 개정이 이뤄지고, 정부는 올해부터 왕진 제도를 시범 사업하기로 했습니다.
2013년 건강한 삶 9988 프로젝트 '나트륨 적게 먹기'를 연중 캠페인 기사로 다뤘습니다. 전국에 싱겁게 먹기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것으로 심장병, 뇌졸중 예방 효과가 상당했다고 자부합니다.
2000년대 후반 해외 환자 유치 활동이 의료법 위반이던 시절, 외국인 환자 유치 필요성을 제기한 기사를 지면에 수차례 담았습니다. 그 후 의료법이 개정됐고 10년이 지난 2018년, 우리나라는 외국인 환자를 한 해 38만 명 불러들였습니다.
저는 2015년 세계 의료 과학 기자 단체인 세계과학기자연맹 회장을 지냈습니다. 이를 통해 국제적 시각을 갖추고 언론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했습니다. 앞으로도 건강한 대한민국을 위해 선진 사례를 많이 소개하고 소중한 의료 건강 정보를 지면에 담아보겠습니다.
분초 다투는 응급환자도 "무조건 큰 병원으로" 서울 가다 숨넘어간다
전라북도 전주시에 사는 설모씨는 작년 5월 새벽, 가슴을 짓누르는 통증에 시달리다 잠에서 깼다. 그는 아침 9시가 넘어서야 인근 의원을 거쳐 전북대 병원으로 실려갔다. 진단은 급성심근경색증. 혈전(血栓·피딱지)이 좁아진 관상동맥을 막아버린 것이다.
전북대 병원에서는 관상동맥 확장술을 시도하려 했다. 막힌 관상동맥을 뚫는 약물을 투여하는 방법이다. 그때 설씨와 가족들은 병원이 못 미더웠는지 “서울의 큰 병원으로 가겠다”고 고집하기 시작했다.
고속도로를 3시간 넘게 달려 겨우 서울아산병원에 도착했지만 이미 급성 심근경색 치료 ‘골든 타임’(증상 발생 후 6시간)을 훌쩍 넘겨버렸다. 잘 치료받고 멀쩡히 걸어나올 수 있었던 그는 아직도 심근경색증 후유증으로 심부전(心不全) 증세를 앓고 있다.
그런가 하면 박모씨는 ‘자격 미달’인 구급대원 때문에 목숨을 잃을 뻔했다. 평소 우울증을 앓던 그는 집에서 소주 한 병을 마신 뒤 면도칼로 손목을 그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급대원은 “그리 위험해 보이지 않는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러자 가족들은 “그렇다면 평소 다니던 큰 병원으로 데려다 달라”고 요구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환자는 과다출혈로 인한 극심한 저혈압에 빠져있었다. 병원 측은 “구급대원이 혈압을 한번만 쟀더라도 이런 위험한 상황을 맞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23일 본지가 단독 입수한 서울아산병원 응급센터의 응급환자 5173명에 대한 조사에 따르면 국내 응급의료체계가 여전히 후진형(後進型)인 것으로 드러났다. 최소 3시간 이내에 응급치료를 받아야 할 뇌졸중 등 급성신경마비 질환자 346명 가운데 제시간을 지켜 응급실에 도착한 경우는 29.9%에 불과했다.
특히 뇌졸중으로 응급센터에 온 환자 2명 중 1명은 수도권이 아닌 지방환자였다. 생명을 고속도로에 맡기는 이른바 ‘고속도로 도박’을 낳는 서울-대형병원 선호증’은 자칫 환자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으며 시도별로 운영 중인 권역별 응급의료시스템이 사실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가 되고 있다.
특히 구급대원의 판단에 아랑곳하지 않고 환자와 보호자가 병원을 선정한 경우도 88%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례로 경기도 이천의 정모씨가 제초제를 마시고 자살을 시도하자 보호자들은 인근 병원에서 응급조치를 마친 후 “큰 병원으로 옮기자”고 성화를 부렸다.
결국 원하던 큰 병원에 도착했지만 진료의뢰서나 소견서를 지참하지 않아 의료진은 그가 해독제를 얼마나 썼는지, 위 세척을 어느 정도 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어 오히려 환자를 위급 상황에 빠뜨렸다.
아산병원 응급의학과 조규종 전문의는 “즉시 전문적인 처치가 이뤄져야 할 중증 응급환자가 고속도로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무모한 행동”이라고 말했다.
[김철중 기자는]
의대를 졸업하고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됐다.
주로 간암 치료하는 의사 생활을 하다 조선일보 의학전문기자로 변신해 20년째 하고 있다.
깊이로 승부하는 의대 교수직보다 넓이로 세상을 대하는 기자 생활을 하고 싶었다.
학창 시절에는 신문 읽기가 취미였다.
'사람은 사회를 만들고, 사회는 질병을 만든다'가 의사에서 기자로 전환한 모토다.
대한암학회 언론상을 두 차례 받았고, 2015년에는 세계과학기자연맹 회장을 2년간 지냈다.
의사와 기자의 두 시각으로 생로병사를 본 책 '내망현'을 출간한 바 있다.
2018년에는 국내 언론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전문기자 해외 특파원을 초고령사회 일본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