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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26년 구설에 시들었던 마사코… 국제 무대에서 활짝 피어났다

colorprom 2019. 5. 30. 17:07

26년 구설에 시들었던 마사코국제 무대에서 활짝 피어났다


조선일보
                             
  • 이기우 기자

    입력 2019.05.29 03:01

    日 왕세자빈 시절 4반세기 동안 각종 비난 시달려 우울증까지
    왕비 즉위후 외교관 경력 활용, 트럼프·멜라니아 부부와 회동 때 자신있는 모습·빼어난 영어 과시

    나루히토 일왕과 마사코 왕비가 지난 27일 도쿄 고쿄(皇居·일 왕궁)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부인 멜라니아 여사를 기다리고 있다.
    나루히토 일왕과 마사코 왕비가 지난 27일 도쿄 고쿄(皇居·일 왕궁)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부인 멜라니아 여사를 기다리고 있다. /UPI 연합뉴스
    왕세자빈 시절 시든 꽃 같았던 일본 마사코(雅子·55) 왕비가 27일 나루히토(德仁·59) 일왕과 함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부부를 만나는 것으로 국제 외교 무대에 데뷔하면서 화려한 꽃으로 활짝 피어났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의 일본 국빈 방문을 계기로 새 왕비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그가 일본의 소프트 파워를 발전시키고 미래 여성상을 재정립할 것이란 기대를 일으키고 있다"고 이날 보도했다.

    이번 트럼프 대통령 방일의 최대 화제 중 하나는 즉위 한 달이 채 안 된 마사코 왕비의 빼어난 영어 실력과 자신감 넘치는 태도였다. 영국 유학파인 나루히토 일왕과 외교관 출신 마사코 왕비는 27일 사전 환담과 궁중 만찬, 28일 작별 환담에서 통역 없이 트럼프 부부와 자연스럽게 대화했다.

    현지 언론들은 "만찬 현장에 대기 중이던 전문 통역사들이 할 일이 없을 정도였고, 왕과 왕비가 다른 왕실·정계 인사들의 통역을 해주기도 했다"고 전했다. NYT는 "나루히토는 트럼프와 계속 영어로 이야기하고 싶어했지만 지켜보던 참모가 통역관을 투입했다"며 "마사코만이 완벽히 통역 없이 대화가 가능했다"고 했다.

    일본 네티즌들은 마사코 왕비에 대해 "생기 넘치는 모습" "기품과 지성이 흘러넘친다" "마사코님의 무대는 바로 여기, 외교다!"라며 흥분했다. "미 퍼스트레이디 멜라니아 여사보다 영어를 더 잘하는 것 같다"는 말까지 나왔다. 마사코는 외교관 아버지를 따라 서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덕에 영어·프랑스어·독일어 등 5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 슬로베니아 모델 출신 멜라니아는 여전히 영어 문법 오류가 많고 동유럽 억양이 강하다는 평 때문에 공식 연설을 기피하는 게 사실이다.

    마사코 왕비를 향한 이런 찬사와 기대는 그가 왕실에 들어와 26년간 겪은 음해·비난과 극적으로 대비된다. 하버드대학 경제학과를 우등 졸업하고 외무성 관료로 미·일 무역 협상 업무를 하던 엘리트였던 마사코는 나루히토의 오랜 구애로 결혼했다. 첫 몇년은 경력을 살려 왕실 외교에 나섰으나 "너무 잘난 척한다" "임신은 대체 왜 못하느냐"란 비난에 시달리다 대외 활동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결혼 8년 만에 어렵게 딸을 낳은 뒤에도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다. 이로 인해 마사코 본인은 우울증과 비슷한 '적응 장애' 진단을 받았다. 왕실과 극우 일각에선 왕세자가 이런 아내와 함께는 제대로 '천황'의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우려를 제기하며 왕위 계승권 박탈까지 거론했다.

    나루히토 즉위 직전까지만 해도 마사코는 아직 병색이 있어 제대로 왕비 역할을 해내겠느냐는 회의적 시선이 있었다. 즉위를 앞두고 본인 스스로 "불안하고 긴장된다"고 할 정도였다. 외신들도 이 '황금 새장에 갇힌 새' '비운의 왕세자빈'의 앞날을 점치는 기사를 쏟아냈다. 그런데 왕비로 국제 무대에 다시 서자 물 만난 고기처럼 예전 실력을 발휘한 것이다.

    마사코의 재기(再起)는 왕비 본인뿐 아니라 일본 여성 인권 발전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국제정치학자 미우라 루리, 역사학자 카트린 다나카 등 전문가들은 "마사코는 일본 여성이 감내해야 하는 모든 고민과 시련의 상징"이 라고 했다.

    마사코 왕비에 대한 여론은 향후 왕위 구도 논의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마사코의 딸 아이코(愛子·18·고교 3년) 공주가 상위 1%에 드는 수재로 도쿄대 합격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진 반면 다른 남자 왕위 계승권자들의 건강 문제 등이 대두되면서 '여성의 왕위 계승을 허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져 왕실과 정부가 곧 법 개정 논의에 착수키로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5/29/201905290017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