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바깥 세상

[일본][40] 일본에서 꽃핀 조선 도자기의 비결 (신상목 대표, 조선일보)

colorprom 2019. 5. 24. 17:14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40] 일본에서 꽃핀 조선 도자기의 비결


조선일보
                             
  •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          
    입력 2019.05.24 03:12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경남 사천(泗川) 출신의 김존해(金尊楷)는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건너)간 도공이다.
    규슈의 유력 다이묘 호소카와 다다오키(細川忠興)에게 스카우트된 존해
    부젠(豊前·후쿠오카현)에 자리를 잡고 도자기를 굽기 시작한다.
    존해가 가마터를 잡은 곳의 지명을 딴 '아가노야키(上野燒)'는
    지금도 후쿠오카를 대표하는 도자기로 명성이 드높다.

    호소카와는 '리큐칠철(利休七哲·센노 리큐에게서 다도를 익힌 수제자 7명)'의 한 명으로 불리던
    다도 명인이었다. 존해가 빚어내는 질소(質素)한 도자기에 흠뻑 빠진 호소카와
    히고(肥後·구마모토현)로 영지를 옮길 때에도 존해를 가신단으로 동반할 정도로 그의 기예(技藝)를 아꼈다.

    존해는 특이하게 일본에 두 번 간 사람이다.
    기록에 의하면 1592년 일본에 잡혀갔지만, 청자 기술 습득을 위해 조선에 돌아왔다가
    정유재란 막바지인 1598년 일가 친척을 데리고 다시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존해가 왜 다시 일본으로 갔는지 그 속사정까지 기록에 남은 것은 없다.

    다만 1622년 호구 조사가 의미심장하다.
    존해의 도요(陶窯)에는 주민 65명, 야키모노시(도공) 8명, 우리코(판매원) 10명, 말 7두, 소 1두가
    기록되어 있다. 웬만한 무가(武家) 부럽지 않은 인원과 재산존해의 관장하에 있었다.

    내막이야 무엇이건 존해는 일본 땅에서 자신을 알아주는 주군을 위해 신명을 바쳐 도자기를 구우며
    천수를 누렸다. 존해를 총애한 다다오키의 직계손이 그 자신 도예가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전 총리이다 .

    조선의 도공들이 활약한 일본에서는 찬란한 도자기 문화가 꽃을 피웠지만,
    정작 원천 기술국 조선의 도자기는 시름시름 쇠퇴의 길을 걸었다.

    현장에서 실용적 기술로 실리를 창출하는 전문가를 '쇼쿠닌(職人)'으로 대우하며
    합당한 보상과 영예를 부여한 일본의 풍토가 그 갈림길의 배경에 있었다.

    현대 한국 사회에도 여전히 묵직한 울림을 전하는 역사의 교훈일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5/23/2019052303919.html


    장영식(au****)2019.05.2413:26:59
    16세기 서양에서 왕족,귀족들 사이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던 도자기.
    그 도자기 기술자를 일본이 한국에서 데려와서 극진히 모시고
    도자기 제품 서양에 팔고 기술과 무기를 들여와서 서양과 맞먹는 기술을 보유하게 되었다.
    원래 우리들의 기술인데 정부가 천시한 기술자가
    결국 일본을 부유하게 하고 조선을 병합하게 만든 사람들이 되었다.
    아무리 자산이 있어도 제도가 따라주지 않고, 시기 적절한 시점을 놓지면
    그 기술은 그 사회에 아무런 소용도 없고 오히려 나를 죽이는 무기가 되어 돌아온다.
    우리 사회는 기업가를 잘 대해줘야 하고 기업가가 일 할 수있게 만들어야지
    이런 기업가를 범죄자 취급하고 높은 영업세, 상속세가 계속 된다면
    결국 해외에 본사를 옮기고 돌아오지 않는 기업이 늘어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나라를 죽이는 것은 어리석은 정치다. 이완용 보다 더 나쁜 것이 기술과 기업을 박해했던
    그 평생 백성을 위하는 법을 배운 선비고 정치가들이였다.
    국민을 위한다는 나쁜 정치가를 골라내야한다
    장영식(au****)2019.05.2413:07:21신고
    주사파의 막장 경제로 취업 길이 막힌 조선의 대학생들은
    지금 일본으로 베트남으로 해외 일자리 바람이 불고 있다.
    쓰쓰로 태어난 기술을 천시하는 사회와 새로운 기술을 환영하는 사회는
    개화기의 조선과 일본의 차이가 나게 된다.
    박상현(chui****)모바일에서 작성2019.05.2412:38:11신고
    조선의 도자기공은 재주가 뛰어나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도 인정받지 못하고 죽을수도 있었다.
    도공들이 배를 곯아 집단으로 아사한 경우도 있었다. 조금이라도 잘하는 기업은 죽이려고 드는 요즘
    좌익광란의 시대가 조선의 성리학감옥에서 유래된 게 분명하다.
    양반 공산당만 잘 살아야지 어디 도공 기업이 잘난 모습을 보인단 말인가 죽을려고?
    조선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였고
    오늘날 좌익들은 이런 조선의 나쁜 유전자를 뼛속까지 물려받았다.
    이런 유전자로 극일이 되겠나?
    이진욱(jiml****)2019.05.2412:11:45신고
    우리나라는 도공이 관이나 왕으로 부터 배당된 수량을 채우지못해 곤장을 맞고 옥살이 한 사례가
    부지기수고, 그 대접이 백정보다는 그래도 나았지만 종사리나 별차이가 없었던 지위에서
    일본 막부시대에는 사회적 지위나 대접이 극진했다는 점에서, 그 원인을 찾을수 있을 것이다.
    그런면에서 오히려 우리들이 일본에게 감사를 해야할지도 모른다.
    도자기기술이나 茶文化를 우리에게서 전수받아 세계적으로 성공시켰다는 점에서
    소아적인 관점에서만 볼것이 아니라 크게 본다면 감사해야 할 문화의 유산이라고 봐야 할듯.
    고려청자의 아름다움도, 이조백자의 아름다움도 日本이 발견해준 문화의 유산이 아니었던가?
    원조기술만 가지고 배아파 할일이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일본에 건너간 도공들의 성공적인 문화에 박수를 보내야 한다고 본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5/23/201905230391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