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 둘째 날. 제주도에서 제일 좋은 리조트 아침 뷔페로 갔다.
식사가 시작됐고, 필자가 준 지침은 '꽝'이 됐다. 모두가 접시 위에 고층빌딩을 쌓았다.
걷기는 올레길 제1 코스부터 시작했다.
"또 걷느냐" 하던 이들이 모두 오길 잘했다 했다.
이번 수학여행 가자고 했을 때, 한 달 동안 신청자가 단 두 명뿐이었다.
맨날 걸으며 '짤짤이(구걸)' 하느라 지쳤는데 또 걷느냐고 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설득해 가까스로 10여명을 데리고 왔다.
코스 끝 무렵 해변에선 칠순 넘은 H 할아버지와 나란히 걸었다.
그는 사업에 실패했고, 아내와 이혼한 뒤 홀로 산다고 했다.
얼마 전엔 이혼한 아내를 만나 재산을 몽땅 줘버렸다.
"정말 잘하셨어요. 몽땅 다 주어버리셨으니 얼마나 자유로우시겠어요. 이렇게 제주에 와서 올레길도 걷고…." 그는 대답했다. "정말 좋아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혼자 다녔으면 해요."
얼마가 지났을까, 그가 말문을 다시 열었다.
"우리 회사엔 직원들이 많았는데 문을 닫게 됐죠. 반은 다른 회사에 취직을 시켜주고 반은 그러지 못했어요.
그게 참 가슴 아파요. 회사 문 닫을 때 6개월치 월급을 줬어요.
그랬더니 직원들이 되돌려 주면서 3개월치만 받아갔어요."
잠시 후, 그는 갑자기 눈물을 왈칵 쏟았다.
"목사님, 장애인을…. 흑…."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장애인이라뇨?"
"직원 중에 장애인이 13명 있었어요. 그 사람들은 한 사람도 취직시켜주지 못했어요.
지금도 생각할수록 가슴이 아파요.
회사 문 닫을 때 장애인들은 월급 6개월치를 주니까 모두 반납하더군요. 그래서 2개월치를 줬어요.
그들은 착한 사람들이에요."
더 이 상 말을 잇지 못했다. 파도 소릴 들으며 얼마를 더 걸었을까, 필자가 말했다.
"앞으로 재기해서 갚으시면 되지요. 저랑 같이 일해서 수익 일부로 그들을 도웁시다."
할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빙그레 웃으며 그리하자 했다.
그는 여행에서 돌아와 우리가 비용을 제공하는 고시원에서 3년여 지내다 치매로 행방불명됐다.
아직도 그 선한 눈빛이 그를 더욱 그립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