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9.05.14 03:08
린 손다이크 "중세유럽사"
하노이에서 평양으로 돌아가는 60시간 기차 여행 내내
김영철은 굶으면서 김정은의 객실 앞 통로에서 석고대죄를 했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흉악한 원수지만 김영철에게 미·북 회담 결렬의 책임이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외교술이야 변변치 못했을 수 있지만
자신을 위해서라도 얼마나 필사적으로 회담을 성공시키려고 노력했겠는가.
그러나 트럼프의 짝사랑을 믿었다가 보기 좋게 차인 김정은의 분을 누그러뜨릴 방법이
그것 말고 있었겠는가?
회담장을 떠나는 김정은의 보라색 얼굴을 보면 귀국 길에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을 도륙할 것같이 보였다.
복도에 끓어앉은 김영철은 객실 안에서 김정은의 움직임이 감지될 때마다
그가 문을 열고 자기를 단칼에 벨 것 같은 공포에 소스라치지 않았을까?
그러나 김영철로서는 자기 목숨을 던져서라도 가족들이 처형되거나 수용소에 보내지는 것을 막으려면
그 길밖에는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석고대죄'라는 한국적 참회의 형태가 몹시 싫다. 인권의 자발적 포기가 아닌가.
'석고대죄'라는 한국적 참회의 형태가 몹시 싫다. 인권의 자발적 포기가 아닌가.
아랫사람의 취약한 입지를 이용해서 석고대죄를 하게 만드는 행위는 범죄다.
선조는 임진왜란의 발발 때문에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해 놓고 그를 너무 미워해서
자주 양위를 하겠다고 '몽니'를 부렸다.
그때마다 광해군은 여러 날 산발(散髮)하고 베옷 입고 '부당한 말씀을 거둬주시라'고 애원하는
석고대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가에서도 석고대죄는 드물지 않았다.
산발하고 베옷 입고 눈비와 밤이슬을 무방비로 맞으면서 하는 석고대죄로 몸이 망가진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세계사에서 유명한 '석고대죄'는 단연 11세기에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가
세계사에서 유명한 '석고대죄'는 단연 11세기에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가
성직자 임명권을 놓고 그와 대립한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에게 파문을 철회해 달라면서 한 것이다.
하인리히는 엄동설한에 알프스를 넘어가서 교황이 머물던 카노사의 성문을 두드렸으나 거절당한다.
그래서 꼬박 사흘을 수도자가 입는 말총 옷을 입고 눈보라 폭풍 속에서 석고대죄를
했다.
사흘 만에 성문이 열리고 그레고리우스는 파문을 철회했다.
고국으로 돌아가 실력을 기른 하인리히는 교황과의 2차 대결에서 교황을 축출하고 새로운 교황을 세운다.
북한의 막강한 실력자도 '백두 혈통'의 절대권력 앞에서 얼마나 하찮은 존재이며
북한의 막강한 실력자도 '백두 혈통'의 절대권력 앞에서 얼마나 하찮은 존재이며
그들의 영화가 얼마나 불안정한가를 너무나 잘 보여주는 이 석고대죄가
하인리히의 성공적 반격으로 끝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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