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런던 시내의 모금함에 돈을 넣고 있는 소녀. 지난해 기부를 한 영국인은 전체 국민의 61%로 조사됐다. photo 뉴시스 |
인간에게는 얼마만큼의 돈이 필요할까.
이는 누구도 쉽게 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영국인들에게는 돈이 행복의 첫째 조건은 아닌 듯 보인다.
그럼 “영국인 모두가 돈 말고 인생 행복의 해답을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을 한다면
필자의 대답은 ‘거의 예스’이다.
영국인 개개인의 마음속에서 실제 어떤 생각과 감정이 매순간 오고가는지 속속들이 알 수는 없으나
주위의 대다수 영국인들을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들은 돈이 많지 않아 여유롭지는 않아도
특별히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느끼거나 돈을 갈구하면서 허덕이지 않는다.
돈의 유무와 관련 없이 모두들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간다.
‘주어진 삶’이라는 수동적인 표현을 쓴 이유는
자신의 삶을 자기가 주도적으로 개척해 나가지 않는 듯하다는 느낌을 자주 받아서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그냥 ‘살아가는’ 듯, 심지어 ‘살아주는’ 듯한 느낌을 평소 받기에 하는 말이다.
‘인간의 삶이란 창조주가 각자에게 내려준 몫의 삶’이란 기독교적 철학이
자신도 모르게 뇌리에 깊이 박혀 있는 듯해 보인다.
그렇지 않고는 어찌 저 많은 영국인이 저렇게 ‘가난하면서도 우아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이
안 나온다.
영국인의 삶은 경제적으로 참 빠듯하다.
월급 받아서 반드시 필요한 데 쓰고 나면 거의 남는 돈이 없어 보인다.
개인은 가난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영국 국가 자체나 사회가 가난하다는 뜻은 아니다.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던 영국은 이제 해가 좀 지긴 했지만
아직도 경제 규모로는 미국, 중국, 일본, 독일 다음이다.
앞의 4개국이 독일(인구 8200만명) 빼고는 모두 인구가 1억명이 넘는다는 걸 감안하면
영국의 경제 규모는 인구(6695만명)로 보면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영국인 개개인은 의외로 가난하다.
맞벌이 안 하면 품위 유지도 어려워
통계로 한번 보자.
영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4만3160달러(3만2946파운드)로
한국의 3만1349달러에 비하면 거의 37.6%가 많다.
그러나 악명 높은 물가를 감안하면 결코 많다고 할 수 없다.
다른 통계를 보면 영국인 평균 연봉은 2만7195파운드(4079만원)로 나온다.
생각보다 상당히 낮다.
위의 1인당 국민총소득(3만2946파운드)에도 못 미친다.
또 영국 전체 소득세 납부자 3200만명 중 80%인 2560만명이 소득세 기본세율(20%) 해당자이다.
1만1851파운드(1781만원)~4만6350파운드(6952만원) 사이의 연봉이 이 기본세율 소득에 해당한다.
대다수 영국인들이 기본세율 연봉을 받는 월급쟁이라는 말이다.
연봉 1만1851파운드 이하는 소득세 비과세 대상인데 3100만명 봉급자 중 단 78만명(2.8%)만 비과세인 셈이니 한국의 46.5%에 비하면 과세점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동시에 저소득자가 적다는 말이기도 하다.
영국의 근로자 최저임금은 시간당 8.21파운드(1만2315원)다.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가 주 40시간을 일하면 주당 328.4파운드를 번다.
연봉으로 따지면 약 1만7134.48파운드이고 월급으로는 1427.87파운드(214만원)다.
하지만 최저임금 근로자도 소득세 면세 해당자가 아니다.
그러고 보면 영국은 전 국민이 철저하게 세금을 내는 개세제도(皆稅制度) 국가이다.
모든 국민이 혜택을 받으려면 소득이 아무리 적더라도 세금은 내야 한다는 뜻이다.
복지제도를 지향한다면 어느 나라나 지향해야 할 정책이다.
이제 영국인 평균 연봉 2만8677파운드(4301만원)를 실제 생활에 대입해보자.
소득세 3235.40파운드와 건강보험을 포함한 사회복지 관련 제세금 2405.40파운드를 제한 뒤
이를 12개월로 나누면 1919.68파운드(288만원)를 매달 손에 쥔다.
영국 소비자물가 단체 통계로 보면
영국 생활물가는 4인가족 월별 기본생활비(식품+광열비+통신비) 평균을 900파운드로 잡는다.
여기다가 주택 융자 상환금이나 월세 같은 주택 관련 경비를 기본적으로 1000파운드 이상 낸다.
이마저도 대도시가 아닌 지방을 기준으로 한 금액이다.
런던 시내는 4인가족이 지낼 아파트나 주택의 월세가 거의 2500~3000파운드에 이른다.
반면 지방 대도시는 1000~1500파운드 정도다.
이렇게 보면 부부 중 한 사람의 월급으로는 생활의 기본 3요소인 의식주(衣食住)에서
식과 주를 해결하고 나면 남는 돈이 전혀 없다는 말이 된다.
결국 나머지 경비(교육+의류+문화+휴가+자동차)는 부인의 월급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인간다운 품위 유지를 하고 살아갈 수가 없다.
그만큼 물가에 비해 영국 평균 월급이 적다는 뜻이다.
특히 지난 40년간 영국의 주택 가격이 엄청나게 올라서 큰 사회적 문제로까지 대두했다.
지금 젊은이들의 부모 세대가 집을 사던 1980년대
영국 집값은 평균 2만2677파운드였고 연봉은 평균 5720파운드였다.
영국의 장기저리주택융자(house mortgage) 최대 금액은 3년치 연봉 수준이었다.
1980년대만 해도 신혼부부 3년 연봉을 합치면 대부분 집을 살 수 있었다.
자신들이 은퇴할 시기를 계산해 거기에 맞춰 주택구입융자를 받고
부부가 열심히 일해 평생 융자금을 갚아갔다.
월별 융자금 상환액과 함께 개인연금과 생명보험까지 들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평생을 착실하게 일해 은퇴할 시기가 되면 주택은 융자금을 다 갚은 온전한 자기 소유가 되었다.
정부의 기초연금과 함께 개인연금도 매달 타고 직종에 따라 직장연금도 타면 금상첨화였다.
그래서인지 영국에서 가장 돈을 여유 있게 쓰던 세대는 은퇴 노인들이었다.
머리가 허연 노년 그룹이 관광지를 꽉꽉 채웠었다.
사회의 기본단위인 신혼 가정이 주택 구입을 시작으로 결혼생활을 할 수 있었고
은퇴 후 삶까지 일찍 설계할 수 있어 영국은 안정적인 사회라는 평을 들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젊어서 일할 때는 주택융자 갚는다고 가계를 꾸리기가 빠듯하지만
열심히만 살면 영국인이 제일 좋아하고 가장 바라는 ‘예측이 가능한 삶(predictable life)’을 살 수 있어
굳이 불안해할 필요가 없었다.
영국인의 여유와 느긋함의 바닥에는 영국 사회복지제도의 4대 기본권리가 받치고 있다는 생각도 한다.
4대 기본권리는 국민이 ‘굶지 않을 권리’ ‘집을 가질 권리’ ‘아프지 않을 권리’ ‘배울 권리’이다.
결국 영국에서는 최악의 경우라도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지는 인생 막장은 없다는 뜻이다.
“큰 집, 좋은 차 가지면 행복하냐”
필자가 영국에 처음 와서 겪은 문화충격에 가까운 경험이 있다.
한겨울인데 집에 난방시설이 고장이 났다.
지금은 한인 동포 기술자가 여러 명 있어서 급하게 부탁하면 한국인 특유의 순발력을 발휘해
한밤중이라도 뛰어와서 고쳐주지만 당시는 영국인 기술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이런 보일러 기술자가 되려면 아주 엄격한 시험을 거쳐야 하기에 이들의 콧대는 하늘을 찔렀다.
지금도 별로 나아지진 않았지만 그때는 정말 예약하기가 힘들었다.
친지의 소개로 어렵게 연결이 되어 예약을 하자니 “일주일 뒤에나 시간이 나니 그때 오겠다”고 사무적으로
말하는데 기가 딱 막혔다.
추운 겨울에 어린아이를 어찌해야 하느냐는 사정은 우리 사정일 뿐이었다.
전기훈풍기를 급히 구해 일주일을 버틴 후 드디어 아침 일찍 기술자가 왔는데 수리가 다행히 오전에 끝났다. 기술자에게 그냥 인사말로 “이제 오늘은 몇 건이나 수리가 남았느냐”고 물었더니
“오늘 일은 끝났고 집에 가서 샤워하고 점심 뒤에 아내와 골프 치러 간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참 예약하기 어렵던데 왜 오후에 일 안 하느냐”고 물었더니
“왜 오후에 반드시 일을 해야 하느냐”고 되레 물었다.
그래서 “수리비가 상당히 높고 예약이 밀리던데 밤을 새서라도 일을 더하면 돈을 더 벌어 좋지 않느냐”고
다시 묻자 그가 “돈을 더 벌면 뭐 하는데?”라고 되물었다.
필자는 “돈을 더 벌면 집도 더 큰 데로 옮기고 차도 바꾸고 휴가도 더 좋은 데로 가고 좋지 않냐”라고 하니
이 친구는 “큰 집, 좋은 차, 휴가 더 좋은 곳으로 가면 더 행복한가”라고 또 되물었다.
갑작스러운 철학적인 질문에 말문이 막힌 필자를 쳐다보던 그의 표정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나는 지금 연립주택에 30년째 사는데 세 식구 살기에는 불만이 전혀 없고
자동차도 영국산 포드자동차라 유지비도 싸고 휴가는 프랑스 노르망디로 거의 20년째 가지만 너무 좋다.
오늘도 돈 더 벌려고 아내와 하는 골프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 그는 그때 무척 단호하게 말했다.
당시 한국에서 막 이민 와서 일 년 내내 휴가도 제대로 못 가고 매일 야근에 일요일 반나절 출근까지
예사로 하던 무역회사 직원으로서는 그의 생활철학이 정말 ‘우주인의 철학’ 같았다.
이제는 영국인의 ‘소확행’을 이해하는 수준까지는 갔지만
영국인의 여유를 따라가려면 이 생에서는 안 될 것 같다.
필자는 영국인들이 ‘가난하나 우아하게 산다’고 표현한다.
그 말은 영국인이 옆으로 눈 돌릴 여유 없이 한 푼도 아껴가면서 빠듯하게 살지만
인간으로서 할 일은 다 하고 산다는 말이기도 하다.
거기다가 하나를 더 한다면 ‘그렇게 살면서도 초라하다고 느끼지 않고 당당하게 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주위의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 친구, 친지, 이웃, 동창, 회사 동료들까지 영국인 전체가 그렇게 살고 있음을 잘 안다.
아무리 주위 신경 안 쓰고 비교하면서 살지 않는 영국인이라고는 하지만 정말 혼자서만 그렇게 살 수는 없다. 모두 비슷하게 살기에 그들 속에 묻혀서 초연하게 살아갈 수 있다.
템스강 보트에 사는 하원의원
거기다가 자신이 그렇게 살아도 절대 피해보지 않는다는 확신도 있다.
권력이 있다고 해서 줄 중간에 끼어든다거나 줄 제일 앞에 서는 일은 영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영국인의 눈에는 핏발이 잘 서 있지 않다.
좀 더 가혹하게 얘기하면 영국인들은 가난을 계급이라고 여긴 채
뿐만 아니다.
거기에 하나 더 하자면 아무리 어렵더라도 어떻게든 세상을 도우면서 살아간다.
2018년 국민 중 61%가 기부
2016년 영국 총 자선금액은 97억파운드(14조5500억원)였다.
최근 영국 언론에 감동적인 기사 하나가 나왔다.
영국인은 이렇게 스스로를 초라하지 않게, 고귀하게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