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성락원, 한국 정원의 정수 보여줘

colorprom 2019. 4. 18. 13:58



유홍준 "성락원, 한국 정원의 정수 보여줘시민들에겐 큰 선물"


조선일보
                             
             
입력 2019.04.18 03:00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베일에 싸여 있던 성락원(城樂園)은 한국 정원의 미(美)와 철학을 그대로 간직한 유서 깊은 장소입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이자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70·사진) 명지대 석좌교수는 17일 본지 인터뷰에서 "전남 담양 소쇄원(瀟灑園), 전남 완도 보길도 부용동(芙蓉洞)과 함께 한국의 3대 정원으로 꼽히는 성락원이 시민에게 개방되는 것은 큰 선물과도 같은 사건"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유 교수는 "성락원은 인공적인 요소가 자연의 이치를 절대 거스르지 않는 한국 정원의 정수를 보여주는 곳"이라고 평가했다. 중국이나 일본의 정원은 정해진 기준과 형식에 따라 만들어졌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비슷한 모습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한국의 정원은 특징과 형식을 공식화하기 어렵다. 주변 산과 계곡, 암반 등 자연환경을 최대한 살리기 때문에 각기 뚜렷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언제나 산과 자연의 품에서 함께 어우러져 살아온 옛사람들의 삶이 그대로 우러난 것으로 풀이된다. 성락원에는 이 같은 모습이 잘 드러난다는 것이 유 교수의 설명이다.

성락원을 거니는 것은 한 편의 영화를 감상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유 교수는 비유했다. 관람자가 영화를 보듯, 정원을 거니는 이가 극적인 긴장감을 느끼도록 조성됐다는 것이다. 정원 입구에 있는 가산(假山) 때문에 밖에서는 안에 정원이 있다는 사실을 짐작하기 어렵다. 정문을 통과해 전원(前園)을 지나 내원(內園)까지 닿고 나서야 왜 성락원이 이름 그대로 '도성 밖 자연의 아름다움을 누리는 정원'을 지녔는지 알게 된다.

유 교수는 "많은 분이 서울 한복판에 조선시대 선비들이 자연 속에서 풍류를 즐기던 정원이 있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라며 "1970~80대 재개발 바람을 어렵게 피하고 원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성락원은 조경학적·역사학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 장소로서 시민들에게 소중한 공부의 장이 될 것"이라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4/18/2019041800281.html


200년 잠자고 있던 '비밀 정원'이 열린다


조선일보
                             
  • 이해인 기자
    •          
    입력 2019.04.18 03:00 | 수정 2019.04.18 08:46

    조선시대 선비들이 풍류 읊던 '성락원' 23일 첫 일반 공개
    의친왕이 별궁으로 사용국내 3대 전통 정원으로 꼽혀

    서울 성북구 성북동 북한산 자락에 조선시대 선비들이 시를 읊으며 풍류를 즐기던 '비밀 정원'이 있다. 서울 시내 현존하는 유일한 조선시대 후기 별서정원(別墅庭園·별장에 딸린 정원)인 성락원(城樂園)이다. 조선 철종(1849~1863)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沈相應)의 별장으로 쓰이다 고종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이 별궁으로 썼다. 들어서는 순간 물소리, 바람 소리, 새소리가 귓가를 가득 메운다. 전남 담양 소쇄원(瀟灑園), 전남 보길도 부용동(芙蓉洞)과 함께 '국내 3대 전통 정원'으로 꼽히기도 한다.

    200여년간 잠자고 있던 비밀 정원이 오는 23일부터 처음으로 시민들에게 개방된다. 아직 복원 공사가 다 끝나지 않아 이번엔 6월 11일까지만 문을 연다. 정식 개방은 내년 가을쯤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성락원을 관리하고 있는 고(故) 심상준 제남기업 회장의 후손 측은 "2008년부터 시작된 복원 공사가 70% 정도 마무리됐다"며 "하루라도 빨리 많은 분이 이곳을 즐기실 수 있도록 이번에 개방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서울 성북구 성북동 북한산 자락에 있는 성락원 내원(內園)에 있는 장빙가(檣氷家) 다정(茶亭)에서 바라본 자연 연못 영벽지. 장빙가는 의친왕이 기거하던 집이다. 조선 사대부 선비들은 영벽지 한가운데에 있는 바위에 앉아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성락원을 “자연과 인공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한국 정원의 진수”라고 평가한다.
    서울 성북구 성북동 북한산 자락에 있는 성락원 내원(內園)에 있는 장빙가(檣氷家) 다정(茶亭)에서 바라본 자연 연못 영벽지. 장빙가는 의친왕이 기거하던 집이다. 조선 사대부 선비들은 영벽지 한가운데에 있는 바위에 앉아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성락원을 “자연과 인공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한국 정원의 진수”라고 평가한다. /이진한 기자
    지난 12일 방문한 성락원은 높이 3m가량의 거대한 철문으로 속세와 구분돼 있었다. 굳게 닫힌 대문이 열리자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200년 전으로 떠나는 시간여행이 시작됐다. 성락원 관계자는 "북한산 두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이곳 쌍류동천(雙流洞川)에서 하나로 합쳐져 성북동으로 흐른다"며 "정원의 앞뜰을 의미하는 전원(前園)의 시작점"이라고 소개했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외나무다리를 건너자 약 4360평 규모(1만4404㎡)의 탁 트인 정원이 본모습을 드러냈다.

    1953년 지어진 성락원의 정자 송석정 내부.
    1953년 지어진 성락원의 정자 송석정 내부. /이진한 기자
    성락원은 조선 전통 정원의 구성인 전원(前園), 내원(內園), 후원(後園)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2008년 복원 공사가 시작된 후 연못 '영벽지(影碧池)' 주변에서 잔디에 덮여있던 너비 5m의 거대한 바위가 발견됐다. 영벽지 서쪽 암반 아래에 각인돼 있던 장빙가(檣氷家·고드름이 매달려 있는 집)라는 글자도 드러났다. 완당(阮堂)이라는 낙관이 함께 새겨져 있어 일부에서는 추사 김정희가 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바깥 뜰에는 1953년 지어진 정자 송석정이 자리하고 있다. 송석정에 들어서면 저 멀리 남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성락원 위치 지도

    성락원은 독립운동의 거점으로도 쓰였다. 신현실 우석대 조경학과 교수는 "의친왕이 독립운동가들을 지원하는 공간으로 성락원을 썼다는 기록이 의친왕의 다섯째 딸인 이해경 여사의 자서전에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1992년 대한민국 사적 378호로 지정된 뒤 2008년에는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35호로 지정됐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도심에 남아 있는 조선 전통의 정원이라는 의미가 크다"며 "우리가 보존해야 할 중요한 유산"이라고 했다. 성락원 관람은 매주 월·화·토요일에 할 수 있다. 하루에 일곱 번씩 진행되는 단체 관람으로만 볼 수 있다. 고즈넉한 관람을 위해 회당 최대 20명으로 제한된다. 사전 예약이 필수다. (02)745-0181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4/18/2019041800283.html


    이건(kur****)
    2019.04.1810:30:35신고
    무슨 200년 동안 잠자던 정원? 1985년~ 경에도 예지원이란 여성교육기관이 이곳에서 교육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심완섭(xgxg8x****)
    2019.04.1810:21:36신고
    심씨 특히 청송 심씨들은 국민과 국가를 위해서 좋은 일을 하고 사는 사람들 같네요. 그런데 왜 이제서 개방을 .... ..
    형남민(ba****)
    모바일에서 작성2019.04.1806:57:53신고
    "성락원은 조선 전통 정원의 구성인 전원(前園), 내원(內前), 후원(後前)"(?) '내전(內前), 후전(後前)'은 이상하다. '내원(內園), 후원(後園)'이 한자로 맞지 않을까?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4/18/201904180028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