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와 타자들' 출간한 오스트리아 여성 철학자, 이졸데 카림
'타자 혐오'를 철학적으로 탐구… 작년 하노버 '철학도서상' 받아
![이졸데 카림](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904/16/2019041600156_0.jpg)
백인 인종주의자가 지난달 15일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이슬람사원(모스크)에 총기를 난사해 50명을 죽게 한 사건은 '타자 혐오'에서 발생한 극단적 범죄였다. 최근 한국 사회에도 계층·세대·정파 간 혐오 정서가 강해지고 있다. '나'와 '타자'의 갈등과 반목은 해소 불가능한 일일까. 최근 번역 출간된 '나와 타자들'(민음사)은 '타자 혐오'라는 주제를 철학적으로 탐구한 책이다. 오스트리아 철학자이자 칼럼니스트인 이졸데 카림(60)이 쓴 이 책은 2018년 하노버 철학연구재단이 주는 '철학도서상'을 탔다. 이 여성 철학자에게 이메일을 보내 답변을 받았다.
―크라이스트처치 사건 같은 인종주의 테러는 왜 일어날까.
"마침 이 문제에 대해 오스트리아 주간지 '팔터(Falter)'에 글을 썼다. 총격 테러범이 선언문에서 '백인의 나라를 만들고자 한다'고 한 것은 '문명 전쟁' 또는 '종족 전쟁'을 상상한 것이다. 백인종은 다른 인종의 출생률이 높아 위협을 받는다고 상상한다. 따라서 테러범의 상상 속에서 무고한 사람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종족 전쟁에서 아이를 낳는 행위 자체가 전쟁 수행의 일환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모스크에서 기도하는 사람과 아이들까지 살해한 것이다. 테러범의 망상 속에서는 무고한 사람들도 큰 위협이다."
―인종주의와 이슬람 근본주의는 양극단에 있는 것 같지만 결국 같은 논리라고 했다.
"둘은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정체성을 강화한 형태라는 점에서 서로 거울에 비친 모습이다. 강한 정체성을 가지고 타자를 차단하는 방호벽을 만든다. 양자에게는 공동의 적이 있다. 자유주의적이고 열린 사회가 그들의 적이다."
―이질적 문화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공존을 위한 첫걸음은 기존에 살던 사람이나 새로 온 사람이나 모두 자기 자신이 변해야 한다는 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떤 문화도, 어떤 정체성도 절대적인 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 더 이상 동질성에 기반해 작동하지 않는 사회를 구상해야 한다. 이는 차이를 서로 연결 짓는 과정이며, 굉장히 민주주의적인 과정이다. 다원화 사회는 피할 수 없다."
―당신은 우파 포퓰리즘을 비판했다. 하지만 국가 파탄 상태에 있는 베네수엘라 사례를 볼 때 포퓰리즘은 좌파든 우파든 문제 아닌가.
"동의한다. 포퓰리즘은 어떤 형태든 위험하다. 포퓰리즘은 적을 규정하고 다원화를 거부함으로써 작동하기 때문이다. 포퓰리즘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민주주의의 강화를 통해서만 다원화 사회를 만들 수 있다."
―'나'와 '타자' 사이의 갈등을 줄이고 협력을 높이는 정치는 어떻게 가능할까.
"중요한 것은 소속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 사이의 연대이다. 우리는 공동 생활의 규칙에만 속할 수 있다. 이런 규칙은 어느 정도 협상이 가능하다. 공동 생활을 위한 평화의 공식이 필요하다."
―한국 사회에도 '타자 혐오'가 커지고 있다. 정치적 반대자를 적으로 규정한다.
"어떤 일이 정당성이 있는가 하는 일에 관해 아무도 결정을 내리지 않는 것이 오히려 정당성을 보장한다. 상대를 적으로 만드는 것은 민주주의의 영역을 떠나는 일이다. 적대(敵對)는 민주주의의 범주가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민주주의는 전체주의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