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말. 비슷한 시점 프랑스와 북아메리카 대륙에선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바로 프랑스대혁명과 미국 독립선언이었다.
사실 미국 독립운동과 프랑스혁명은 '계몽주의'라는 같은 철학적 배경에서 시작됐다.
그런데 흥미로운 일이 벌어진다.
역사에서 사라졌던 민주주의를 다시 되살린 미국과는 달리
프랑스혁명은 불과 수십 년 만에 포퓰리즘의 테러, 독재,
그리고 결국 나폴레옹이라는 새로운 황제의 등장으로 이어진다.
미국과 프랑스, 과연 무엇이 달랐던 걸까?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먼저 '지형의 저주(curse of geography)'를 생각해볼 수 있다.
정치, 경제, 문명 모두 인간의 힘으로 바꿀 수 있지만 지형적 제약만큼은 어렵다.
대서양과 태평양으로 보호된 미국은 다른 나라들의 간섭 없이 새로운 민주주의 국가 설립에 성공하지만,
왕정 국가들로 둘러싸인 프랑스는 바로 전쟁과 침략을 경험해야 했다.
지형적 행운은 미국을 도왔지만, 지형적 저주는 프랑스와 유럽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
누구보다 더 강력한 지형의 저주를 받는 나라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우리다.
중국, 북한, 일본, 러시아를 옆에 두고 있기에 대한민국의 미래는 우리만의 선택 여지가 아니다.
특히 미국과 글로벌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은 우리에겐 언제나 지형적 숙명적인 존재였다.
겨우 지난 수십 년 동안만 중국보다 더 잘살고 더 세계화되었던 우리.
이제 다시 글로벌 수퍼파워로 등장하는 중국과의 관계를 재정리해야 한다.
우리만이 아니다.
'투키디데스 의 함정'에 빠진 미국과 중국 사이에 생존해야 하는 다른 국가들은 이미 시작한 일이다.
일본은 '영원한' 미국의 동맹인 '아시아의 영국'이 되기로 결정했고,
싱가포르는 '아시아의 스위스'가 되어 간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막연한 장밋빛 미래가 아닌, 철저히 현실적이고 합리적 계산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미래에서 대한민국의 위치를 잡기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