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인적쇄신 잘 봐야... 박근혜·이한구 하듯 안할 것" "시대 꿰뚫는 철학 없이 인물만 바꾸는 눈속임은 성공 못해" "역사관과 시대흐름에 대한 이해 필요... 더 중요한 것은 철학" "초선 의원 몇 데려다 놓는다고 정치에서 무슨 역할을 기대하나" "문제 해결보다, 문제를 상대 찌르는 무기로 쓰는 정치권이 문제"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2일
자신을 지지하는 모임인 '징검다리 포럼' 대구·경북 창립식에 참석했다.
행사 장소인 대구 수성구 그랜드호텔은 이날 저녁 늦게까지 참석자들로 붐볐다.
그런데 모임을 마친 그는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김 전 위원장은 "한국당이 (대구를 포함해) 내년 선거를 낙관하기 어려워 보인다"며
"한 달 전과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김 전 위원장은 지난달 4일 미국에서 귀국한 직후 첫 일정으로 모교인 대구 영남대에서 특강을 했었다.
한국당 내에선 내년 총선 때 김 전 위원장의 대구 수성갑 출마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이 지역 현역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이다.
김 전 위원장이 미국에서 돌아온 뒤 한달여 동안 한국당 지지율은 내리막을 탔다. 한동안 상승세를 타던 흐름이 꺾였다. 황교안 대표 취임 3개월째였던 지난 5월 마지막 주 한국갤럽 조사에서 한국당 지지율은 24%까지 올랐다. 민주당(36%)과 12%포인트 차이였다. 그러나 7월 첫째 주 조사에선 20%로 하락해 민주당(40%)의 절반 수준이 됐다. 보수의 텃밭인 대구·경북 지역 상황도 마찬가지다. 지난 6주 동안 한국당의 대구·경북 지지율은 4%포인트(42%⇾38%) 떨어졌고, 민주당 지지율은 4%포인트(22%⇾26%) 상승했다. 한국당 내 분위기도 자연스레 "내년 총선에서 해볼 만 하다"에서 "이대로 가면 위험하다"로 바뀌었다.
지난 2·27 전당대회에서 당선된 황 대표에게 당 지휘권을 넘긴 김 전 위원장은 "지금 한국당의 문제는 보수통합이 아니라 내부 혁신"이라며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지금 한국당에 인적 쇄신을 할만한 동력으로서 리더십이 있기는 한가"라고 했다. 그는 "김대중·노무현은 다음에 정권을 잡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주는 카리스마가 있었고, 나아가 당원들의 집합적인 신념이 있었다"며 "그런 의미에서 지금 한국당의 리더십은 걱정"이라고 했다.
김 전 위원장은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냈다. 그런 그는 최근 한·일 갈등과 한국 경제의 위기 문제에 대해서도 걱정을 쏟아냈다. 김 전 위원장은 "일본의 무역 규제 조치는 한국 정부가 한·미·일 삼각 협력 체제를 의도적으로 허물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갖고 있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며 "일본 측의 이런 의심을 풀기 위한 한국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 전 위원장은 "결국 문재인 대통령이 사태 수습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김 전 위원장은 또 한국 경제에 대해 "최근의 경제 위기가 단순히 경기 순환적인 위기가 아니라 70년 동안 쌓아온 한국 경제의 근본을 허무는 것 아닌가 걱정된다"며 "다음 정권에서 정책 기조를 바꿔도 회복하기 어려울 수 있고, 지금 상황을 방치하면 대한민국판 고난의 행군이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더 늦기 전에 문 대통령이 경제 정책 기조를 바꿔야 한다"며 "나라가 어려운 상황에서 야당도 제대로 된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김 전 위원장을 지난 11일 조선일보 미술관 1층에서 만난 후, 포럼을 마친 이튿날 다시 전화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一대구 포럼 창립식 분위기는 좀 어땠나.
"많이들 찾아와 주셨다. 그런데 내 마음은 오히려 무겁다. 불과 한 달 사이에 대구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더라. 쓴소리도 많이 들었다. ‘대구는 뒤에서 받쳐줄 테니, 지역에는 내려오지 말고 중앙에서 (당을 쇄신하는) 활동을 하라'는 지역 원로들의 말씀이 많았다."
一황교안 대표 취임 후 상승하던 당 지지율이 최근 정체·하락세다.
"악재(惡材)가 많았다. 당 지도부가 문제가 생기면 새로운 이슈를 만들어서 악재에 대처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 새로운 이슈와 비전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러니 해묵은 계파논쟁이나 지엽적인 해프닝성 이슈에 당이 허우적거리게 됐다. 정치는 '꿈을 파는 것'이다. 유권자들이 살 만한 꿈을 내놓지 못하니 자꾸 과거로 가는 거다."
一황 대표 취임 후 표면적으로 잦아들었던 한국당 내 친박·비박 계파 갈등이 최근 당직, 국회직 인사를 놓고 재연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
"비대위원장 때 친박 비박 인사를 안분(按分)하느라 사람 쓰는 게 어려웠다. 당에 쓰임새가 있는 사람인데 친박이라서 기용을 못하기도 했다. 지금 친박· 비박을 나누는 것은 의미가 없다. 사람을 봐야 한다. 다만 황 대표가 당직에 사람을 기용할 때, '사정이 이러해서 지금 이 사람이 꼭 필요하다'는 이유를 명확히 밝혔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니 계파 갈등이니 하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一내년 총선을 앞두고 보수 통합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박형준 동아대 교수와 대담하는 과정에서 청중들 질문을 받았는데, 보수 통합에 대해 많이 묻더라. 그만큼 현 보수 진영의 과제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국당의 문제는 통합, 당내 분열 구도만 해결한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라고 했다. 선거를 생각하면 다른 변수들이 많다. 여당인 민주당은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과감한 인적 혁신을 할 것이다. 반대로 한국당은 인적 쇄신을 못할 가능성이 높다. 보수 분열에 인적 쇄신도 부진하고, 거기에 더해 북한의 김정은이 어떤 방식으로든 현 여권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취할 것이다. 여기에 정부의 보조금 혜택을 받는 사람들의 표심은 여권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 한국당이 진짜 걱정해야 할 일은 이런 것들이다."
一민주당은 대통령의 복심이라는 양정철씨가 당 싱크탱크 수장을 맡아 정책, 인재영입 등에서 다이나믹한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민주당은) 지난 2016년 총선을 판가름 지은 새누리당 박근혜· 이한구식 공천 사태를 만들지 않을 것이다. 인물 교체를 위해 매우 세련되게 접근할 것이다. 반면 여권과 비교해 야권은 인적 쇄신에 제약이 많다. 우선 리소스(자원)가 부족하다. 여당은 공기업 같은, 총선 불출마를 선택하는 현역 의원에게 줄 자리가 있지만 야당은 그런 게 없다. 용퇴를 유도할 자원이 없는 것이다. 그런 핸디캡을 극복하려면 야당은 집권 가능성을 보여줘야 한다. 그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야당에 어떤 인재가 들어오겠나. 집권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하는 리더십이 문제다."
一지금의 한국당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는 뜻인가.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한국당에 인적 쇄신의 동력을 가진 리더십이 있기는 한가. 단순히 황교안 리더십의 문제 차원이 아니다. 김대중·노무현은 다음 정권을 잡을 것이란 카리스마가 있었다. 그게 리더십의 원천이 됐다. 하지만 더 크게는 당원들 사이에서 다음 정권을 잡을 것이라는 집합적 신념이 존재해야 한다. 그래야 인적 자원이 모인다. 그런데 지금 한국당 리더십이 그런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걱정이다."
一보수통합 문제로 돌아가보자. 현 한국당 지도부에선 우리공화당으로 분열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다.
"당 지도부가 보수 통합의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우선 보수 통합의 방향에 대해 당이 입장을 정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한국당의 지지 기반인) 대구에서 목소리를 좀 내달라고 (지역 원로들에게) 말했다. 보수를 통합하라는 목소리가 대구에서 나오면 한국당 현역 의원들이 우리공화당으로 쉽게 움직일 수 있겠나. 다만 분열 구도만 해결한다고 한국당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一인적 쇄신 문제를 걱정하는 것인가.
"4년 전 총선 때 영입한 인재를 4년 후 총선 때 인적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퇴출하는 일이 한국 정치권에서 계속되고 있다. 총선 때 현역 교체율이 제일 높은 나라가 한국이다. 인적 쇄신의 이름으로 새로 수혈한 인재 영입에 문제가 있었단 뜻 아닌가. 인재를 영입하더라도 당 지도자가 시대를 관통하는 철학과 가치, 비전을 정립해놓고 그에 맞는 사람을 영입해야 한다. 그동안 한국 정치는 여야가 담합하듯, 인물만 바꿔서 눈속임을 했다. 대구에서도 정치권의 (영입 제안) 연락을 받았다는 사람을 여럿 만나봤다. 공통점이라고는 철학·비전보다는 지역 사회에서 표 좀 나올 것 같은 사람이었다. 인재 영입이 이런 식으로 이뤄져서는 인적 혁신이라고 할 수 있나."
一한국당, 보수 진영이 다음 총선에서 제시해야 할 철학·비전은 무엇이 돼야 한다고 보나.
"한국 사회가 마주한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한국 경제가 내려앉는 데 대한 엄밀한 원인 분석을 하고, 지금 현재 변화하고 있는, 일종의 역사에 대한 견해를 내놓는 인물이 필요하다. 1960~70년대 운동권 논리, 1930년대 미국 좌파 논리를 모자이크로 끼워맞춘 (현 집권 세력이 운영하는) 국가가 잘 굴러가겠나. 역사관과 시대 흐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철학이다. 올바른 철학, 시대를 꿰뚫는 메시지를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一그렇다면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나
"한국 사회는 중요한 의제가 의제로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사회적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 해결책을 모색하기보다 상대를 찌르는 무기로 사용한다. 표를 얻는 도구로 사용한다. 다른 사람의 아픔 위에 올라타서 그 위에서 기생한다. 세월호가 터지고 나서 정권이 교체됐다. 사고의 가장 큰 원인인 노후화된 연안여객선은 여전히 바다 위를 항해하고 있다. 대구와 제천 등에 수십명의 사상자를 낳은 화재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누가 이기든 국민은 패배한다. 그렇게 국가는 하강 국면에 접어든다."
一내년 총선에서 대구 수성갑 출마설이 나오는데.
"김병준이 출마 하고 않고가 뭐 그리 큰 문제냐. 내 고민은 어디에 출마하느냐 하는 게 아니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사회에 던져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대구가 지금 같은 정치적 좌절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가 고민이다."
"이념 장사꾼이야말로 우리 사회에서 아무짝에도 필요 없는, 모순에 기생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은 이날 오후 서울 신촌의 한 영화관에서 지지자들과 영화 '기생충'을 관람한 뒤 "우리 사회의 양극화 문제를 쉽게 봐서는 안되는데 이를 몹시 단순화해 장사꾼의 심정으로 장사하는 사람이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이어 "양극화는 지금의 산업구조, 금융개혁, 노동개혁, 인력육성 체계 등 모든 것이 잘못돼 일어나는 문제기 때문에 오로지 부자들만 욕하고 처벌하면 사회통합이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김 전 위원장은 "이 정부는 모든 문제가 세금만 걷어서 나눠주면 끝나는 것처럼 하는데 이건 답이 아니다. 쉽게 답을 내고 그게 답인 양 떠드는 것이야말로 양극화 문제에 기생하는 행위"라며 "지금 정부가 분배 개선 노력을 안 하면서 분배를 얘기하고 있다. 돈을 더 걷어서 나눠주는 것은 분배가 아니다"라고 했다.
또 "우리 국가·정부·정치인들이 양극화 문제를 가지고 선동하며 상대를 찌르는 무기로 쓰는 차원에서 벗어나 문제 해결을 위해 진실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김 전 위원장은 지난 4일 귀국하는 길에 기자들과 만나 "기왕 정치 현실에 발을 디뎠는데 발을 빼기가 쉽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날 오후 모교인 영남대에서 특강을 하기도 했다. 그는 이번 주에 청년층 지지자들과 전남 강진을 방문할 예정이며, 오는 28일에는 고향인 경북 고령에서 강연할 계획이다.
자유한국당 김병준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4일 "지금 정부가 잘못 가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은 저서 집필 등을 위해 세 달여 미국에 머물다 이날 귀국했다. 그는 이날 오후 대구에 있는 영남대에서 특강을 할 예정이다. 영남대는 김 전 위원장 모교다.
김 전 위원장은 이날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서 기자들과 만나 "교민들을 만나고 간간히 국내 뉴스를 접하면서 글로벌사회의 변화에 우리가 너무 뒤처지고 있고, 이대로 있어서는 국가에 큰 위기가 올 수 있다는 걱정이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에 있으면서, 국가에 의한 규제·감독·지배가 아니라 시민 스스로 공동체와 시장 속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자율의 틀 속에서 움직이고, 국가는 그야말로 국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만 하는 게 맞다는 사례를 수없이 목격했다"며 "이게 맞는 일인데, 지금은 오히려 그것을 역행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역행하는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뜻 맞는 분들이 전부 하나가 돼서 다 모여야 한다"고 했다.
또한 김 전 위원장은 또한 "기왕 현실정치에 발을 디뎠는데, 여러 사람의 기대도 있고 어떤 역할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는데 발을 빼기가 쉽겠느냐"며 "국가를 위해서 문제가 많은 이 상황을 정리하는데 조금이라도 내가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지금도 같은 생각"이라고 했다. 이를 두고 당권 및 대권 도전의 의사를 내비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전 위원장은 내년
총선에서 대구 수성갑에 출마해 여권의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김부겸 의원과 붙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김 전 위원장은 황교안 대표에 대해서는"고생을 굉장히 많이 한다"며 "내가 있었으면 저 고생을 내가 했을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내 사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겠다"며 "조만간 다 뵙고 이야기를 듣고 그다음에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이 27일 물러난다. 눈이 충혈돼 고생했다고 한다. 임기 막판에 꽃다발 대신 악재(惡材)가 몰려든 까닭이다.
―재임 기간 자기 스타일이나 강한 인상을 못 보여준 것 같다.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나?
"각자 스타일이 있다. 나는 청와대에서 일했던 습관 때문인지 안 드러내는 쪽에 익숙했다. 당 내부의 시끄러운 모습을 안 보이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부산 전당대회에서 내가 태극기 부대를 향해 '조용히 하라'며 단호한 모습을 보이자 '저 양반에게 저런 면이 있었나'라고들 했다."
―전당대회에서 그동안 봉합해놓았던 당내 갈등과 퇴행적인 모습을 다 드러냈는데?
"극렬 활동을 하는 분들이 뒤늦게 대거 입당하면서 전당대회가 소란스러웠다. 당초 이런 상황을 예견했으나 저지하지 않았다. 우리 당이 이 정도는 소화해낼 수 있다고 봤다. 마지막 두 전당대회에서는 이분들이 좀 자제하지 않았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유영하 변호사가 황교안 후보를 향해 '배신자론'을 제기하면서 당대표 선거에 '박근혜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황 후보의 정치적 배경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과거 같았으면 유영하 변호사의 발언 파장이 컸을 텐데 이번에는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황 후보의 '최순실 태블릿PC 조작 가능성' 발언도 '전당대회에서 왜 이를 제기하느냐'는 정도였지, 당내에서는 주요 쟁점으로 확산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태블릿PC 조작 가능성'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나?
"지금은 선거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입장을 밝힐 때가 아니다."
―내가 취재한 바로는 JTBC가 태블릿PC를 기술적으로 조작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다만 JTBC가 텅 빈 사무실의 고영태 서랍에서 태블릿PC를 입수하게 된 경위와 그 태블릿PC가 과연 최순실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혹이 있다. 국과수도 태블릿PC 사용자를 최순실로 특정하지 못했다.
"나중에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지금은 당이 어떤 노선을 견지하고 혁신할 것인지를 놓고 논쟁이 벌어져야 하는데 박근혜 문제가 계속 거론되는 것은 유감스럽다."
―당초 비대위에 주어진 임무 중에는 '박근혜 유산(遺産) 정리'가 있었다. 차라리 '박근혜 탄핵 끝장 토론'을 벌여 어느 선에서 합의를 봐야 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 뒤 친박·비박이 함께 대국민 사과를 했으면 자유한국당에 대한 기대가 달라졌을 것이다.
"처음에 나도 '끝장 토론'으로 입장 간격을 좁혀볼 생각을 했지만 오히려 갈등의 골만 깊게 할 것 같았다. 시간이 해결하도록 버려두자고 마음먹었다. 다른 이슈에 묻혀가길 원했다. 그 뒤 당협위원장 21명을 정리하면서 한번 매듭은 지었다. 내 나름대로 '박근혜 문제'가 상당히 정리됐다고 봤다."
―정리됐다는 게 지금 전당대회의 모습인가? '박근혜의 옥중 정치'라는 말도 나왔다.
"당내 영향력에서 박 전 대통령은 지나간 인물이다. 미래가 아니라는 걸 알 것이다. 인간적으로 연민이 있지만 그가 사인을 준다고 따라가지 않는다. 이제 친박·비박 같은 계파 논리로 더 이상 뭉치거나 움직이지 않는다. 친박 중에는 황교안 후보를 처음부터 지지하지 않은 이도 있었다. 오세훈 후보에 대해 비박 진영에서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것도 아니었다."
―어쨌든 말이 나왔으니까, '박근혜 탄핵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었나?
"탄핵이 옳았느냐로 돌아가면 당이 어려워진다. 이런 판단은 시간이 더 필요하다. 박 전 대통령을 수감 상태로 두는 게 옳은가. 도주나 증거 인멸 우려가 없지 않은가. 이런 쪽으로 당내 목소리를 모을 필요가 있다."
―박 전 대통령은 공천 개입과 관련해 2년형이 확정돼 구속 만료에 따른 석방은 불가능하다. 뇌물 수수 혐의 등에 대해서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안 났기 때문에 사면 대상도 되지 않는다.
"법률상 그러면 어쩔 수 없는데 어떤 식으로든 전직 대통령에 대한 배려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 전까지 당내에서 불구속 재판 얘기를 꺼내는 것조차 어려운 분위기가 있었다. 반발하는 세력도 있어 자칫 당이 걷잡을 수 없는 갈등에 빠질 것 같았다."
―'태극기 세력'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가?
"이들도 보수 진영의 한 축이다. 배격할 게 아니라 이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토론하고 끌어안아야 한다. 태극기 집회의 한 그룹이 나를 찾아왔다. 현 시국 진단과 미래 과제에 대해 얘기하니 충분히 통했다. 과거 문제에만 집착하지 않으면 함께 갈 수 있다."
―한국당 지지층 여론조사에서 황교안 후보가 가장 높게 나온다. 여당에서는 '도로친박당' '탄핵당'이라며 공격하는데?
"황 후보에게는 '박근혜 프레임'을 덮어씌울 수 있다. 내년 수도권 총선에서 불리할 수 있다. 본인이 통합 노력을 강하게 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이는 극복해야 할 과제다."
―오세훈 후보가 될 경우에는 박근혜 지지 세력의 이탈이나 당의 분열 가능성이 제기되는데?
"탈당 경력이 있는 오세훈 후보에게도 난관이 많다. 하지만 당이 쉽게 분열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탄핵 과정에서 실패한 분당(分黨) 기억이 있어 싸우더라도 당 안에서 하자는 공감대가 있다."
―태극기 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는 김진태 후보의 변수는?
"여론조사에서는 밀리고 있지만 투표 참여율이 높은 적극적 지지층이라 결과가 어떨지 모르겠다."
―자유한국당은 여전히 '5·18 프레임'에 갇혀 있다. 이렇게 사태가 커질 줄 알았나?
"공청회를 주최한 해당 의원이야말로 이런 역풍을 맞을 줄 몰랐을 것이다. 우리 내부에 안이하고 편향된 시각이 있었다. 설령 발언의 자유가 있다 해도 때와 장소를 가릴 줄 알아야 한다."
―당초 여야가 합의한 '5·18 진상규명특별법'의 조사 대상에는 '북한군 개입설'이 들어있었지만 이번 파동으로 쑥 들어갔다. 하지만 '5·18 민주 유공자 명단 공개' 요구는 계속되고 있다. 그 유공자는 작년 말 기준 4415명으로 늘어났다. 프라이버시 보호에 따라 비공개해왔다는데, 김 위원장의 입장은?
"명단 상당수는 이미 5·18 기념 문화재단의 지하실에 공개돼 있다. 동명이인이겠지만 '문재인'이라는 이름도 있다. 이 때문에 정확히 누구인지, 무슨 공적으로 선정됐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프라이버시라면 국회 안에서라도 확인하게 해줘야 한다.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이 들어있거나 루머가 계속 확산되면 이야말로 유공자들의 명예를 해치는 것이다."
―여야 4당은 최장 7년형의 '5·18 왜곡 처벌법'을 발의했는데?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같은 사안에 대해 다양한 입장을 가질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하에서 나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해서 법으로 처벌하겠다는 것은 과한 것이다."
―5·18 공청회 파동 다음 날 문 대통령은 자유한국당 추천 진상조사위원에 대한 서명을 거부했다. 그 뒤로 대통령이 공개 석상에서 두 번 5·18 관련 발언을 직접 했다.
"대통령이 이를 끄집어낼 때마다 다시 문제가 커진다. 내가 비대위원장으로서 여러 번 사과했고 당의 입장이 아니라고 했다. 사무실로 찾아온 5·18 단체 분들에게도 사과했다. 해당 의원 징계 절차는 진행되고 있다. 대통령이라면 '자유한국당이 저렇게 사과했으니 이 문제는 넘어갑시다'라고 해야 하지 않나. 내가 열 번 스무 번 계속 사과해야 하나. 똑같이 비교할 것은 아니지만 현 정권은 손혜원·김경수 사건이 터졌을 때 한 번도 사과하지 않았다. 심지어 두둔했다."
―문 대통령이 5·18 사안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보나?
"5·18 관심 표명이 진정일 수도 있겠지만, 대통령으로서는 남북 관계, 미북 정상회담, 소득 격차, 일자리 문제 등 산적한 과제가 있다. 5·18을 계속 언급하는 것이 이런 국가적 과제를 잊어버렸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면, 야당을 한 방 더 때리겠다는 의도가 아니겠나. 그 어느 쪽도 옳지 않다."
―문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식을 한마디로 어떻게 평가하나?
"문 대통령을 이념 지향적이라고 하는데, 이념주의자는 그 나름대로 이념 체계가 정확하고 과학적 설명과 논리를 갖춰야 한다. 이분은 이념보다 정서(情緖)에 좌우되는 것 같다. 인권·환경·통일·평화 같은 좋은 게 좋다는 정서, 그걸 앞세운다. 어떻게 실현할지 계획이나 수단은 확실하지 않은데, 참모들이 말없이 따라가고 있다."
―청와대 참모들이 주도한다고 보지 않나?
"대통령의 귀를 잡고 있다고 보는데, 나는 참모들이 대통령의 정서를 따라가는 것 같다. 내일 그만둬도 할 말은 하겠다는 참모를 기용하지 않는 것 같다."
―당내 기반이 없는 비대위원장으로서는 당을 개혁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본다.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
"현실적으로 계파 싸움에 휘말리지 않고 갈 수 있었겠나. 당이 안 깨지도록 방어적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힘들었던 점은 눈에 안 보이는 것들이다. 정당은 최소한 실현 가능한 목표, 꿈, 가치 철학을 갖고 있어야 한다. 우리 정당은 그때그때 표를 따라갈 뿐 그게 없다. 그래서 의원들과 토론하면서 '탈(脫)국가 자유시장주의'를 정립했는데, 나를 향해 '비대위가 어디 갔나' '지지율이 왜 안 오르냐'며 흔들었다."
―비상 정국에서 중도 합리 노선은 설 자리가 줄어든다. 보수 쪽에서 김 위원장을 어떻게 볼 것 같은가?
"노무현 정부에서 왔으니 '가짜 보수 물러나라'고 했
다. 다른 쪽에서는 '저 양반이 잘했든 어찌 했든 엉망이 된 당을 끌고 왔다'는 말도 듣는다. 대구·경북 전당대회에서는 나를 향한 욕설까지 나왔는데, 이들에게 앞으로 나갈 방향을 함께 토론하자고 말했다. 위원장에서 물러나면 이런 역할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