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현 여론독자부 차장](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901/31/2019013103196_0.jpg)
중남미 코스타리카에는 '떠돌이 개들의 땅'으로 불리는 유기견 보호소가 있다.
말 그대로 길거리에 방치된 유기견들을 돌보는 쉼터다.
놀라운 건 그 규모다. 수도 산호세에서 30㎞쯤 떨어진 야산에서 1000여 마리의 개를 돌본다.
야산의 크기만 378에이커(약 46만평)이니 보호소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소나 말도 아니고 개들이 한꺼번에 야산을 뛰어다니는 모습을 담은 온라인 영상은 그 자체로 훌륭한 볼거리다.
개들의 '지상 낙원' 같지만 여기에도 고민은 있다.
비영리단체에서 받은 기부를 바탕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예산이 빠듯할 때가 적지 않다.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인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를 보면
직원 봉급은 물론 개들을 먹일 양식도 아슬아슬할 경우가 생긴다.
아픈 동물들을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고 있다는 '학대 논란'도 종종 불거진다.
이렇다 보니 처음엔 이 단체의 선의(善意)에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나중에는 1000여 마리의 개를 돌보는 일에 따르는 현실적 문제에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
최근 동물 보호 단체 대표의 '집단 안락사 지시 논란'을 보면서
문득 우리와 지구 반대편에 있는 보호소가 떠올랐다.
동물 역시 사람의 인권(人權)에 버금가는 생명의 권리를 지니고 있다는 '동물권'은
20세기 후반부터 선진국에서 광범위하게 퍼져 나간 개념이다.
한국도 그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애완견'은 '반려견'으로 격상됐고,
거리에서 유모차를 끌고 가면 아이와 개 중에 누가 타고 있는지 확인해야 할 정도다.
개를 키우는 사람을 애견인(愛犬人)으로 모자라서 견공(犬公)의 시중을 든다고 '개집사'로 부르기도 한다.
'반려견 1000만 마리' 시대의 풍경이지만, 따뜻한 이상주의와 냉엄한 현실은 일상에서 충돌한다.
한쪽에서는 동물권을 위해 유기 동물 입양은 물론, 채식(菜食)까지 실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다른 한쪽에서는 한 해 10만 마리의 개와 고양이가 주인을 잃거나 버림받는다.
동물이 사람 못지않은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것이 이상주의라면,
고장 난 장난감이나 헌신짝 취급하는 실태 역시 엄연한 현실이다.
기자 역시 개 두 마리를 기르는 '개집사'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양극단 모두 불편하다.
따지고 보면 이번 논란 역시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나 괴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동물 보호 단체 대표의 안락사 지시에 고의성
이 있었는지 여부는 법정에서 가려질 것이다.
선정적인 논란보다 중요한 건 우리 사회에서 '동물권' 자체가 본격적 관심사로 떠올랐다는 사실이다.
일부 동물 보호 단체는
'강아지 공장'처럼 반려견을 대량 생산·판매하는 지금의 산업 구조에도 문제를 제기한다.
작금의 논란과는 별개로 "반려견 구입보다는 유기견 입양"이라는 대안에는 한 번쯤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