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세상]

[시리아, 요르단]세습 권력 물려받고 다른 길 걷고 있는 바샤르와 압둘라 2세 (인남식 교수, 조선일보)

colorprom 2019. 1. 28. 16:45

[新중동천일야화]

세습 권력 물려받고 다른 길 걷고 있는 바샤르와 압둘라 2세


조선일보
                             
  •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          
    입력 2019.01.28 03:11

    소수 기득권층에 무릎 꿇고 결탁해 학살자 된 바샤르
    삼촌의 양보·성원 받으며 국민들 살피는 압둘라 2세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40만 이상이 사망한 시리아 내전은 21세기 최대 비극이다.
    참상의 주범은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이다.

    권력에 눈이 먼 바샤르는 처음엔 폭군이 아니었다.
    본래 시리아 하페즈 전 대통령의 후계자는 러시아 군사학교 출신의 장남 바실이었다.
    그러나 바실이 1994년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후계 구도는 런던에서 안과 전문의 수련을 받던 동생 바샤르로 바뀌었다.
    급거 귀국해 권력 승계를 준비해온 그는 2000년 7월 34세에 시리아 대통령이 됐다.

    런던에서 온 의사 출신 젊은 지도자의 등장은 시리아의 저잣거리를 설레게 했다.
    바샤르는 취임식장에서 아버지와 달리 민주적 지도자가 될 것임을 시사했다.
    정치 개혁, 법치주의, 경제 현대화, 부패 척결 등을 천명했다.
    약속은 행동으로 이어져 인권 탄압과 고문으로 악명 높은 메제흐교도소를 폐쇄하고
    반(反)정부 인사들을 대거 석방했다. 이른바 '다마스쿠스의 봄'이었다.
    고무된 시민사회와 지식인들은 언론 자유와 사법부의 독립을 요구했고 바샤르는 이에 호응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1년도 안 돼 기득권층의 반격이 시작됐다.
    전직 관료들과 아사드 가문의 핵심 인사들은 바샤르를 압박했다.
    권력과 경제력 독점 상실을 싫어했던 그들은 민주화와 개혁을 막아섰다.
    갓 취임한 대통령은 이들을 견제할 힘이 없었다.

    결국 바샤르는 이들과 결탁했다.
    다마스쿠스의 봄은 곧 혹독한 겨울로 변해 반체제 인사들을 검속했고,
    경제는 소수 기득권층 이익의 도구로 전락했다.
    권력의 달콤한 유혹 앞에 이상(理想)을 내팽개친 바샤르는 여느 독재자보다 더 나아가
    2011년 내전 발발 후엔 잔인한 학살자가 됐다.

    대비되는 옆 나라 지도자가 있다. 그와 비슷한 즈음 즉위한 요르단의 국왕 압둘라 2세다.
    영국에서 교육받은 그는 후세인 국왕의 장남이다.

    원래 요르단의 왕위 계승자는 선왕(先王)의 동생인 하산 왕자였다.
    선왕의 서거 직전까지 34년간 왕위 계승자 역할을 했다.
    누구도 왕세제 하산이 다음 왕이 될 걸 의심하지 않았다.
    옥스퍼드 출신 왕세제 하산의 능력과 인품은 자타가 공인할 만큼 뛰어났다.
    그러나 임종을 앞둔 후세인 국왕이 하산의 왕세제 직을 전격 폐위하고 압둘라를 왕세자로 임명하자
    왕실은 크게 술렁였다. 자칫 피바람이 불 수 있었다.

    이때 폐위된 하산 왕자의 행보가 인상적이었다.
    그는 왕위 계승 직을 조카에게 즉각 물려주고 권력에서 떠났다.
    하산 왕자 본인은 물론 30년 넘게 미래 권력에 줄을 댔던 많은 이들의 깊은 좌절감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조카 압둘라 정도는 가볍게 제압할 수 있다고 간언한 이들도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하산은 형의 편지 한 장에 권력을 내려놓았고 조카의 즉위를 축복했다.

    처음에는 권좌(權座)에 어색했던 압둘라 2세는 조금씩 국민과 가까워졌고,
    나름 통치 기반을 탄탄히 할 수 있었다.
    가난한 나라를 이끌어 가야 했기에 국정운영이 쉽지 않았지만 국민의 신망을 얻는 왕으로 자리를 차츰 잡았다. 삼촌 하산 왕자는 권력과 거리를 둔 채 시민사회와 다양한 학술 단체를 이끌며 왕실을 측면 지원했다.
    지금도 국제사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한다.

    30대의 나이, 비슷한 시기에 권좌에 오른 두 지도자의 궤적은 이렇듯 사뭇 달랐다.
    시리아바샤르는 취임 초기 긍정적 비전을 내세웠지만 핵심 기득권층의 반발로 망가졌고
    희대의 학살자로 전락했다.
    반면 즉위 일보 직전이던 삼촌의 양보와 도움으로 왕이 된 압둘라 국왕은
    백성을 살피는 지도자로 인정받고 있다.

    세습 권력이지만 두 사람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어쩌면 본인의 의지나 성향과는 별개로 주변이 이들의 방향을 갈라놓았는지 모른다.
    욕심으로 가득한 기득권층에 무릎 꿇은 바샤르,
    하산 왕자의 양보와 성원을 받은 압둘라가 보여준 각각의 길이 이를 증명하는 것은 아닐까?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1/27/201901270151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