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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검은 개 카프카의 쥐 (곽아람 기자, 조선일보)

colorprom 2018. 12. 26. 15:54


그들에겐 우울증도 성공의 동력이었다


조선일보
                             
             
입력 2018.12.22 03:00

영국의 저명한 정신분석가
"처칠, 카프카, 뉴턴의 성취는 자기 안의 절망과 싸운 결실창의적 재능으로 우울함 극복"

'처칠의 검은 개 카프카의 쥐'
처칠의 검은 개 카프카의 쥐|앤서니 스토 지음|김영선 옮김|글항아리|456쪽|1만8000원

어떤 성취는 마음의 병에 빚진다.
영국 정신분석학자가 쓴 이 책은
정신질환을 동력으로 인류사에 빛나는 업적을 남긴 정치인, 소설가, 과학자의 이야기다.

"난 많은 걸 이뤘지만 결국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단다."
만년의 윈스턴 처칠(1874~1965)은 아버지의 생애에 감탄하는 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는 쏟아지는 찬사와 포상에도 불구하고 평생 존재 깊숙이 공허감을 지녔다. 우울증 환자였기 때문이다.
평생의 반려인 이 병을 처칠은 '검은 개(Black Dog)'라 이름 붙였다.

저자는 처칠의 모든 경력은 그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었으나
그를 완전히 물리칠 수는 없었다고 말한다.

"이 약점이 없었다면 처칠
좀 더 행복하고, 좀 더 평범하고, 좀 더 안정되고, 좀 더 부족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정되고 침착한 사람이었다면 처칠은 영국 국민을 고무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저자는 처칠이 2차대전 때 패배 직전의 영국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것도 우울증 덕분이라고 주장한다.
1940년 당시엔 어떤 지도자라도 용기 있는 말로써 영국을 결집시키려 했겠지만
자기 안의 절망을 알고 직시하는 사람만이 그런 순간에 설득력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이다.

처칠이 다른 사람에게 절망은 극복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이 평생 절망과 싸움을 벌여온 까닭이다.

처칠에겐 우울증이 박차와 같은 역할을 했다.
우울증에 압도되면 침울하고 무기력한 상태가 되기 때문에,
어떤 우울증 환자들은 우울증이 지나치게 심각해지기 전에 반복적으로 자신을 움직이게 만든다.
쉬거나 긴장을 푸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대부분의 사람이 이룰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성취한다.

왼쪽부터 처칠, 뉴턴, 카프카.
우울증을 동력으로 빛나는 성취를 이룬 인물들. 왼쪽부터 처칠, 뉴턴, 카프카. /조선일보 DB

"내 마음속에서 내가 살아 있다고 확신한 때가 없습니다."
'변신'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1883~1924)는 초기 소설 '기도자와의 대화'에 이렇게 썼다.
저자는 이 구절이 카프카 자신의 경험과 관련 있다고 주장한다.
카프카는 조현병 환자였다.

그의 유아기 환경은 불운했다.
어린 카프카가 밤에 훌쩍거리며 물을 달라고 하자 아버지는 아들을 집어들어 발코니 바깥에 내놓았다.
이 사건이 카프카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그는 평생 스스로가 무가치하다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침대에 쥐가 침범하는 환영에 시달렸고, 그 공포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글을 썼다.
그에게 글쓰기는 정신병적 환각의 세계로 빠지지 않도록 하는 도피처였다.

저자는 말한다. "카프카가 좀 더 행복했더라면 글쓰기에 대한 욕구는 크게 줄어들었을지도 모른다."

우울증 환자의 두드러진 특성은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해 외부 원천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만유인력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1642~1727)이 대표적인 예다.

그는 유복자로 태어나 만 세 살 때 어머니가 재혼하는 바람에 버림받았다.
그 사건이 그로부터 자존감을 앗아갔다.
뉴턴우울증조현병의 특성을 보인다.
그가 1662년 남긴 고백서는 스스로의 무가치함, 장래의 엄청난 불행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얼룩져 있다.
뉴턴은 자신은 가치없는 존재일지 모르지만 연구의 양과 질이 명성을 가져다주리라 생각했다.

명성은 사랑받는다고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효과적인 애정의 대체물 역할을 한다.

1980년에 초판이, 1989년에 개정판이 나온 이 책은
처칠의 우울증을 최초로 대중에게 알린 저작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저자는 "우울증 환자는 마약중독자가 마약에 의존하는 만큼이나
상습적으로 안정성공이라는 '해결책'에 의존한다"고 썼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모든 우울증 환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저자는 창의적 재능이 있는 소수에게만 우울 성향이 성공을 위한 동력이 된다고 설명한다.
저자 역시 우울증 환자였다.
그는 평생을 인간이 정신의 어두운 기질을 어떻게 이겨내고 위대한 성취를 이뤄냈는가에 천착했다.
그것이 곧 자신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2/22/201812220000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