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길 인물에세이 100년의 사람들] (53) 박근혜(1952~)
18대 대통령 선거에 박근혜가 입후보했을 때 나는 그를 전적으로 지지하였을 뿐 아니라
나는 대통령에게 미국에 가시면 반드시 한반도의 60년 동안이나 버려져 있는 땅 '비무장지대'가
21세기 세계 평화를 위해 틀림없이 큰 역할을 하게 된다고 일러주었고,
그가 2013년 8월에 미국 상·하원 합동 회의 석상에서 연설을 할 때
'DMZ를 세계 평화를 위한 공원으로 조성하겠다'고 한마디 던졌을 때
의원 전원이 기립 박수를 한 사실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단아한 한복 차림으로 중국에 나타났을 때에도
시진핑이 보여준 한국 대통령에 대한 대접은 융숭하였고
박근혜를 마치 자기 여동생처럼 정성껏 대해 주었던 것이 사실 아닌가!
그러나 박근혜는 정계에 입문하여 대통령이 되기까지 국민에게 한 가지 밝혀주지 않은 사실이 있다.
우리는 박근혜가 천주교에서 세운 성심여고와 서강대학에 다닌 사실 때문에
아마도 그가 천주교 신자일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정치인으로 변신한 후에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종교에 언급한 적이 없다.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에 출마하였을 때에도 자신의 종교를 밝히지 않았다.
그리고 '무교'라고도 하지 않았고 대통령이 된 뒤에도 자기의 종교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최모라는 여성이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그를 대통령으로 뽑았고
한동안 대통령으로 섬겼다.
그의 측근 중의 측근이라고 믿었던 최필립은
나와 그렇게 가까우면서도 그 여성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전혀 몰랐던 것 같다.
인천시장도 지냈고 한때 박근혜의 비서실장까지도 역임한 유정복이
자기는 그 최모 여인을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하였다.
그 여성이야말로 우리 정계의 수수께끼 같은 인물인 것은 사실이다.
그가 박근혜의 정치적 생명을 무참하게 밟아버린 것도 사실이다.
그의 사사로운 비밀을 전혀 모르던 나는
박근혜가 국가 운영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왜 잃어버렸는지 그 까닭을 몰랐다.
촛불 시위가 연일 계속되던 때 나는 글을 써서 곤경에 빠진 대통령에게 권면하였다.
"하야한다고 선언하고 곧 삼성동 사저를 수리하도록 하시오"라고 당부하였지만
그는 내 말을 귀담아듣지도 않았다.
그것은 정치 현장을 외면한 대통령의 잘못된 처신이었다.
촛불 시위는 왜 연일 계속되었는가?
자유민주주의에 대하여 최선을 다했어야 할 대통령이 국민을 배신하였기 때문이다.
이제 박근혜가 국민을 위로할 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
몸이 고달프더라도 국민을 위해 재판 때마다 재판정을 지키고 구형을 기다려야 하고
반드시 최후 진술을 해야 한다.
"사법부가 나에게 30년, 40년 형을 살라고 하면 나는 옥중에서 쪼그리고 앉아 앞으로 100년이라도 살겠습니다. 옥중에서 죽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라고 한마디 하면
지칠 대로 지친 국민이 그 말에 큰 위로를 받고 삶에 대한 의욕을 되찾게 되지는 않을까.
최모 여인과의 애틋한 사랑도
'뭇새들 높이 날아 다 사라지고, 외롭게 흘러가는 뜬구름 한 조각'에 지나지 않는 것을!
'선거의 여왕'이라는 파격적 존칭도 오늘 돌이켜보면 사하라사막에 잠시 나타났던 '모래 위의 누각'!
급진전하는 남북 관계가 국민으로 하여금 국가 안보의 위기를 실감하게 하는 이때
18대 대통령은 비록 옥중에 있지만 은인자중하며 건강에 유념하고
그가 이 불행한 민초들에게 보은하는 날이 반드시 오기를 나는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