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6년 7월 1일은 아침부터 후덥지근했다. 프랑스 북부 솜강(江)을 따라 22㎞ 진을 친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독일군 참호를 향해 진격했다. 18~19세기 전쟁터처럼 대형을 짜 개활지로 나왔다. 독일군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18세기 머스킷 총은 기껏해야 1분에 3발을 쐈지만 당시 기관총은 분당 600발을 발사했다. 1차 대전 최대 격전인 '솜 전투' 첫날에만 연합군 1만9000여명이 생명을 잃었다. 솜에서 5개월간 15만명이 전사했다. 7년 동안 베트남 전쟁에서 죽은 미군 전사자의 세 배다.
▶1915년 4월 벨기에 이프르 전선에서 참호에 숨어 있던 프랑스·캐나다 연합군 1만5000명이 잇따라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독일군의 최초 독가스 공격이었다. 5000명이 죽고 6000명이 기절 상태에서 포로가 됐다. 그해 5월 이프르에서 캐나다 군의관이 독일군 포격으로 전사한 친구 무덤을 찾았다. 십자가 사이에 피어난 선혈처럼 붉은 개양귀비 꽃을 보고 시(詩)를 썼다. 양귀비 꽃은 1차 대전 상징 꽃이 됐다. 1차 대전은 기관총·독가스·전차·잠수함·전투기 등 주요 대량 살상 현대 무기들이 동원된 최초의 전쟁이었다. 군인만 약 970만명이 숨졌고 민간인 사망자는 660만명에 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서유럽은 전례 없는 사망자 규모에 충격을 받았다. 1차 대전 당시 프랑스가 군인과 민간인을 포함해 약 170만명이 숨졌고 영국(식민지 포함)도 100만명이 사망하는 재앙을 겪었다. 2차 대전 당시 프랑스 군·민 사망자 약 60만명과 영국 약 45만명보다 2~3배 많았다.
▶어제는 1차 대전이 끝난 지 100년 되는 날이다. 1918년 연합군은 전쟁의 비극을 잊지 말라는 의미에서 기억하기 쉽도록 11이 세 번 겹치는 '11월 11일 11시'를 종전 시점으로 정했다. 그 100주년을 앞두고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금 세계가 1·2차 대전 사이 시기와 비슷해 충격적"이라며 "자국 우선주의와 국수주의에 빠져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
▶하버드대 그레이엄 엘리슨 교수도 지난해 쓴 책 '예정된 전쟁'에서 미·중이 부딪히는 현재를 독일이 영국 패권에 도전하던 1차 대전 때와 비슷하다고 봤다. 지난 500년간 신흥 강대국이 기존 패권국에 도전하며 생겨난 역학 관계 16건을 분석했는데 12건이 전쟁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미국 제일주의'와 '중화 민족주의' 충돌이 재앙의 씨앗이 될까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