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100회를 맞은 일본 고시엔(甲子園·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구장의 열기는 뜨거웠다. 무명의 시골 학교인 아키타현 가나아시농고가 준우승을 했다. 한 투수가 예선부터 본선 준결승까지 10경기에 나서 완투승을 거뒀다. 준결승에서 134개를 던진 다음 날 열린 결승에도 또 나왔다가 5회까지 12실점을 하며 무너졌다. 대신할 선수가 없어 팀을 위해 희생한 탓이었다. 어린 학생 몸을 망치는 학대라는 비난이 나왔지만 '투혼'(鬪魂)이라며 추켜세우는 목소리가 많았다.
▶며칠 전 후쿠오카에서 열린 역전 마라톤대회에서 열아홉 살 이이다 레이 선수가 오른발 골절상을 입고도 마지막 300m를 기어가 골인해 화제가 됐다. 다음 주자에게 배턴을 넘겨줘야 하는 계주였다. 이이다가 고통을 참으며 두 손과 무릎으로 아스팔트를 기어가는 장면은 TV에 그대로 중계됐다. 이번에도 끝까지 임무를 완수했다며 투혼을 칭찬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하지만 걸을 수도 없는 10대 여자 선수가 무릎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기어가는 게 옳으냐는 지적도 나왔다.
▶일본에선 어릴 때부터 "남에게 폐를 끼쳐선 안 된다"고 가르친다. '메이와쿠'(迷惑·폐)를 꺼리는 문화다. 이이다 선수는 전치 3개월이 넘는 중상을 입었다고 한다. 그러고도 병상을 찾은 감독에게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팀에 폐를 끼쳤다는 것이다. 일본에선 흔한 일이기도 하다. 아들이 중동에서 납치돼 목이 잘려 죽었는데 아버지가 TV에 나와 "폐를 끼쳐 죄송하다"고 했다.
▶4년 전 일본 화산 폭발 때 구조대가 "오늘 수색은 유독가스 때문에 오후 1시에 끝냈다"고 했다. 실종자 가족 중 "내 자식 찾아내라"고 고함치는 사람은 없었다. 폐를 끼칠까 봐 걱정했을 것이다. 스키장에서 조난당한 사람들에게 구조대원이 "왜 코스를 벗어났느냐"고 화부터 내고, 구조된 사람들은 기자회견을 갖고 "폐를 끼쳐서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죄했다. 저런 정신으로 일본이 선진국이 됐다고 할 수도 있을 테지만 조직 속에서 침묵을 강요당하는 일본인들 모습이기도 하다.
▶평창올
림픽 매스스타트 경기서 우리 선수가 금메달을 땄는데, '다른 선수들은 들러리였다'는 주장이 나왔다. 왜 조직을 위해 희생돼야 하느냐는 항변이었다. 고개 숙이는 메이와쿠가 옳은지, 희생을 거부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태도가 옳은지 따지는 것은 부질없을 것이다. 한·일 두 나라의 지리적 거리는 가깝지만 그 문화는 달라도 크게 다르다는 점만은 새삼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