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7.06.14 03:03 | 수정 2017.06.14 09:08
[84] 1970~2017년 임진강 흐르는 파주·연천
6·25 이후 격동 현대사 흔적… 임진강 따라 연천~파주에
고구려-신라 쟁패한 호로고루 아래 고랑포… 1968년 김신조 부대 침입
'딸라' 흘러넘치던 장파리… 쇠락한 마을로 변해
가왕(歌王) 조용필이 노래한 클럽 '라스트찬스'는 문화공간으로 부활
지뢰밭 동파리는 실향민들이 돌아가 해마루촌으로 변신
김신조 부대 은신한 파주 초리골은 평화로운 전원마을로
1945년부터 2017년까지 72년 동안 대한민국은 많은 일을 겪었다.
해방과 전쟁과 전후 복구와 독재와 민주화와 성장.
임진강이 흐르는 경기도 파주와 연천 땅에는 그 격변의 흔적이 남아 있다.
장파리 1960~1970
파주 장파리에는 신봉기라는 구두닦이가 살았다.
장파리 1960~1970
파주 장파리에는 신봉기라는 구두닦이가 살았다.
미군 병사들 구두 닦아주고 돈을 벌었다. 마음 씀씀이도 좋아서 따르는 아이가 많았다.
김남근(62)은 미군이 만들어준 재건학교에 다니면서 형님, 형님 하고 신봉기를 따라다녔다.
김남근은 지금 미군 부대로 들어가는 다리, 리비교 옆 임진강변에서 농사를 짓는다.
장파리 마을에서 리비교 쪽으로 주점이 있었다.
장파리 마을에서 리비교 쪽으로 주점이 있었다.
외출 나온 미군이 마지막으로 술 한 모금 더 하고 귀대하던 술집이었다.
이름은 라스트찬스(Last Chance)였다.
마을에는 메트로홀, 럭키바, 나이트클럽, DMZ홀, 블루문홀, 라스트찬스
이렇게 미군 클럽이 여섯 군데 있었다. 병사들은 그 클럽에서 음악과 술을 즐겼다.
장파리는 임진강을 건너는 대표적인 포구였다. 일제강점기에도 백화점이 있을 정도였다.
미군이 주둔하면서 장파리는 더 번창해졌다. '딸라'를 찾아 여자들 남자들이 장파리를 찾았다.
딸라가 장파리에 흩날렸다.
2㎞도 되지 않는 장파리 중앙통에는 미장원, 사진관, 주점, 여관이 난립했다.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고 할 정도로 장파리 거리는 진흙투성이였다.
그 진흙탕 위로 '개들도 딸라를 물고 다녔다'고 할 만큼 사람들은 부유했다.
김남근의 학교에서 집까지 600m. 비가 오면 신발에 진흙이 가득 묻어서 결국 집에 가지 못했다.
대신 진흙탕 속 숨어 있는 지폐며 동전 따위를 줍곤 했고.
1968년, 몸집 작고 호리호리한 젊은 사내가 구두닦이 신봉기를 찾아오곤 했다.
1968년, 몸집 작고 호리호리한 젊은 사내가 구두닦이 신봉기를 찾아오곤 했다.
라스트찬스에서 노래도 부르고 청소도 하던 사내였다.
신봉기가 준 돈으로 김남근이 20원짜리 라면 열 개를 사서 양은 바께쓰에 끓여오면
사내와 친구들은 거리에 서서 배를 채우곤 했다.
김남근은 기억한다. "내가 봉기 형님이랑 남근이는 절대 안 잊겠다"고 하던 말을.
그가 가왕(歌王) 조용필이다.
군대 다녀온 사람은 안다. 신병훈련소, 그 혹독한 기억을 어찌 추억이라 하겠는가.
그가 가왕(歌王) 조용필이다.
군대 다녀온 사람은 안다. 신병훈련소, 그 혹독한 기억을 어찌 추억이라 하겠는가.
김남근이 말했다. "조용필에게 가장 어려웠던 시절이다. 말이야 기억한다고 했지만, 어디 쉽겠나…."
장파리 클럽은 음악인들에게 성지(聖地)였다. 조용필, 김태화 그리고 윤항기까지.
2017년 장파리와 라스트찬스
1977년 미군이 장파리에서 철수했다. 장파리는 몰락했다.
2017년 장파리와 라스트찬스
1977년 미군이 장파리에서 철수했다. 장파리는 몰락했다.
예쁜 여자들도 사라지고 거친 사내들도 사라지고 딸라도 사라졌다. 순식간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예쁜 여자들만 모아놓은' 미군 클럽들도 한순간에 폐쇄됐다.
장파리는 1970년대 영화 세트장처럼 조락했다.
2013년 3월 어느 날 임진강변 화석정 아래에 살던 설치예술가 부부 윤상규(59)-김효선(55)이
장파리에 놀러왔다가 창고로 변한 라스트찬스를 보았다.
물건 더미 너머를 보니 화려한 시절 만든 예술작품들이 여전히 걸려 있었다.
조용필이 노래했던 무대도 그대로 보였다.
무턱대고 일주일 뒤 임대 계약을 맺고서, 부부는 근 2년 삽질 끝에
2014년 12월 30일 라스트찬스 문을 다시 열었다.
윤상규가 말했다. "우리에게 가장 큰 역사의 틀을 가지고 있는 공간이 아닌가."
그렇다. 누구에게는 목숨 건 타향살이 시름 잊는 공간이었고 누구에게는 웃음 팔아 딸라 버는 공간이었고
그렇다. 누구에게는 목숨 건 타향살이 시름 잊는 공간이었고 누구에게는 웃음 팔아 딸라 버는 공간이었고
누구에게는 목숨보다 숭고한 음악을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 시름과 웃음과 딸라와 음악을 서로 곱하면 그게 우리네 추억이요 대한민국 근대사다.
그래서 부부는 라스트찬스 문에 자물쇠를 없애버렸다.
그저 "아무나 와서 쉬다 가고, 필요하면 가져가고 필요하면 가져다놓고 속을 채우는 소통 공간"이라 하니,
앞뒤 재지 않는 예술가 커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발상이다.
마당도 예쁘고 예술가 부부가 꾸며낸 실내도 예쁘다.
마당도 예쁘고 예술가 부부가 꾸며낸 실내도 예쁘다.
윤상규가 말했다. "조용필 선생이 한번 놀러왔으면."
세월만 기다리던 장파리 중앙통도 화려한 옛날을 추억하는 공간으로 변신 중이다.
호로고루에서 초리골, 김신조 루트
장파리에서 임진강을 따라 북쪽으로 가면 고랑포구가 나온다.
호로고루에서 초리골, 김신조 루트
장파리에서 임진강을 따라 북쪽으로 가면 고랑포구가 나온다.
삼국시대 고구려와 신라가 쟁패했던 여울목이다.
장수왕 시대 고랑포를 건넌 고구려군은 호로고루 성채를 세웠다. 5세기 무렵이다.
연천 주민들은 그 호로고루에 봄이면 보리를, 여름이면 해바라기를, 가을이면 코스모스를 심는다.
1968년 1월 17일 밤 11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 무장공비 31명이
이 고랑포를 건넜다. 김신조 부대다.
장파리 남쪽 동파리 초평도를 통해 침입하려 했던 공비들은 루트를 바꿔 고랑포를 건넌 뒤
파주 법원읍 초리골을 통해 서울로 들어왔다.
초리골 삼봉산에 숨어 있다가 나무하러 올라온 우씨 4형제에게 들키는 바람에 작전은 망가졌다.
초리골 삼봉산에 숨어 있다가 나무하러 올라온 우씨 4형제에게 들키는 바람에 작전은 망가졌다.
초리골에 사는 전직 교사 우민제(64)가 말했다.
"그날 밤에 철제 형님이 밥을 먹는데, 숟가락 든 손이 덜덜 떨리는 거야.
그래서 아버지가 '너 왜 채신머리 없이 떠냐' 하니까 '나 안 떨어요' 하더라고, 막 떨면서."
철제는 나무꾼 형제 중 하나였다.
겁에 질린 아들을 다그쳐 공비 침투를 확인하고, 믿으려고 하지 않는 파출소를 거쳐
미군, 국군 부대에 신고하고야 군대가 출동했다.
맨손인 형제들 앞세우고 무장 군인들이 공비 숙영지에 갔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아이들이 '서리 내리지 않은 돌멩이'를 들추자 미숫가루, 망원경, 탄창, 지도 따위가 튀어나왔다.
우민제가 말했다. "그제사 믿더라고."
교직에서 은퇴하고서 우민제는 자기 형님 죽을 뻔한 공비 루트를 아름다운 산책로로 만들었다.
교직에서 은퇴하고서 우민제는 자기 형님 죽을 뻔한 공비 루트를 아름다운 산책로로 만들었다.
침엽수 활엽수 두루 자란 그 길, 공비 떼가 달려간 길이라 믿을 수 없다.
2017년 해마루촌, 동파리
2017년 해마루촌, 동파리
장파리 남쪽, 임진강 건너 동파리는 6·25 때 개성에서 내려온 인민군 탱크부대가 주둔했던 곳이다.
휴전선을 넘은 김신조 부대가 먼저 도착한 곳도 동파리였다.
세월이 흘러 2017년 그 참혹한 전쟁터에 근사한 마을이 들어섰다. 해마루촌이다.
동쪽 언덕(東坡)이라는 '동파리'를 이렇게 개명한 사람은 주민 조봉연(60)이다.
왜? "쎄게 읽으면 '똥파리'라 기분 나빠서."
1998년 민통선에 묶여 있던 동파리에 마을 재건 계획이 결정됐다.
1998년 민통선에 묶여 있던 동파리에 마을 재건 계획이 결정됐다.
동파리 실향민 60가구가 들어왔다.
지뢰를 수십 트럭씩 골라내고 한 채씩 집을 짓고 나니 마치 서울 강남 고급 주택가 같은 풍경이 생겨났다.
하늘에서 보면 높은음자리표를 닮은 거리 구조, 널찍널찍한 집들, 전후 개발이 정지된 맑은 생태계,
군부대가 지켜주는 치안. 조봉연이 말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늘 고향, 고향 하며 살았는데, 그 고향이 도대체 뭔가 싶어서 들어왔다.
와서 살아보니 정말 잘 들어왔다고 생각한다."
남북관계가 좋을 때는 관광객도 많다.
마을회관에서 식사도 하고 주민들 안내를 받으며 민통선 답사도 한다.
고구려 산성인 덕진산성, 조선시대 의성(醫聖) 허준 묘도 동파리에 있다.
그렇게 세월이 갔다. 풍성했던 장파리는 조락했다. 그 장파리가 부활을 꿈꾼다.
그렇게 세월이 갔다. 풍성했던 장파리는 조락했다. 그 장파리가 부활을 꿈꾼다.
공비가 출몰했던 초리골에 더 이상 긴장감은 없다.
선친이 꿈에 그리던 동파리에서 실향민의 아들은 지난 세월을 이야기한다.
앞으로 임진강에 흘러갈 세월, 그 속에는 무슨 사연이 역사로 기록될 것인가.
〈답사 정보〉
〈답사 정보〉
1. 장파리 '라스트찬스': 24시간 오픈. 식사, 음료는 판매하지 않고 손님이 알아서 먹을 것. 무료. 건물 옆 마당으로 나 있는 문을 이용. 앞문은 닫혀 있다. 파주시 파평면 진동로4, (031) 958-9240. 함께 운영 중인 게스트하우스도 있다.
2. 초리골 김신조루트: 내비게이션은 우씨 집안이 운영하는 '초호쉼터(031-958-0029)', 혹은 우민제씨 두부요리식당 '초리연(031-959-2179)' 검색. 김신조부대 숙영지까지 40분 산행.
3. 해마루촌: 생태 및 농촌 체험 단체 프로그램 운영. 사전 예약 필수. 허준 묘와 덕진산성 답사도 가능. 미리 연락해야 군부대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예약은 www.haemaru.org, (010) 2417-5100. 임진각에서 DMZ투어 버스를 타면 당일 여행 가능. 신분증 필수. (031)954-0303
4. 경순왕릉, 호로고루: 각각 검색어를 치면 검색 가능.
[6월 18일(일) 오전 11시 50분TV조선 '땅의 역사-임진강편']
6월 18일 일요일 오전 11시 50분 채널19 TV조선에서는 '박종인의 땅의 역사-임진강편'을 방송한다.
2. 초리골 김신조루트: 내비게이션은 우씨 집안이 운영하는 '초호쉼터(031-958-0029)', 혹은 우민제씨 두부요리식당 '초리연(031-959-2179)' 검색. 김신조부대 숙영지까지 40분 산행.
3. 해마루촌: 생태 및 농촌 체험 단체 프로그램 운영. 사전 예약 필수. 허준 묘와 덕진산성 답사도 가능. 미리 연락해야 군부대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예약은 www.haemaru.org, (010) 2417-5100. 임진각에서 DMZ투어 버스를 타면 당일 여행 가능. 신분증 필수. (031)954-0303
4. 경순왕릉, 호로고루: 각각 검색어를 치면 검색 가능.
[6월 18일(일) 오전 11시 50분TV조선 '땅의 역사-임진강편']
6월 18일 일요일 오전 11시 50분 채널19 TV조선에서는 '박종인의 땅의 역사-임진강편'을 방송한다.
가왕 조용필이 노래한 미군 클럽 '라스트 찬스'〈사진〉가 있는 파주 장파리 풍경,
무장공비 김신조 부대가 침투한 연천 고랑포 호로고루와 파주 초리골, 실향민들의 마을인 민통선 안 해마루촌이 소개된다. 대한민국 현대사에 큰 상처로 남은 전쟁의 흔적과 지금 모습을 둘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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