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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새로 읽은 제인 에어, 로맨스엔 돈이 필요하다 (김현진, 조선일보)

colorprom 2018. 10. 6. 18:03


[Why] 새로 읽은 제인 에어, 로맨스엔 돈이 필요하다


조선일보
                             
  • 김현진 작가
    •          
    입력 2018.10.06 03:00

    [김현진의 순간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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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 제인 에어는 사랑 얘기다.
    로체스터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집시 점쟁이나 노파로 변장하는 흑역사를 감수하고 중혼(重婚)도 마다하지 않는다.
    어렸을 땐 사랑하는 사람을 얻기 위한 이 모든 발버둥이 아름답게 느껴지지만
    어른이 되어 다시 읽은 소설은 다른 가르침을 준다.
    사진은 캐리 후쿠나가 감독의 영화 제인 에어(2011)의 한 장면. /유니버셜픽쳐스
    조숙했던 초등학교 시절. '제인 에어'의 완역본을 선물 받고 한동안 그 책에 푹 빠져 있었다.
    그렇게 책을 붙들고 좋아하는 딸의 모습을 본 부모님께서는 이내 '폭풍의 언덕' 완결판까지 선물해주셨다.

    부모 없는 고아로 태어나 친척집에 맡겨져 온갖 학대를 당하다 교육 환경이 처참한 기숙학교로 쫓겨난 제인. 홀로서기를 할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하는 와중에 병에 걸린 사랑하는 친구까지 잃는 등 갖은 사건을 겪다가 입주 가정교사라는 자립한 삶을 살기 위해 떠나는 데서 그녀의 모험이 시작된다.
    손필드 저택이라는 자신의 새 일터에 가는 도중
    웬 강한 인상의 남자가 승마 사고를 당한 채 꼼짝도 못하고 있는 광경을 목격한 제인은
    사람을 불러와 그에게 도움을 준다.
    그런데 이 낯선 사람은 숙녀에게 한껏 감사함을 표현하지는 못할망정 이것저것 캐물어
    거의 불쾌감까지 느끼게 만든다.
    겨우 손필드 저택에 도착해 친절한 노부인과 자신이 가르치게 될 소녀를 만나게 된 제인
    드디어 독립생활에 들어갔다는 점에 안심해 한숨을 내쉬는데, 아직 안심할 때가 아니었다.
    아까의 그 무례한 부상자가 자신의 주인, 즉 고용주였던 것이다.
    이때부터 제인을 얻기 위한 로체스터의 온갖 구애가 시작된다.
    아름다운 귀부인에게 청혼할 것 같은 모습을 보여 제인의 반응을 유도해 보려 하고,
    밤에는 집시 점쟁이로 분장해 제인의 마음을 알아내려 애쓴다.

    어릴 적에는 로체스터의 그런 모습이 사랑하는 사람을 얻기 위한 발버둥으로 보여
    로체스터가 안쓰럽기도 했고 응원하는 마음도 들었는데,
    어른이 되고 나서 자세히 '제인 에어'를 읽어 보니 어딘가 불쾌했다.

    스무 살도 넘게 차이가 나는 순진한 시골 아가씨를 '꼬시기' 위해서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하는,
    세상사에 통달한 천년 묵은 구렁이 같은 로체스터!
    어떤 아가씨를 사랑하게 되었으면 진실한 마음과 소탈한 모습으로 그녀의 마음을 얻으려고 노력하진 못할망정 온갖 '쇼쇼쇼'를 벌이는 모습이 어릴 적처럼 순애(純愛)로 느껴지지 않았다.
    순진한 제인을 상대로 온갖 밀고 당기기를 하는 광경은 아예 한 대 콱 쥐어박아 주고 싶었다.

    최고의 문제는 다락방에 숨긴 아내가 있으니 당당하게 구혼을 못하면서도
    제인이 자신에게서 떨어질 수 없는 상태로 만들려고 애를 썼다는 점.

    소설에 정확히 묘사되지는 않았지만, 로체스터가 부자가 된 이유는
    그 첫 아내와의 결혼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다.
    당시 영국에서는 여성의 사유재산이 존재하지 않았고 여인의 재산은 곧 남편의 것이었다.
    로체스터의 주장대로 속아서 미친 여자를 아내로 맞게 됐지만,
    그 아내는 재산을 가져왔으니 둘 다 계산속이 맞은 셈이다.

    중혼을 하려던 것을 들킨 로체스터는 그래도 자신 곁에 머물러 달라고 애걸하지만,
    도덕을 중시한 제인은 아무도 몰래 손필드 저택을 떠나고 만다.

    여기에서부터는 '소공녀'와 아주 비슷한 내용이 전개된다.

    며칠 동안 부랑자의 삶을 살던 제인은 젊은 목사 세인트 존에 구조되어 함께 지내게 된다.
    아무도 없는 고아라고 평생 생각했는데, 죽은 친척의 유언장을 보니
    정말 공교롭게도 제인은 자신을 구해준 세인트 존 가족과 사촌 관계에 해당했다.
    게다가 남부럽지 않을 만한 유산까지도 자기 이름 앞으로 남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제인은 그 재산을 사촌들과 골고루 나누고,
    처음으로 생계를 위해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되는 생활을 잠시 맛본다.
    그러나 평화도 잠시, 마을 유지의 딸인 로자몬드라는 여성을 깊이 사랑하고 있는 세인트 존
    엉뚱하게도 제인에게 청혼을 한다.
    선교사로서 오지로 떠날 예정인 세인트 존에게 로자몬드는 어울리지 않는 짝이었고,
    검소하고 정신력이 강한 제인이야말로 고생스러운 선교사 아내에 어울린다는 것이 그 청혼의 이유였다.
    제인은 여동생으로서는 같이 가겠다고 하지만 세인트 존은 막무가내였다.
    그런 어정쩡한 관계로는 이 선교에 함께할 수 없다는 거였다.
    고민하던 제인로체스터의 목소리를 환청으로 듣고 손필드 저택으로 향한다.
    제인이 첫사랑을 나눈 손필드 저택은 마치 타다 만 유해처럼 불타 버린 자리로 남아 있었다.
    수소문해 로체스터를 찾아보니 그는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이 되어 있었다.
    혼자 살 수 있는 재산도 생긴 그녀가 자신을 사랑할 리 없다고 로체스터는 좌절하지만,
    제인은 기꺼이 그의 아내가 되어 아들을 낳는다. 그리고 로체스터는 차차 시력을 회복한다.
    "독자여! 나는 그와 결혼했습니다"라는 독백으로 유명한 문장이 바로 이 부분이다.

    나는 어른이 될수록 이들의 사랑을 대단한 순애로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태어나서 만나 본 남자라고는 로체스터세인트 존밖에 없는 제인이야 그렇다 치고,
    로체스터가 순진한 처녀를 자기 손에 넣기 위해 꾸민 온갖 계략들도 마음에 들지 않은 데다
    순진한 제인을 쥐락펴락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떤 날은 환하게 대하고 어떤 날은 부루퉁하게 대해서 제인을 심란하게 만드는 것이
    스무 살이나 많은 남자가 할 만한 성숙한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책을 덮은 다음 아마 그렇기 때문에 '제인 에어'가 몇 세기 동안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사랑을 모르는 제인은 미숙하고 사랑스럽다.
    젊은 시절의 실수로 정신질환자 아내를 다락방에 가둔 채 괴로워하고 있는 로체스터
    사랑에 빠지고 싶은 생각이 없었지만, 부드러우면서도 자기주장이 강한 제인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짜 구혼 소동이나 점치는 노파로 변장한 로체스터의 '흑역사'까지도
    결국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그것. '사랑'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으니까.

    제인로체스터를 다시 만날 수 있는 큰 역할을 한 것은 금전이었다.
    학교에서 가르치거나 가정교사 생활을 했더라도 - 당시 가정교사는 하녀와 비슷한 위치였다고 한다.
    손필드까지 갈 시간이나 비용을 댈 수 없었을 것이다.
    로체스터가 가정교사를 둘 만한 여유 있는 부자가 아니었더라면
    애초에 두 사람은 만날 수조차 없는 일이었다.

    어른이 되어 '제인 에어'를 다시 읽어 보니 마치 버지니아 울프'자기만의 방'에 나오는 구절인,
    '여성에게 일정한 재산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제인이 삼촌에게 유산을 상속받지 못했더라면
    노부인이 될 때까지 가르치는 것으로 간신히 먹고살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어른이 되어 본 '제인 에어'가 준 가르침은 이랬다.
    그래도 돈이 좀 있어야 로맨스도 따라온다고.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05/2018100502065.html


    이병곤(sorkan****)2018.10.0614:56:34신고
    제목 만큼은 인생의 정답이다.
    정일영(menc****)2018.10.0614:39:02신고
    데이트 하려는데 커피 한잔 먹을 돈도 없으면 우짜노?
    냉수 한잔 떠 놓고 결혼했다는 건 그럴 수도 있다는 거다.
    이민경(mkl****)2018.10.0613:44:35신고
    약간의 억지가 들어가잇는것 같다.
    소설 자체 순수한 마음으로 봐야지 세속적인 잣대로 재면 모든 문학이 아름답지 않을것 같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05/201810050206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