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사랑모임’ 김남기 대표
팔당호반을 끼고 있는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마현마을은 지금 공사가 한창이다.
‘실학박물관’ 터닦이 공사다.
실학(實學)의 거두 다산 정약용 선생이 태어나고 죽은 역사 유적지다.
다산 묘소, 다산기념관도 이곳에 있다.
올해 말 공사가 끝나면 박물관은 조선 실학을 집대성할 공간이 된다.
“다산(茶山)을 존경하는 사람들은 정치를 하면 안 돼요.
다산이 정치에 희생돼 인생을 그리 살았는데, 또 다산을 들먹이며 정치를 해? 그러면 안 되지.”
다산 묘소로 오르는 길에서 김남기(金南基·62)씨가 말했다.
김씨는 실학박물관을 유치하는 데 있어서 숨은 주역이다.
유일한 직함은 ‘다산사랑모임’ 대표다.
서울대 사학과 64학번인 그는 교직을 버리고 1995년 이곳으로 이사했다.
“다산 선생이 좋아서”라고 했다.
사는 집은 다산의 묘소 길 건너에 자리잡고 있다.
“다산에게 송구스럽다”며, 처마도 깡똥하니 잘라버리고 축대도 낮춰 만든 집이다.
“유교는 ‘인(仁)’을 근본으로 삼잖아요.
그런데 다산은 ‘두 사람 사이에 서로 도리를 다하는 것’이라고 풀이합니다.
말이 아니라 실천을 해야 진정한 인(仁)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에 대한 실천적인 배려가 엿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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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대학 시절 일찌감치 다산에 빠졌다.
명절이 되면 아내와 두 자녀를 데리고 다산 묘소에 참배를 했다.
맏딸 정은(35)씨는 “왜 우리 조상도 아닌데 절을 해야 하는지 몰랐다”고 했다.
그러다 안면을 트게 된 마을 사람 권유로 묘소 건너편에 집을 짓게 되었다.
나라에서는 다산 사후(死後) 74년 뒤인 1910년 8월 20일 다산에 문도공(文度公)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김씨가 말했다.
“문도공은 문관 최고의 시호죠.
그런데 열흘도 못 가 경술국치(庚戌國恥)로 나라가 망했어요.
풍전등화였던 나라가 뭘 배우려고 했던 거 같은데, 늦어도 너무 늦었던 거지요.”
김씨는 지난 2000년 다산사랑모임을 만들었다.
회원은 대한민국 국가과학자 1호인 신희섭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신경과학센터장,
김병일 전 기획예산처 장관, 박연철 변호사 등 150여명.
김씨 본인은 몸을 낮추고 매주 한 번씩 기념관 안내 봉사를 하며 산다.
2003년 경기도가 실학박물관 건립계획을 내놨을 때 다산사랑모임과 주민, 시(市)에서 유치전을 벌였다.
3년 만에 마현마을이 건립지로 결정됐다.
상수원보호구역인 강변 땅을 경기도가 60억원에 몽땅 매입했다.
유물 구입과 건축에만 210억원이 드는 큰 사업이다.
김씨 계획은 거대하다.
“실학 정신을 체험할 수 있는 학교로 만들고 싶어요.
철학도 배우고, 민주시민으로 사는 법도 배우고, 실사구시(實事求是)할 유기농 교육도 하고.”
마현을 10년 뒤에는 한국 최고, 30년 뒤에는 세계 최고의 역사유적지로 만들겠다고 했다.
부인 이향근(李香根·59)씨는 집 앞에 ‘저녁바람이 부드럽게’라는 카페를 꾸린다.
‘실학’적으로 만든 유기농 굴림만두로 유명해진 집이다.
이달 중으로 김씨는 부부가 살던 방을 사랑채로 옮기고 본채를 교육공간으로 바꾼다.
1박씩 단체가 묵으며 토론도 하고 김씨 강의를 들으며 유적지를 순례할 공간이 된다.
애써 만든 집을 내준다고?
김씨는 “다산이 살던 집 당호인 여유당(與猶堂)처럼, 머뭇대고(與) 망설이며(猶) 살겠다”고 했다.
▲ 김남기 선생이 들려주는 다산 정약용 이야기 /조선일보 박종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