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인기자의 인물기행] '말에 미친' 사나이
입력 : 2005/10/21 20:11 | 수정 : 2005/10/22 01:42
벤처로 번 돈 500억 몽땅 쏟아부어 승마장 건설
22살때부터 '말 꿈'… 승마로 석사학위·강의도 전국 훑어
"돈벌이요? 기마민족 맥 잇는 공간 만들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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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내, 말에 미쳤다.
벤처기업 잘 가꿔서 벌어놓은 돈 다 퍼부어서 작은 섬 한편에 승마장 하나 만들었다.
얼마나 미쳤냐고? ‘500억 원’만큼 미쳤다.
승마장에 퍼부은 돈이 5억 원도 50억 원도 아니고 자그마치 500억 원이다.
김운영(金雲永·45). 송산특수엘리베이터라는 회사 대표다.
옥상 기계실이 없는 엘리베이터, 혹은 식품공장에 쓰는 ‘먼지 없는’ 방진엘리베이터 같은
특별한 승강기를 만든다.
제3땅굴 견학할 때 지하 350m까지 타고 들어가는 엘리베이터도 여기 물건이다.
OTIS(오티스)라는 다국적 엘리베이터회사 연구개발이사를 끝으로 12년 전에 창업한 회사다.
감사원, 대만 총통관저에도 이 사람이 만든 물건이 붙어 있다.
대부종합건설이라는 회사도 운영한다.
기계공학도 사장 김운영, 마흔다섯 먹은 젊은 부자의 속내는 엉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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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기마자세 아시죠? 대한민국 사람들, 기마자세 다 할 줄 아는데 정작 말 타본 사람은 없어요.”
귀에 닳도록 듣는 ‘기마민족’ 이야기지만 우리 주변에 말이 어디 있느냐는 말이었다.
대한제국 때까지는 이 땅엔 말이 많았다.
그런데 일본의 병탄(倂呑)과 함께 승용마들은 자취를 감추고 대신 짐 싣는 역마(役馬)만 잔뜩 늘었다.
“일제 초기와 해방 후 통계를 보면 승용마 수가 95% 줄어있어요.
총독부 옆에 승마클럽 만들어서 자기들은 즐기고, 순사들은 칼 차고 말 타고 돌아다녔죠.
조선사람은 일만 하라 이거였죠.”
그 끊긴 맥을 잇겠다는 것이다.
외국기업에 근무하던 스물두 살 때부터 승마장을 꿈꿨다는 사내의 ‘말 예찬’이 시작된다.
“고구려엔 철갑기마부대가 있었어요.
당시에 이런 부대는 로마와 고구려 두 나라밖에 없었어요.
그런 민족이 올림픽에서는 바닥이에요. 이러면 안 되죠.”
“몸도 말에게 맡겨야 되고 마음도 말과 하나가 돼야 합니다. 그러면서 순리(順理)를 배웁니다.”
“재활치료도 있어요.
로마시대엔 부상병들을 말에 태워 산책하게 했습니다. 균형 잡느라고 저절로 치료가 됩니다.
자폐증에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고 하지요.”
“한 번 본 사람은 일년이 지나도 알아봐요.
한 번은 깜깜한 밤에 말을 타다가 졸았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승마장이더라고요.”
사내는 결국 경희대 체육대학원에서 승마로 석사를 받더니 아예 박사과정까지 들어갔다.
내년에는 경희대 최고경영자과정에서 승마 강의까지 할 예정이다.
웬만큼 회사가 굴러가던 1998년, 드디어 젊을 적 꿈에 발을 내밀었다.
각국 승마장을 다 다녀보고 경기도 이천, 파주 기타 전국 방방곡곡을 훑은 끝에
경기도 안산 대부도에 터를 잡았다.
‘말봉’. 조선시대 때부터 말을 길렀던 곳이다.
승마산업은 독일이 1등이다.
그는 독일에서 말 500여 마리를 하나하나 면접한 뒤 110마리를 골랐다.
마리당 1억 원이 넘는 말들을 이곳 마사에 넣었더니 금방 적응하더라고 했다.
“말들은 예민해서 장소를 옮기면 적응을 잘 못하는데, 일주일 지나니까 얼굴 표정이 편안해지더라고요.”
말들이 좋아하는 산들바람, 습하지도 건조하지도 않은 기후. 인간에게도 딱 좋은 환경이다.
독일 교관도 두 명 모셔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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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빌딩에 사용한 유리로 만든 초대형 실내승마장(사내는 “세계 최대 규모”라고 했다),
바닷가를 달릴 수 있는 외승(外乘)장,
웬만한 골프장 클럽하우스를 능가하는 클럽하우스에 승마역사관까지 지었다.
“내 돈 끌어다 넣었고, 회사가 주주로 참여했고, 그리고 물려받은 땅 다 팔았어요.”
퍼부은 돈이 겁나지도 않은지, 이 벤처기업 사장은 승마장 사장실에 흐뭇한 얼굴로 앉아 있다.
지난 9월 문을 연 ‘승마랜드(www.horse ride.co.kr)’다.
“기마민족의 맥을 잇는 역사적인 공간”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기마자세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와서 진짜로 말을 타게 되고,
그래서 언젠가는 이곳에서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나오리라고 생각한다.
진짜 좋은 말을 만들어 수출도 할 작정이다.
500억 원이나 되는 돈 언제 회수할 것이며, 돈은 또 언제 벌 작정인가.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이 돈 내고 회원이 되는 거죠.
그리고 청소년들은 공짜로 견학하고, 말 타는 체험학습은 최소한의 경비로 해주는 겁니다.”
유치원생들, 자기 덩치의 열 배는 넘는 큰 짐승에 겁도 없이 올라타 환호한다.
“관광객들 호주머니 돈으로 장사할 맘은 절대 없어요. 승마사업, 이거 오래 걸리는 사업입니다. 쉽게 못해요.”
나이 스물둘에 말을 알게 된 사내가 말에 미쳐가더니 마침내 사명감 이야기를 한다.
그 초심(初心), 대부도 바람처럼 늘 그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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