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쓰는 우리 예절]

[차례상]“추석 차례 안 지낸다는 퇴계 종손 신선한 충격” (동아일보)

colorprom 2018. 9. 22. 18:10

며느리 잡는 차례상? 과일-송편으로 충분… 전 안올려도 돼요


임우선기자 , 위은지기자 입력 2018-09-22 03:00수정 2018-09-22 03:00



[새로 쓰는 우리 예절 新禮記(예기)]이번 추석엔 바꿔 볼까요



크게보기


‘하아! 이 망할 놈의 유교 같으니라고….’ 

이 땅 위의 한국인들은 추석 때마다 마음 한 편으로 조그맣게 이런 말을 읊조렸을지 모른다.

몇 시간 동안 막히는 고속도로를 뚫고 도착한 선산에서 윙윙대는 벌들과 싸워가며 예초기를 밀 때,

언제나 친정은 뒷전으로 하고 시가부터 찾아가 추석의 하이라이트를 보내야 할 때,

얼굴도 모르는 남편의 조상님을 위해 환갑이 넘어서까지 차례상을 차려야 할 때,

이들은 생각한다. ‘유교 때문에 내가 죽겠다….’

초등학생인 시동생을 ‘도련님∼’ 하고 불러야 하는 며느리는 마치 몸종이 된 기분이 든다.

추석이 끝난 뒤 분노를 쏟아내는 아내를 보는 남편들도 생각한다.

‘어머니, 왜 저를 유교 문화권에 낳으셨나요….’ 

하지만 유교 전문가들은 억울하다. 한국인에게 유교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현실이.

사실 조상님들의 ‘본심’은 그게 아닌데 본뜻을 살리지 못한 잘못된 예법이 중구난방으로 전해져

마치 무조건 따라야 할 형식처럼 돼 버렸단 것이다.

조상을 공경하며 가족 모두 화목한 추석이 되기 위한 우리의 예(禮)는 무엇일까.

동아일보가 창간 98주년을 맞아 진행한 ‘새로 쓰는 우리 예절 신예기(新禮記)’ 시리즈 속에서 답을 찾아봤다. 


▽추석 차례, 안 지내도 그만=
본래 유교에서는 기제사(고인이 돌아가신 날 지내는 제사)만 지낼 뿐 명절엔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차례상 문화는 명절날 자손들만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죄송해 조상께도 음식을 올리면서 생겼다.
여기에 조선 후기 너도 나도 양반 경쟁을 벌이면서 차례상이 제사상 이상으로 복잡해졌다는 것.
집안 전통상 차례 지내기가 관례라면 과일과 송편으로도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전 부치다 싸우면 바보=
명절 기간 최고로 힘든 노동 중 하나는 ‘전 부치기’다. 보통 차례상에 올리기 위해 만드는 경우가 많다.
유교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는 잘못 전해진 예법의 대표적 예다.
“제발 제사상에 전 좀 올리지 마세요. 유교에서는 제사상에 기름 쓰는 음식 안 올려요.
그건 절(사찰)법이라고요. 전 부치다 이혼한다는데, 조상님은 전 안 드신다니까요.”
(방동민 성균관 석전대제보존회 사무국장)

▽제사상 과일 위치, 집집마다 달라요=
제사상을 차릴 때 흔히 ‘홍동백서(붉은색 음식은 동쪽, 흰색 음식은 서쪽에 놓음)’라는 말을 쓰지만
이는 정해진 게 아니다.
예서에는 ‘과일’이라고만 나와 있을 뿐 과일의 종류나 놓는 위치를 규정하지 않고 있다.
제사상 차림은 가가례(家家禮·각 집안의 예법)에 따르면 된다.

관련기사

▽장남 혼자 제사 책임? 오해예요=
장남만 제사를 지내야 한다거나, 음식은 한 집이 책임져야 한다거나,
여자는 음식만 만들 뿐 제사상에 절을 올려서는 안 된다는 것 모두 잘못 전해진 것들이다.
과거 조상들은 형제마다 각자 음식을 준비해 오거나 제사 일부를 나눠 맡는 ‘분할봉사’를 했다.
종갓집에서는 지금도 제사 때 반드시 두 번째 술잔을 맏며느리에게 올리게 해 여성의 존재를 존중한다.

▽명절 때 방문 순서 번갈아 가면 어때요=
직장인 신재민 씨(39)는
“결혼 초 명절 때마다 늘 우리집(시가)부터 먼저 가는 관행 때문에 아내의 불만이 많았다”며
“몇 년 전부터 한 해씩 처가와 번갈아 먼저 가기로 했는데 서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양가 중 자녀가 한 명뿐이거나 배우자와 사별한 경우 등 좀 더 외로운 부모 쪽을 먼저 찾아 배려하는 것도
좋다. 

▽임신부·난임 부부 각별히 배려해야=
추석 때 만난 친지 가운데 임신부 혹은 난임 부부 등 특별한 상황의 가족이 있다면
말과 행동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임신부의 배를 함부로 만지거나 ‘딸이 최고’ 혹은 ‘아들이 최고’ 등 왈가왈부하는 것은 실례가 될 수 있다.
아이가 없는 부부에게 자꾸 출산 계획을 묻거나 ‘불임엔 뭐가 좋다더라’식의 조언도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명절 때 가족여행, 서로 배려해야=
만약 추석 연휴에 부모 친지 등과 가족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여행 중 서로에게 ‘고맙다’ ‘수고한다’ ‘즐겁다’는 말을 많이 하면 좋다.
부모님에게 아이를 맡기고 젊은 부부만 관광을 다닌다거나 ‘이 코스 누가 짰느냐’, ‘음식이 별로다’,
‘애 엄마 수영복이 그게 뭐냐’ 같은 말이 오가면 즐거운 여행에서 기분만 상할 수 있다.
나이에 따른 각자의 체력과 취향을 고려해 움직이는 센스도 필요하다.

유교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다.
명절이든 제사든, 조상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것은 ‘공경의 마음’과 ‘자손들의 화목’이라는 것이다.

안승준 한국학중앙연구원 고문서연구실장은
“조상들은 제사나 차례에서 ‘많이’ 준비하는 것보다 ‘마음과 정성’을 중요하게 여겼다”
“우물물만 떠놔도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게 진짜다”라고 말했다.

놀러 가서 차례를 지내든, 해외에서 지내든 이번 추석엔 예의 본질을 잊지 말자.
유교에서 ‘숭조돈종(조상을 숭상하고 일가가 돈독하게 지내는 것)’은 떼어놓을 수 없는 ‘세트메뉴’다. 

임우선 imsun@donga.com·위은지 기자


차례상 안차리고 마음만벌초? 어휴, 대행도 쓰죠

퇴계 종손의 추석 예기


임우선기자 입력 2018-09-22 03:00수정 2018-09-22 09:33






17대 종손 이치억씨 명절나기

퇴계 17대 종손 이치억씨

추석을 어떻게 보내느냐고요? 정말 아무것도 안 해요. 차례도 지내지 않고.
아버지 모시고 가족들이랑 근교로 나들이나 갈까 해요.

19일 서울 경복궁 옆 카페에서 만난 이치억 성균관대 유교철학·문화콘텐츠연구소 연구원(42·사진)
추석 계획을 묻자 싱긋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 연구원은 퇴계 이황의 17대 종손이다.
1000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이황이 누군가? 조선 성리학의 기초를 세운 인물 아닌가.
그런 뼈대 있는 가문의 자손이 차례를 안 지낸다고?

추석엔 원래 차례를 지내는 게 아니에요. 추석은 성묘가 중심인데,
저희는 묘가 워낙 많아 일부는 (벌초) 대행을 맡겼어요.
그리고 성묘는 양력으로 10월 셋째 주 일요일을 묘사(墓祀)로 정해 그때 친지들이 모여요.
그러니 추석은 그냥 평범한 연휴나 다를 게 없죠. 

종갓집답지 않은 이 오붓한 추석은
10여 년 전 이 연구원의 부친이자 이황의 16대 종손인 이근필 옹(86)의 결단에서 시작됐다.
아버지는 무척 열린 분이세요. 예법을 그냥 답습하지 않고 그 의미가 뭔지 계속 고민하셨죠.
집안 어르신들도 변화를 거부해선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계셨고요. 

퇴계 종가는 제사상이 단출하기로도 유명하다. 간소하게 차리라는 집안 어른들의 가르침 때문이다.
한때는 1년에 20번 가까이 제사를 지냈지만 현재는 그 횟수가 절반 이하로 줄었다.
만약 집안 어른이 자손들에게 조선시대의 제사 형식을 고수하라고 한다면 그 제사가 유지될 수 있을까요?
오히려 자손들이 등을 돌려 아예 없어지고 말 거예요.
()란 언어와 같아서 사람들과 소통하면 살아남지만, 그렇지 못하면 사라지고 말죠.
시대와 정서에 맞는 변화가 필요해요.

제사가 있을 때는 이 연구원도 부엌에 들어간다. 음식 만들기엔 소질이 없지만 설거지는 제가 해요(웃음).
할아버지, 할머니는 설거지하는 손자를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그의 아버지는 단 한 번도 뭐라 한 적이 없었다.

관련기사

원래 에는 원형(原型)이 없어.
처음부터 정해진 형식이 있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마음을 따라 하다 보니
어떤 시점에 정형화된 것이죠.
우리가 전통이라고 믿는 제사도 조선시대 어느 시점에 정형화된 것인데
그게 원형이라며 따를 필요는 없다고 봐요.
형식보다 중요한 건 예의 본질에 대한 성찰이에요.

그는 우린 평소 조상을 너무 잊고 산다
명절만이라도 라는 한 사람의 뿌리인 조상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것, 가족과 화목하게 지내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간소한 차례상 큰 공감… 교과서에도 실어달라”

“추석 차례 안 지낸다는 퇴계 종손 신선한 충격”


김호경 기자 , 유근형 기자 , 홍정수 기자 입력 2018-09-27 03:00수정 2018-09-27 03:00






동아일보 신예기 시리즈 추석편 화제

9월 22일자 2면.


동아일보가 창간 98주년을 맞아 기획 연재한 ‘새로 쓰는 우리예절 신예기(新禮記)’는

추석 연휴 내내 뜨거운 화제였다.  

신예기 시리즈는 불합리한 관습과 예법을 바꿔 나가자는 취지로 올 초부터 이달 17일까지 30회 연재됐다.

시리즈의 대단원을 장식한 추석 명절편(22일자 1, 2면)에서는 추석 연휴 첫날인 22일에 맞춰

추석 상을 안 차리고 벌초도 대행에 맡겼다”는

퇴계 이황의 17대 종손인 이치억 성균관대 유교철학문화콘텐츠연구소 연구원의 인터뷰를 실었다.

이와 함께 다른 유교 전문가들이 지적한 우리가 잘못 알고 있던 명절 예법도 다뤘다.  

본래 유교에서는 기제사(고인이 돌아가신 날 지내는 제사)만 지낼 뿐 명절엔 제사를 지내지 않고,

제사상에도 전 같은 기름 쓰는 음식을 올리지 않는 점

그동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명절 예법이 실제 유교 예법과 다르다는 점을 꼬집은 내용이었다.

많은 사람이 ‘신선한 충격’이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기사의 네이버, 다음 등 주요 포털사이트 조회 수는 345만 건, 댓글은 8516건이 달리는 등

많은 공감을 얻어냈다.

한 포털사이트에서는 “명절 내내 기사 내용을 TV로 방송해 달라”는 댓글이 가장 많은 공감을 얻어

베스트 댓글에 올랐다.  

허례허식에 얽매이기보다는 시대 변화에 맞게 명절 풍습을 바꾸자는 제안도 나왔다.

한 누리꾼은 “생전에 즐겨 드시던 한두 가지 음식과 과일만으로도 차례상은 충분하다고 본다”며

“명절에는 다른 사람들 시선에 관계없이 다들 마음 편하고 즐겁길 바란다”고 덕담을 남겼다.  

 명절 음식을 도맡아 하는 며느리들은 기사 내용에 특히 적극 공감했다.
“우리 시어머니가 읽었으면 좋겠다”
“제사가 1년에 10번이나 된다. 이러려고 결혼했나 싶다”는 댓글이 줄지었다.
이 밖에 “교과서에도 실어 달라” 등의 댓글도 있었다.

동아일보 디지털뉴스팀이 기사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제작한 동영상도 큰 인기를 끌었다.
유튜브에서 동영상을 시청한 횟수는 12만 건,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보여주려고 동영상을 공유한 횟수도 319회나 됐다.

관련기사

정치권에서도 신예기 시리즈는 화제였다.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사무총장은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26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추석 민심을 이야기하다 동아일보의 신예기 시리즈를 거론했다.
윤 총장은 “이번 명절은 과거보다 분위기가 조금 더 실질적이고 합리적이었던 것 같다”고 운을 뗀 뒤
퇴계 이황 17대손의 ‘추석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는 인터뷰가 퍼지면서
허례허식에 매달리기보다는 온 가족이 함께 즐기고 나누는 명절을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이야기가
많았다”고 말했다.
윤 총장은 간담회 후 본보와의 통화에서
“나 같은 경우도 큰돈을 들여 차례상을 차려놓고 정작 식구들이 잘 먹지 않고 버리는 경우도 있는데,
다음 명절부터는 가족들이 즐겨 먹는 것들 위주로 차례상을 차리기로 했다”고 전했다.

자유한국당 윤영석 수석대변인은
“추석 명절에 지역구인 경남 양산 주민들을 만났을 때도 동아일보의 신예기 기사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며
“우리의 혼을 지키면서도 현대적으로 관습을 다듬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호경 kimhk@donga.com·유근형·홍정수 기자
“간소한 차례상 큰 공감… 교과서에도 실어달라” “추석 차례 안 지낸다는 퇴계 종손 신선한 충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