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세상

[책][65] 무심하게 산다 (백영옥, 조선일보)

colorprom 2018. 9. 27. 14:41

[백영옥의 말과 글] [65] 무심하게 산다


조선일보
                             
  • 백영옥 소설가
    •          
    입력 2018.09.22 03:07

    백영옥 소설가
    백영옥 소설가

    '저 사람은 이해가 안 된다'거나 '저 나이 때 나는 저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 때

    읽으면 좋을 책이 있다.

    가쿠다 미쓰요'무심하게 산다'이다.


    이 책에는 나이가 들수록

    '성격이 급한 사람은 갈수록 더 급해지고, 불같은 사람은 갈수록 더 불같아지는 등

    대부분 내면의 그릇이 작아지는' 풍경에 대한 얘기가 가득하다.


    나이가 들면 너그러워 보일 때도 있지만

    그것은 그 사실을 인정해서라기보다 아무래도 상관없어서, 즉 무관심해서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때때로 삶은 경험을 통해 현명해지기보다

    경험함으로써 '자제하지 않아도 무탈하다'는 걸 알아가는 과정인 것 같다고 그녀는 정의한다.

    요리를 오래 하다 보면 어떤 과정을 생략해도 음식 맛이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마음에 와닿는 말이었다.

    경험은 무조건 많이 하는 게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나 역시 있다.


    가령 지독한 실연으로 이성(異性)을 믿지 못하는 병이 생겨 연애 불능자가 된 후배나

    자동차 사고 후 뚜벅이가 돼 세상 사는 반경이 좁아졌다는 선배나

    사회부 기자가 된 후 악랄한 범죄 현장을 목격하면서 세상에 대한 극심한 공포가 생긴 친구가 그렇다.


    경험이 무조건 좋은 게 아니다.

    가능성을 좁히는 경험도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든다고 꼭 지혜로워지는 것도 아니고, 경험이 많을수록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다.

    물론 나이가 들어 간신히 알게 되는 것들도 있다.
    어려서는 운동과 무관하게 살던 내가 운동하게 된 건 건강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덜 아프기 위해서였다.
    살아보니 돈이란 원하는 물건을 사는 데 쓸 때보다
    불행을 예방하는 데 쓰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 역시 그렇다.

    시간이 흐를수록 어쩐지 무심함이란 단어에서 풍기던 부정적인 느낌이 조금씩 희석되는 기분도 든다.
    참견, 잔소리 같은 뜨거운 단어를 건너뛰어
    적당한 거리를 둔 채 느긋하게 바라보는 어른의 시선이 '무심함'이란 단어에서 느껴진달까.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9/21/201809210317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