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한국전쟁]

"미군 유해를 보니, 뼈도 다 자라지 않은 청년들" (조의준 특파원, 조선일보)

colorprom 2018. 8. 9. 18:56

미군 유해를 보니, 뼈도 다 자라지 않은 청년들

    워싱턴=조의준 특파원

    발행일 : 2018.08.09 / 사람 A31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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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참전 미군 유해 감식 맡은 美 DPAA 한국계 제니 진 박사
    지난달 訪北, 송환 과정 모두 참여 "할아버지도 피란민… 감회 새로워"

    "6·25에서 전사한 미군 유해를 보면 대부분 뼈가 다 자라지 않았어요.

    18~23세의 청년들이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나라에서 죽었으니까요.

    그 꽃다운 젊은이들은 자신이 거기서 죽을 것이란 걸 상상이나 했을까요."

    6·25에 참전했다 숨진 미군 유해 55가 지난 1일(현지 시각) 미국 하와이로 돌아왔다.

    이 유해의 신원 확인은 하와이에 본부를 둔 미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 소속

    인류학자인 한국계 제니 진(한국명 진주현·39·사진) 박사가 이끄는 팀에서 맡는다.

    진 박사는 '뼈박사'다.

    뼈를 맞추고 DNA를 추출해 유해의 이름을 찾아주는 일을 한다.

    그는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를 나와

    스탠퍼드대에서 인류학 석사,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인류학 박사를 마친 뒤 DPAA에 합류했다.


    7일 하와이에서 워싱턴으로 출장 온 진 박사는 본지와 만나

    "둘째를 임신한 지 3개월째인 지난 6월 '한국으로 떠날 수 있느냐'는 직장 상사의 전화를 받았다"며

    "이렇게 중요한 일에서 빠질 수 없었다. 바로 공항으로 짐을 싸 한국으로 출국했다"고 했다.

    이후 그는 미·북 장성급 회담을 거쳐 지난달 말 북한 원산에서 유해를 받는 과정까지 모두 참여했다.

    이번에 돌아온 55의 유해 중 30여 구장진호 전투에서 숨진 미군들이다.

    진 박사

    "장진호 전투 때는 기온이 영하 수십도로 내려가면서 진통제마저 얼어붙어

    쓰러진 미군들은 진통제 한 번 맞지 못하고 죽었다"며

    "땅이 얼어 동료를 묻지 못하자, 불을 질러 땅을 녹인 다음 전우들의 몸만 급히 묻고 퇴각했다"고 했다.

    진 박사

    "돌아온 유해를 실험실에 놓을 때는 항상 성조기를 시신의 건너편에 놓는다"고 했다.

    이미 죽어 백골이 됐지만, 만일 그들이 부활하듯 침대에서 일어났을 때 성조기를 맨 처음 볼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란 설명이다.


    모든 죽은 병사들을 고향으로 데려온다미국의 약속을 보여주는 장면인 셈이다.

    진 박사는 "북한으로부터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약 20년 동안 600여 구의 유해를 돌려받아

    지금껏 330구 정도의 시신을 확인했다"고 했다.


    6·25 실종자들의 경우 유가족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실종자들 DNA의 약 90%가 확보돼 있다.

    죽은 이의 뼈에 있는 DNA는 손상된 경우가 많아 이를 바로 확인하기가 쉽지 않지만,

    순조로울 경우 이번에 돌려받은 유해 중 일부는 몇 달 안에 유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했다.

    진 박사가 이 일을 맡게 된 것은 운명일 수 있다.

    그녀의 할아버지와 외할머니도 이북에서 내려온 피란민이었다.

    특히 할아버지는 장진호 전투에서 후퇴한 미군들과 함께 흥남에서 배를 타고 남쪽으로 왔다.


    그는 "외할머니도 피란을 오는 도중 원산에서 (북한군에) 잡혀 고생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지났던 길인 원산에서 미군 유해를 받을 때 감회가 새로웠다"고 했다.


    기고자 : 워싱턴=조의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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