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동, 27년 만에 대하소설 '國手' 완간… 김훈과 대담
―김성동(이하 성동): '만다라' 쓸 때는 내가 여자를 잘 몰랐으니까(웃음).
그래도 '이층을 지었다'는 유행어가 됐다.
―훈: 충청도 방언에선 '이'와 '으' 모음이 잘 붙잖아.
형의 고향에선 '김성동'을 '김승됭'이라고 하잖아. 그걸 어떻게 이해해야 돼?
―성동: 모음을 안(內)으로 오므린다. '농민'을 ' 민', '노동자'를 '뇌동자'라고 한다. 말이 안으로 자빠져.
―훈: 범[虎]을 '븜'이라고 썼는데 산속에 있는 범이 생활에 가까운 것처럼 들리더라.
'씨부랄'을 '쓰부랄'이라고 쓴 것도 욕이 아니라 바람 새는 소리 같아.
―성동: 그러니까 욕인데도 우스워. 충청도 말은 모난 것을 깎아서 순화해.
삼국시대 때 충청도 내포 지역이 낮에는 백제, 밤에는 신라였다가 거꾸로 될 수도 있었다.
피어린 현장에 살았기 때문에 누구 편도 들 수 없어서 말을 천천히 해야 돼.
'글쎄 말이여, 잘 모르겄시유'라면서. 일단 상황을 봐야 되니까, '가만있어 봐유~'라고 하는 거지.
―훈: 소설에서 하인이 상전에게 말할 때 종결어미를 우물거리더라. '~습니다'가 아니라 '~습니다만…'이라고.
―성동: 언어는 계급이니까 절대 맞먹지 못하게 했지.
양반 앞에선 평민들이 곡좌(曲坐)했어. 몸을 옆으로 틀어 무릎 꿇고 앉았어. 마주 봤다간 그냥 나가떨어졌지.
―훈: 아전의 언어가 소설에서 섬세하게 그려졌더라.
―성동: 아전과 노비의 언어는 잘 남아있지 않아.
어느 누가 '우리 조상이 아전 했다, 종놈 했다' 하겠나. 그걸 찾느라 고생했어.
내 소설에서 노비가 '나으리 마님, 외오 여기지 마소서'라고 하는데,
'외오'는 '고깝게 혹은 기분 나쁘게'란 뜻이다.
지금 우리말은 일본식 한자어에 너무 오염됐어.
'삼계탕'이 아니라 원래 '계삼탕'이었다. 그 탕에 인삼이 몇 뿌리나 들어가겠는가.
닭이 주(主)가 되니 계삼탕이 맞지.
―훈: 문체가 판소리를 연상케 한다.
진양조가 본류를 이루면서, 중모리와 중중모리가 들어와 있는 형국인데, 그 문체가 저절로 나온 건가?
―성동: 전문적으로 얘기하니까 난 뭔 말인지 모르겄구먼(웃음). 뭘 의식한 게 아니고 그냥 터져 나온 거여.
―훈: 나 같은 놈은 문장을 공들여서 만들어내거든. 형은 물 흐르듯이 그냥 나온 것 같아.
―성동: 어휴, 김형 문장은 아름답지. 하자 없이 딱 짜였잖아.
난 글을 쓸 때 할아버지랑 놀던 유년기로 가기 때문에 행복해.
네 살부터 여덟 살 때까지 할아버지한테 논어·맹자·대학·중용을 배웠어. 그때 익힌 게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아.
―훈: 형은 유가(儒家)에 뿌리를 뒀지만 입산해 불가(佛家)에도 몸을 담았다.
소설을 읽어보니 유불(儒佛)이 조화롭게 살자고 하더라.
그 조화라는 것이 '밥을 먹는 이치를 배우는 것'이라고 쓴 대목은 아주 감동적이다.
―성동: 모름지기 궁리를 하고자 할진대 먼저 올바르게 밥 먹는 법부터 배우고 볼 일이지.
밥을 함께 먹을 줄 알아야지.
그런데 우리 역사는 배제의 역사잖아. 내 것만 주장하고 남을 부정하고. (정권이) 뒤집어지면 또 배제하고.
지금도 똑같아. 조화해야 평등이 나오지.
―훈: 문재인 정부가 지금 이렇게 힘들어하는 것도 밥을 먹는 이치를 실현하는 게 어려워서 그래.
소득 주도 성장이니 뭐니 하면서 이 난리가 벌어지잖아.
―성동: 항산(恒産)이 없으면 항심(恒心)도 없는 것이 백성이고,
항산이 없어도 항심이 있어야만 왈(曰) 선비여.
―훈: 형은 궁예·묘청·신돈·김개남·홍경래·김옥균 같은 계통의 사람들을 좋아하는 듯하다.
―성동: 현실을 바꿔보려다가 꺾인 사람들이다.
그들에 대한 평가도 야박해. 우리 역사의 반쪽이 없어졌다.
―훈: 소설에서 농민들이 탐욕스러운 군수(郡守)를 혼내주려고 몰려가는데, 그런 것을 뭐라고 표현했더라.
―성동: '짚둥우리 태운다.' 짚방석으로 된 의자에 군수를 태우고 고을 바깥에 내다 버리는 거지.
군수를 처단하는 게 아니야. 요즘 투쟁이 더 사나워졌어.
―훈: 소설에선 군수가 가뭄을 해소하기 위해 기우제를 지낸다는 명목으로 세금을 더 걷는다.
성난 농민들이 군수에게 몰려갔다가 때마침 비가 오니까 신나서 해산하잖아.
비가 오니까 혁명이고 뭐고 다 내던지고 제 논에 물 대러 달려가는 거지.
―성동: 그게 생활이지. 대중의 익명성에 가린 개인 하나하나를 소설로 쓰려고 했어.
옛날 사람들이 지금 우리보다 더 나은 점도 많아.
아내를 '안해'라고 했는데, '안의 해, 내부의 태양'이란 뜻이지.
양반일수록 안해를 동등하게 여겼어.
우리 할아버지가 할머니한테 아주 깍듯이 했어. '그러셨어요?'라며 극존칭을 아주 자연스레 썼어.
―훈: 나는 그렇게 못 하겠다
.
―성동: 아니, 김훈이 못하는 게 아니고 이 시대가 못 하는 거여. 다 바뀌었으니.
―훈: 소설엔 오입쟁이들의 언어도 많이 나오더라.
―성동: 기생방 풍습을 재현하느라 힘들었어.
거기에도 법도가 있어서 손님이 그냥 들어가는 게 아니야.
손님끼리도 예를 갖춰서 대화를 나눴어.
오입쟁이도 마구잡이가 아니여.
지금 정치인의 품격은 조선의 오입쟁이 수준도 못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