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대한민국 출범]

역사적 정통성으론 1919년, 민주적 정당성으론 1948년 建國

colorprom 2018. 7. 16. 16:11


역사적 정통성으론 1919년, 민주적 정당성으론 1948년 建國


조선일보
                             
  • 김성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입력 2018.07.16 03:00

    [다시 보는 1948년 대한민국 출범]


    1948년 헌법, '개정' 아닌 '제정'… 5·10 총선으로 세워졌다는 뜻

    김성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성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法統)을 계승한다"는 문구는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에 처음 등장한다. 법통은 이단을 가려내기 위해 만든 종교적 개념으로, 그 적확한 법적·정치적 의미는 지금도 학계와 법조계의 논란거리다. 이 애매모호한 정치신학 논쟁은 접고, 대신 1948년 건국헌법의 전문(前文)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우리들의 정당 또 자유로히 선거된 대표로서 구성된 국회에서… 이 헌법을 제정한다." 즉, 1919년에 '건립'된 대한민국을 1948년에 와서 '재건'하기 위해 헌법을 '제정'한다는 뜻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지난한 망명의 와중에도 5차례에 걸쳐 개헌을 이뤄냈다. 1941년의 '건국강령'까지 포함하면 1948년 헌법은 대한민국 7차 헌법이어야 하고, 상응하는 동사도 '개정'한다가 이치에 맞는다. 제헌국회에서 "임시정부 헌법을 개헌하는 방편을 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도 '역사적 연속성'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전문은 대한민국 헌법의 '개정'이 아닌 '제정'을 선포하며 '역사적 불연속성'을 표방하고 있다. 그 단절의 이치는 무엇일까.

    '정통성(orthodoxy)'은 통시적(通時的) 개념이다. 그래서 조선왕조는 기자(箕子), 천주교는 베드로까지 올라가는 정신적 족보에서 권위를 구한다. 건국의 정통성 역시 3·1운동과 임시정부로부터 유래하는 일종의 보학(譜學)에 의존하는 것은 당연하다.


    1948년 제헌헌법 공포를 기념해 발행한 우표.
    1948년 제헌헌법 공포를 기념해 발행한 우표.

    반면 민주적 '정당성(legitimacy)'은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자발적 동의에 기반한 공시적(共時的) 개념이다. 1948년 당시의 정당성은 '정당 또 자유로히' 치러진 5·10 총선에서 비롯한다. 그때까지 한반도에 아래로부터의 명시적 동의에 의해 세워진 나라가 없었다는 건 부동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건국의 불연속성을 강조하는 역사관, 이 또한 지당하지 아니한가.

    비슷한 시기인 1947년 5월, 역시 미군의 점령 아래 있었던 일본에 신헌법이 발효됐다. 이른바 '평화헌법' 전문(前文)은 '정당하게 선거된 국회'를 통해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선언하며 헌법을 확정한다"고 하여 전전(戰前)의 천황주권을 배격하고 있다. 그 민주적 정당성의 근거는 여성 참정권 실시로 보통·평등 선거의 원칙이 처음 관철된 1946년 4월의 중의원 선거였다.

    그러나 이 혁명적 전문의 바로 앞에는 '상유(上諭)', 그네들 '임금님 말씀'이 자리하고 있었다. 상유는 구헌법 73조에 따라 개정된 헌법을 천황이 주권적 재가(裁可)를 통해 사실상 흠정(欽定)한다고 말한다. 일본 헌법전(憲法典)의 일부를 구성하는 이 '말씀'은 오늘날까지도 전전과 전후(戰後)의 연속성을 공증하고 있다.

    상유와 전문의 일견 모순된 공존은 물론 '국체호지(国体護持)'에 사활을 건 일본 정부와 원활한 점령 통치를 위해 법적 연속성의 외양을 유지하고자 한 미군정이 합작한 소산이다. 하지만 이 합작이 이치에 어긋나는 야합이나 봉합만은 아니었다. 일본 전후헌법의 정통성은 천황주권에 기초한 제국헌법으로 소급되지만 그렇다고 평화헌법의 국민주권주의나 전후민주주의의 정당성이 훼손되지는 않는다. 상유의 '통시적 정통성'과 전문의 '공시적 정당성'이 서로 다른 개념인 까닭이다.

    나라가 달라도 이치는 마 찬가지다. 2018년 대한민국에서 1919년의 정통성과 1948년의 정당성이 다툴 이유가 없다. 대한민국은 역사적 정통성의 관점에서는 1919년, 민주적 정당성의 관점에서는 1948년에 건국된 것이다. 건국의 기산점을 둘러싼 역사 당쟁이 또다시 불거진 제헌 70주년, 그래서 건국헌법에 담긴 정통성과 정당성의 이치를 새삼 새겨본다.

    공동기획: 한국정치외교사학회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7/16/201807160016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