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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주년 앞둔 피아니스트 백혜선, 베토벤 소나타·협주곡 全曲 도전 (김경은 기자, 조선일보)

colorprom 2018. 7. 26. 14:23

오십 되니 베토벤 보여… 살면서 좌절할 때가 가장 좋은 때


조선일보
                             
             
입력 2018.07.26 03:00

30주년 앞둔 피아니스트 백혜선, 베토벤 소나타·협주곡 全曲 도전

"너, 미쳤니?"

2005년 마흔이던 그녀가 서울대 음대 교수직을 박차고 미국으로 가 버렸을 때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돈과 명예는 그때까지 흘린 피, 땀, 눈물에 대한 보답일 뿐, 음악가는 음악으로 승부를 내야죠.
그럴듯한 간판에 안주해 버리면 박제돼 버릴 것 같아 견딜 수 없었어요."

시원한 이목구비처럼 호탕한 연주로 청중의 가슴을 찌르르 울리는 백혜선.
시원한 이목구비처럼 호탕한 연주로 청중의 가슴을 찌르르 울리는 백혜선.
그는“나이 들수록 나이에 걸맞은 연주를 해내지 못할까 봐 날마다 도망치고 싶은 겁쟁이”라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
내년이면 데뷔 30주년인 피아니스트 백혜선(53)이 요새 공들이는 작곡가는 베토벤이다.
지난 3월부터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全曲·32곡)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곡(5곡)을 들려주는 여정을 밟고 있다.
그 세 번째 무대인 27일엔 협주곡 1번과 5번 '황제'를 선보이며 협주곡 전체를 마무리한다.
9월엔 소나타 4번·6번·8번 '비창'·23번 '열정'으로 숨 고르기에 들어간다.

예전엔 전곡을 하는 연주자를 보면 '마음에 와닿는 것만 하면 되지. 기네스북에 이름 올릴 일 있어?'라고
생각했다.
"근데 쉰일곱에 세상을 뜬 베토벤 나이에 저도 점점 가까워지니까
전곡을 하는 게 엄청난 자기 통찰이란 걸 알겠는 거예요."
백혜선은
"사실 베토벤은 너무 괴팍해서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사람.
그러나 그 내면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오만 가지 고통이 다 있어 그만큼의 희망과 환희가 있다"고 했다.

'대구의 딸' 백혜선은 이미 20년 전 빛나는 수상 경력을 쌓은 실력파다.
1989년 메릴랜드 윌리엄 카펠 콩쿠르에서 1위를 하면서 뉴욕 무대에 진출했고,
1994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1위 없는 3위를 했다.
이듬해 서울대에서 '20년 만에 최연소 교수 임용'이란 화제를 일으키며 서른 살 교수가 됐다.

그러나 그는 "살아보니 높은 자리가 가장 낮은 자리더라"며
"연년생 남매를 혼자 키우며 미국에 발붙인 첫 5년은 그야말로 고생의 끝자락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매년 여름 뉴욕 한복판에서 열리는 피아니스트들 축제에 3년 연속 초청돼
명(名)피아니스트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고,
부산국제음악제 음악감독으로 지방 공연장에도 음악의 싹을 틔우는 등 보람찬 시간을 보냈다.
2011년 12월 뉴욕 링컨센터에서 14년 만에 독주회를 열었고,
올가을부턴 모교인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학생들도 가르친다.

서울대에 10년간 있으면서
"손가락은 신 들린 사람처럼 돌리는데, 자신이 왜 음악을 하는지는 모르는 '유령'들이 많아 충격받았다"고
했다.
"애들에게 '네 꿈은 뭐니?' 물으면 열이면 아홉 펑펑 울었지요. 부모 욕심에 온 아이들이 너무 많았던 거예요." 찬찬히 지켜보다 아니다 싶으면 다른 과로 보내거나 수능부터 다시 치게 했다.
그래서 그녀 밑에서 전과한 음대생이 가장 많은, 전무후무 한 기록을 만들었다.

"오십이 넘고 보니 비로소 베토벤이 보인다"고 했다.
"살면서 좌절할 때가 가장 좋은 때이고, 기쁘고 성취감을 느낄 때가 가장 위험한 때예요.
한 걸음씩 올라갈 때마다 겸손해져야 하고, 깊은 맛을 낼 줄 알아야 하기 때문에
50대의 완주는 30대 때 하는 것과 다른 것 같아요."

▶백혜선의 베토벤=27일·9월 14일 오후 2시 롯데콘서트홀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7/25/201807250383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