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8.07.26 03:00
글쓰기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저마다 이유는 다르지만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은 똑같은 사람들이 매주 모여
각자 쓴 글을 읽고 서로 평가해 준다.
학생, 성직자, 외국인, 펑크족, 건물주, 유튜버 등으로 구성된 이 모임을 이끌며
나는 그동안 베란다, 서울, 효도, 김봉현의 장점 등을 글쓰기 주제로 내주었다.
이번 주 주제는 지각이었다. 한 명이 최근 연거푸 지각을 했기 때문이다.
이번 주 주제는 지각이었다. 한 명이 최근 연거푸 지각을 했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람이 모인 만큼 다양한 글이 나왔다.
지각을 첫사랑과의 늦은 재회로 해석한 이도 있었고
오히려 지각이야말로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역설하는 이도 있었다.
그중 지각과 성실성을 관련 지은 글을 마지막으로 살펴본 후 이 글을 쓴다.
우리는 지각을 자연스럽게 성실함과 관련짓는다. 지각이란 곧 불성실함의 다른 말이다.
우리는 지각을 자연스럽게 성실함과 관련짓는다. 지각이란 곧 불성실함의 다른 말이다.
매일 정해진 시각에 맞춰 도착하는 사람은 대체로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여길 확률이 높다.
그러나 지각은 하지 않지만 업무 성과가 떨어지는 사람과 지각은 가끔 해도 업무 성과가 훌륭한 사람 중
과연 누가 '진짜' 성실함을 갖춘 사람일까.
10분 먼저 오거나 늦는 것이 그리도 중요한 걸까.
직장인이 아니라 예술가의 세계에서는 이 성실함의 정의가 더욱 모호해진다.
만약 매달 새로운 노래를 발표하는 음악가가 있다면 우리는 그를 성실하게 작업하는 사람으로 인식할 것이다. 반면 10년마다 앨범을 딱 한 장 발표하는 음악가가 있다면 어떨까? 그를 게으른 사람으로만 정의할 것인가.
만약 전자의 작품이 평범한 만듦새의 연속일 뿐이고 후자의 작품은 역사에
남을 역작이라면,
과연 누가 예술가의 '본분'에 걸맞은 성실함을 갖췄다고 봐야 할까.
우리는 어릴 적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외우며 자란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외우며 자란다.
성실함의 정의도 우리가 이미 어린 시절부터 외워놓은 것 중 하나일지 모른다.
외워놓은 것을 의심하지 않고 그저 무작정 따라 사용한다면 그걸 온전히 자기 생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에겐 더 많은 주체적 사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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