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학회 참석을 위해 독일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유년 시절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냈기에, 독일 방문은 매번 특별한 의미가 있다.
빈틈없이 정리 정돈된 도시를 보며 놀라면서도,
여전히 융통성이란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억압적 사회 분위기는
내가 왜 독일을 도망치듯 떠났는지 기억하게 한다.
아직 통일되지 않았던 서독에서 함께 학교를 다녔고,
갑작스러운 통일의 놀라움과 기쁨을 함께 경험했던 친구들과 늦은 밤 토론이 시작되었다.
서독과 동독 출신 사람들을 여전히 구별할 수 있을까?
생김새와 외모로는 더 이상 불가능하겠다.
하지만 동독 출신 사람들을 구별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하나 있긴 하다.
바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이다.
물론 모두가 그럴 리는 없다.
동독 출신인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국제적 마인드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유명하니 말이다.
하지만 외국인과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 피부색이 다른 인종에 대한 혐오감, 게르만 민족 우월주의 모두
서독보다 동독에서 더 자주 경험할 수 있다.
특히 요즘 유럽을 휩쓸고 있는 포퓰리즘과 신(新)나치당(黨) 역시
과거의 동독 지역에서 더 많은 지지를 받고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당황스럽게 했다.
어린 시절 그들은 공산주의, 다시 말해 극단적 '좌파' 교육을 받았던 사람들 아닌가?
왜 그들은 사상적 정반대인 극우 민족주의에 빠져버린 것일까?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답 없는 질문은 두렵지 않지만, 질문 없는 답은 너무나도 두렵다고.
국가에서 결정했기에 비판과 질문이 허락되지 않는 '진실'로 세뇌당했기에,
시대와 세상이 변한 오늘 그들은 또 다른 '진실'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결국 무엇을 배우는가보다, 그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기억과 미래가 매번 바뀌는 대한민국.
우리도 이젠 '무엇'보다 '어떻게'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