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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이탈리아 國運 왜 저무나 (손진석 특파원, 조선일보)

colorprom 2018. 7. 18. 20:19

[특파원 리포트] 이탈리아 國運 왜 저무나


조선일보
                              
             
입력 2018.07.18 03:14

손진석 파리 특파원
손진석 파리 특파원



선진국 모임인 'G7'에서 한 나라만 제외해야 한다면 이탈리아가 될 확률이 높다.

1인당 GDP가 3만달러 턱걸이라 나머지 여섯 나라보다 한참 뒤떨어진다.


1000조원에 이르는 나랏빚을 해결할 단초를 찾지 못하고 있다.

재정난을 겪는 로마시(市)는 공원 잡초 뽑을 예산이 부족해 양 떼 방목을 추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치적으로도 포퓰리즘 세력과 극우 정당의 연정(聯政)이 등장해 돈키호테식 통치가 이뤄지고 있다.

선진국의 품격을 찾기 어렵다.

한때 이탈리아도 번영을 누렸다.

경제 규모에서 영국을 끌어내리고 1986년부터 9년 연속 세계 5위를 유지할 때가 그랬다.

1990년 이탈리아 경제 규모는 스페인의 2배, 한국의 4배가 넘었다.

전후(戰後) 도시화와 산업화가 잰걸음으로 이뤄졌고 창업까지 활발했다.

1950년 이후 30년 성장률이 영불(英佛)보다 높았다.

특히 강한 중소기업이 대들보였다.

1980년대 안경테, 가구, 타일 등 틈새 시장에서 강소(强小)기업이 여럿 등장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자본시장 발달이 더딘 탓에 뭉칫돈 수혈이 어려워 공룡 기업을 키우기가 난망했다.

노조 등쌀에 시달리지 않으려고 사업가들은 노조 설립 의무가 없는 15인 이하 소(小)기업에 자족했다.

결과는 지금 보는 대로다.

1990년대 이후 전 세계에서 가속화된 '규모의 경제' 싸움에서 이탈리아는 속절없이 뒤로 밀리기만 했다.

작년 미국 포천지 선정 글로벌 500대 기업에 이탈리아 회사는 7곳에 그쳤다.

이 7곳은 모두 통신·에너지·금융 등 내수용 기간 사업체이며, 수출형 제조업체는 한 곳도 없다.

소총(小銃)만 넘쳐날 뿐 대포(大砲)가 없어 패퇴를 거듭하는 군대와 비슷하다.

그나마 자동차 회사 피아트가 명맥을 유지했지만 미국 크라이슬러와 합병한 다음

세금 싸고 규제 적은 네덜란드로 2년 전에 본사를 옮겨버렸다.

강소기업이 많다 하더라도 독일처럼 대기업도 즐비해 서로 균형을 이뤄야 시너지를 얻을 수 있다.

요즘 문재인 정부가 대기업을 포위하는 움직임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지배 구조까지 시시콜콜 훈수를 두면서 갖가지 규제를 가한다.

울타리 안에서만 보면 대기업은 포식자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밖에서 연일 치열한 전투를 치르며 부(富)를 끌어오는 대표 선수라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여기저기에서 우리나라가 반도체 빼면 밑천이 바닥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뒤집어 보면 반도체에서 세계를 호령하는 대기업이 받쳐주니 무너지지 않고 버틴다는 것 아닌가.

대기업을 억누른다고 중소기업이 융성한다는 보장도 없다.

해외에 내놓을 만한 간판 기업이 없어 갈수록 국운(國運)이 저물어가는 이탈리아를 반면교사로 봐야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7/17/201807170332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