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31> 백선엽(1920~) (김동길 교수, 조선일보)

colorprom 2018. 6. 23. 16:17


[Why] 하극상에 미련없이 을 떠난 전쟁 영웅이듬해 5·16혁명이 터졌다


조선일보
                             
  • 김동길 단국대 석좌교수·연세대 명예교수
    •          
    입력 2018.06.23 03:01

    [김동길 인물 에세이 100년의 사람들] <31> 백선엽(1920~)

    백선엽
    일러스트=이철원

    612년 중국 수나라의 양제가 우리나라를 침략했을 때에는
    살수(청천강)에서 침략군을 물리친 고구려의 을지문덕이 있었고,
    1592년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한반도에 침공했을 적에는
    한산도 대첩으로 기선을 제압한 조선조의 이순신이 있었고,
    1950년 인민군에게 남침을 당하여 악전고투하던 때
    대구, 부산을 향해 돌진하려는 인민군을 칠곡 가까이 있는 다부동에서 목숨을 걸고 저지한 백선엽이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그의 어머니(방효열)는 온갖 궂은일을 다 하며 자녀를 키웠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방씨 성을 가진 모든 여성에게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방씨가 시집가면 뉘 집에 가나 그 집이 잘돼"라고 어머니 자랑을 했던 그가 나와 특별히 친했던 까닭이
    내 어머니가 방씨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는 강서에서 소학교를 마치고 성적이 하도 우수하여 평양사범에 입학하였다.
    백선엽어려서부터 군인이 되고 싶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국민학교 교사 노릇을 한동안 했지만, 군인이 되고자 하는 그 꿈을 버릴 수가 없어
    새로 탄생한 만주국 봉천(심양) 군관학교에 입학하였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하던 때 백선엽은 만주군의 중위로 해방을 맞이하였다.
    김일성이 평양에서 적위대(붉은군대)를 창설하던 무렵,
    백선엽조선민주당을 세운 조만식 밑에서 비서 일을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뜻하는 바가 있어 그 겨울에 월남하여 남한에 생긴 군사영어학교 1기생으로 입학하여
    그 이듬해 육군 중위로 임명되어 제5연대장으로 취임하였다.
    그는 국방경비대 내에서 대대장, 연대장을 거쳤고 1948년 12월에는 대령으로 진급되었다.

    6·25 직전까지는 사단장으로 근무했고 6·25가 터진 뒤에는 준장으로 진급해 군단장에 임명되었다.
    전쟁 와중에 육군 참모총장, 계엄사령관을 역임하다가 대한민국 최초의 육군 대장으로 진급되었다.
    우리나라 역사에 처음 대장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별을 단 그 많은 장성 가운데서 서북 출신일 뿐 아니라 아무런 배경도 없는 백선엽을 발탁한
    대통령 이승만의 혜안에 새삼 감탄한다.
    우남 이승만
    소박하다 못해 투박하고, 남의 마음을 살 만한 매끄러운 말을 한마디도 할 줄 모르는 백선엽에게
    대한민국 군인으로서 차지할 수 있는 최고의 영예를 누리게 한 것이다.

    6·25전쟁에서 용맹을 떨친 사병과 장성은 많다.
    그러나 만일 1950년 8월과 9월에 벌어진 다부동 전투에서
    제1사단장 백선엽이 발휘한 뜨거운 애국심이 없었더라면 대구는 인민군 수중에 들어갔을 것이고
    낙동강부산도 모두 인민군에 의해 점령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칠곡 부근에 진지를 구축하고 인민군의 남진을 저지해야 했던 백선엽의 제1사단은
    미국 제1기병사단과 공동 작전을 펴게 되었는데
    여러 날 굶주린 데다가 피로가 겹친 군인들이 고지를 이탈하는 일이 속출하고 있었다.
    그 정보를 접한 백선엽은 낙동강 전선을 지키기 위해 다부동의 고지를 사수해야만 했다.

    사단장 백선엽이 병사들을 이끌고 앞장서 나가면서 부하들에게
    "내가 후퇴할 낌새를 보이면 너희가 나를 쏴라"는 엄명을 내리고 선두에서 그 고지를 향해 돌진하였고
    다부동 고지를 지킴으로써 대한민국을 지킬 수가 있었다.
    칠곡군 가산면에 다부동전투 전적비와 기념관이 세워진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1960년 5월 군 내부의 '하극상' 현상이 벌어지는 것을 목격하고 백선엽은 퇴역을 결심하였다.
    그 이듬해 5·16 군사혁명이 터졌다.
    군을 떠난 백선엽으로서는 만감이 교차하는 복잡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가 군의 요직에 있을 때
    박정희를 남로당 총책으로 몰았던 김창룡 등이 그를 군에서 숙청하려고 했을 때
    박정희의 유능함을 잘 알고 있던 백선엽은 적극적으로 그의 구명운동에 나섰던 것이다.

    백선엽을 개인적으로 잘 아는 사람으로 한마디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오늘 그는 나이가 99세가 되었지만 생각하는 것은 어린아이와 같이 천진난만하다.

    군대에 있으면서 그는 별을 여러 개 달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 운동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가 받은 훈장을 다 달고 외출을 한다면 군복의 앞자락이 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겁다.
    그러나 그는 한 번도 자기의 무공을 자랑해 본 적이 없다.
    몇 해 전 그에게 별을 하나 더 달아 주자는 국민 열망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을 조금도 그는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육군 참모총장을 비롯하여 군의 모든 요직을 두루 거쳤지만,
    누구에게도 그렇게 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다.
    예비역에 편입된 뒤에는 중화민국 대사, 프랑스 대사, 캐나다 대사 등을 역임했지만,
    그가 외교관이 되려고 노력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교통부 장관에 임명됐기 때문에 서울시 전철 1호선 완공이 가능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는 한 번도 자랑하지 않았다.

    그 뒤에 충주비료 등 국영 기업체 사장도 지낼 만큼 다양한 경력을 가졌지만
    백선엽의 인생 좌표는 "대한민국을 위해서 라면 나는 지옥에라도 가겠다"라는 한마디뿐이다.
    백선엽을 만날 때마다 나는 큰 산을 대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이태백의 시 한 수를 읊어 장군 백선엽에게 경의를 표하고자 한다.

    홀로 경정산과 마주 앉아(獨坐敬亭山)

    뭇새들 높이 날아 다 사라지고 /외로운 구름 한 점 흘러가는데 /
    아무리 서로 봐도 싫증 안 나는 /그대 경정산 있을 뿐일세.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6/22/2018062201705.html


    안해근(ahk*)2018.06.2913:53:22신고
    좌파들은 싫어할지라도 나는 그가 좋다 정말 좋다
    이상국(sk****)모바일에서 작성2018.06.2416:53:46신고
    헤비급 챔피언전에 오른 선수에게 플라이급에 지나지 않는 약골이 훈수하는 꼴은 보기에 좋지않다.
    힘을 보태 응원하면 될 일이다.
    김태선(smooth****)2018.06.2411:05:08신고
    허인영씨 같은 분이 대한민국을 좀 먹고 있는 좀비 이다. 역사 공부좀 더 하시고 창피 한 줄 알아야 .. 이런식으로 얘기 하면 대한 민국엔 영웅이 없다 .
    난세에 역사의 주인공을 그렇게 모욕을 주는 것에 대해 참을수가 없다
    인정 할 줄 아는 용기 지혜 그런 덕목을 키우시면 좋겠다
    방항모(ban****)모바일에서 작성2018.06.2410:57:19신고
    허인영씨 공부 더하고 글쓰기 바랍니다. 혼자 애꾸눈 같아 보입니다.
    허인영(ey****)모바일에서 작성2018.06.2410:24:06신고
    백선엽, 시라카와 요시노리! 독립군 때려잡다 호시절 만나 평생을 호위호식하며 백년향수 하는 자!
    이 자가 대한민국 현대사의 민낯!
              정봉구(philip****)2018.06.2411:01:11신고

    너는 몇살이며 너희애비는 몇살이냐
    나라가망하여 우리말을못하며 강제로 일본말만하게하고 이름도 일본식이름으로 창씨개명하게한
    치욕의역사를알면 절로터진입으로 헛소리말라.
    나도 1938 년생으로 국민학교 입학하기위해서 창씨개명했는데 나도 7살짜리 친일파인가.
    헛소리말고 역사공부나하고 잡소리하라.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6/22/2018062201705.html


    [선우정 칼럼] '백선엽 죽이기'


    조선일보
                             
               
    입력 2019.06.26 03:17

    軍의 역사적 정통성을 아무리 뒤집으려 해도 전쟁 영웅이 남긴
    거대한 기록의 벽을 절대 극복하지 못한다… 그래서 미쳐가는 것이다

    선우정 부국장 겸 사회부장
    선우정 부국장 겸 사회부장


    그제 문재인 대통령이 6·25전쟁에 대해 "북한의 침략을 이겨냄으로써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켰다"고 말했다. 많은 언론이 이 말을 크게 보도했다. 1면 톱기사로 쓴 신문도 있었다. 콩을 콩, 팥을 팥이라고 한 것이다.

    문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이 당연한 말을 이렇게 보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 대통령이 3년 전 히말라야에서 쓰고 공개한 글이 있다.

    6·25 전쟁에 미군 일원으로 참전한 한국계 미국인 김영옥 대령을 전설적 영웅으로 찬양하는 내용이다.


    다음이 걸렸다.

    용감한 미군 대령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비겁한 국군 지휘관을 대비해 말 보따리를 풀어간다.

    "김 대령이 생명이 위태로울 정도의 중상을 당해가며 혁혁한 전공을 세우던 그 시기,

    우리군 일부 고위 지휘관들은 전투마다 연전연패해 전선을 무너뜨리고도 훈장을 받았다.

    지휘를 부하에게 떠넘긴 채 전선을 무단 이탈한 지휘관도 있었다.

    그로 인해 유엔군으로부터 굴욕의 군단 해체 조치를 당하고, 작전권미군에 넘어가는 빌미를 제공했다."

    국군 지휘관에 대한 언급은 여기서 끝난다.

    '일부'만 말하고 '다수' 지휘관에 대해선 침묵한다.

    용감한 미군비겁한 국군. 이 구도를 분명히 해야 전시작전통제권과 같은 안보·전략 문제를

    민족 감정의 과제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 대통령은 같은 글에서

    "아직도 작전권미군에 맡겨놓고, 미군에 의존해야만 하는 약한 군대"라고 했다.


    그러면 지금 문 정권의 국군도 약하고 비겁한 존재인가.

    작전권을 가져오고 미군으로부터 독립해야 강해지고 용감해지는가.

    몇 걸음 더 나아간 특정 세력의 '미군 철수' 주장도 맥이 통한다.

    용감하면 내보내라는 것이다.

    이들은 파편적 사건으로 전체를 규정한다.

    무능한 국군 때문에 전작권이 넘어갔다는 주장이 그렇다.


    전작권이 6·25 발발 직후 통합적 작전 수행을 위해 전략적으로 유엔군에 위임됐다는 것을 학자들은 다 안다. 그들이 말하는 비겁한 패배강원도 현리 전투를 말한다.

    이때의 전작권 환수는 전투 현장에서 예외적으로 허용되던 지엽적 권한에 불과했다.


    전투는 치욕적이었으나 그 결과 미군의 집중 훈련이 시행돼

    국군은 전쟁 후반기 전선의 3분의 2를 책임지는 강군으로 성장했다.


    파편적 사건을 종합하면 국군의 역사적 위상은 달라진다.

    국군의 비겁을 말하는 세력의 주장은 실체(實體) 앞에서 무너진다.

    진실을 뒷받침할 팩트를 69년 전 국군의 선봉에서 싸운 노병(老兵)이 축적했기 때문이다.

    백선엽(白善燁)이다.

    그는 6·25 때 한국을 지킨 전쟁 영웅이다.

    그만큼 큰 업적이 민주화 이후 이념적 혼란 과정에서 그가 낸 저술이라고 생각한다.

    1989년 출간한 '군과 나'를 읽을 때 나는 류성룡의 '징비록'을 떠올렸다.

    거짓과 과장을 발라내고 영광과 치욕을 동시에 서술한 현장과 체험의 기록이다.


    '징비록'이 없었다면 이순신을 비롯한 조선 영웅의 역사적 존재감은 거의 사라졌을 것이다.

    명군(明軍)을 받들고 조선군을 무시하던 선조 비대칭 세계관

    '용감한 미군과 비겁한 국군' 구도의 역사관과 흡사하다.


    6·25 때 미8군 사령관을 지낸 리지웨이밴플리트'군과 나' 서문에서

    "이 책 덕분에 한국군이 본분을 다하지 못했고 무능력했다는

    잔인하고 그릇된 판단을 바로잡을 수 있는 증거를 찾게 됐다"고 썼다.


    문 대통령이 읽었다면 히말라야에서 그런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사대주의 역사관도 류성룡을 뛰어넘지 못했듯,

    국군의 역사를 왜곡하는 어떤 시도도 백선엽을 넘지 못했다.

    최근 특정 세력의 '백선엽 죽이기'는 국군의 과거를 흑역사로 만드는 데 실패한 세력이

    미친 듯 뿜어대는 독기에 해당한다.

    신부 함세웅은 그를 향해 "사죄하지 않는 악질 친일파"라고 공격했다.

    야당 대표가 그를 찾아가 국가 안보를 걱정한 다음이었다.


    내가 함세웅 이름을 처음 들은 건 35년 전 그가 차를 몰고 가다가 일곱 살 아이를 치어 숨지게 했을 때였다.

    자책(自責) 때문에 그가 신부 생활을 제대로 할지 진심으로 걱정하던 동네 신자들을 기억한다.

    순진한 시대였다.


    그 후 그는 더욱 맹렬히 남의 허물을 물어뜯었다.

    팔순에 접어드는 지금도 백수(白壽)가 넘은 노인을 향해 저런다.

    치사(致死) 사고 때문에 그를 "살인자"라고 할 수 없듯,

    명령을 받고 전출된 부대의 성격을 근거로 "악질 친일파"라고 공격해선 안 된다.


    그런데 신부 함세웅은 이 상식적 잣대를 자신, 또는 자신의 패거리에게만 적용한다.

    백선엽을 공격하는 사람 상당수의 정신 상태와 처세 방식도 그와 비슷할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6/25/2019062504026.html         


     

    [만물상] 6·25 영웅 깎아내리기


    조선일보
                             
               
    입력 2019.06.18 03:16

    미군의 대표적 보병 훈련 기지인 조지아주 포트베닝의 육군보병박물관에 가면

    한국 노병(老兵)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6·25전쟁 영웅 백선엽 예비역 육군 대장의 육성(肉聲)이다.

    미군은 2009년 박물관 개관을 앞두고 백선엽을 포트베닝으로 초청해

    6·25전쟁에 관한 생생한 증언을 녹음했다.

    보병재단 회장이 직접 긴 편지를 보내 "역사적 전투 경험을 공유하게 해달라"고 요청해 성사된 것이다.


    박물관은 이 녹음을 영구 보존한다고 한다.


    ▶미군은 백선엽'살아있는 전설'이자 '·미 동맹의 상징'으로 예우한다.

    6·25전쟁 당시 미군과 함께 마지막 전선(戰線)을 지켜낸 백선엽에 대해 미군은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한국군 장교" "최상의 야전 지휘관"이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주한 미군이 백수(白壽·한국 나이 99세)를 맞은 백선엽을 위한 파티를 연 자리에서

    군인 출신인 해리스 주한 대사는 무릎을 꿇고 노병의 두 손을 맞잡았다.

    미군의 존경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대한민국의 오늘을 있게 한 이 전쟁 영웅이 정작 한국에서는 틈만 나면 폄훼와 매도 대상이 된다.


    좌파 세력은 그가 일제강점기에 만주군관학교를 나와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한 것만 부각해

    '독립군 토벌 친일파'라고 매도한다.

    백선엽이 회고록에서 "당시 중공 팔로군과 싸웠고 독립군은 구경도 못 했다"고 했지만 이런 해명은 외면한다. 친일진상조사위백선엽 이름을 친일 명단에 올렸고,

    2012년 민주통합당 청년 비례대표는 그를 '민족 반역자'라고 불렀다.


    ▶이 정권 들어서도 육사6·25 당시 백선엽의 활약을 그린 웹툰을 홈페이지에서 삭제한 일이 있었다.

    그러더니 얼마 전 야당 대표가 백선엽을 찾아간 것을 계기로 백선엽 깎아내리기가 본격화했다.


    열린우리당 의원 시절 "북한 미사일은 미군 기지 공격용일 뿐"이라고 변호했던 광복회장

    연일 "백선엽은 철저한 토착 왜구"라며 거품을 물고,

    여당 의원은 "윤봉길 의사가 분통해할 일"이라고 거들었다.

    김일성 훈장을 받은 김원봉'국군의 뿌리'인 것처럼 추켜세운 대통령의 연설을 다시 듣는 것 같다.


    ▶몇 년 전 향군회장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서 교육받고 일본 체제에서 근무한 것을 탓한다면

    백 장군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인가"라고 했다.


    6·25 때 대한민국에 총구를 겨눴던 인사는 칭송하고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쏘라"며 선봉에 섰던 호국 영웅에겐 침을 뱉는다.


    전도된 의식을 개탄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6/17/2019061702953.html



    한상훈(ile****)2019.06.1815:41:24신고

    백선엽대장의 공적은 누가 뭐라해도 한국전쟁에서의 혁혁한 공적을 부인할 수 없다.
    만약 한때 불가피하게 일본군에 부역했다해도
    우리는 나라를 굳건하게 지킨 그분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그분들이 없었으면 대한민국이 있었겠나?
    우리는 대한민국을 배반한 사람들을 유공자로 치켜세우는 작태를 규탄하고자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6/17/2019061702953.html



    백선엽 "軍 간부들 정신 바짝 차려야"


    조선일보
                             
               
    입력 2019.06.24 01:30

    6·25전쟁 발발 69주년 인터뷰

    6·25전쟁 영웅인 백선엽(99) 예비역 대장은 북한 목선 '입항 귀순' 사건
    군의 대북(對北) 경계 태세 약화에 대해
    "군의 지휘관과 리더십을 발휘하는 위치에 있는 주요 간부들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각자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6·25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이 서울 전쟁기념관 군사편찬연구소 자문위원장실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6·25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이 서울 전쟁기념관 군사편찬연구소 자문위원장실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남강호 기자
    백 장군6·25전쟁 발발 69주년을 앞두고 지난 21일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군의 지휘관과 간부들이 물리적인 자리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자신이 해야 할 책무에 집중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최근 커지는 안보 우려에 대해
    "현 정부 정책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면서도
    "모든 나라가 그렇지만 우리 민족은 특히 지도자의 사고 방향이 중요하다"고 했다.
    국가 지도자의 안보관이 군의 안보 태세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한 것이다.
    백 장군은
    "각 분야의 리더가 보국안민(報國安民)의 정신으로 나라에 봉사한다는 자세로 일한다면
    우리나라는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6·25 발발 70년이 다 되자 세월의 흐름 속에 점차 그 역사적 교훈이 흐려져 가는 것 같다"며
    "시대의 변화가 아쉽다"고 했다.

    백 장군은 최근 친여 성향 인사들이 장악한 단체 등에서
    '백선엽이 일제시대 항일 독립군 토벌에 나섰던 간도특설대에 복무했다'고 주장하는 것과 관련해
    "독립군과 전투 행위를 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했다.
    백 장군은
    "내가 간도특설대로 발령받아 부임해 간 1943년 초
    간도 지역은 항일 독립군도, 김일성 부대도 1930년대 일본군의 대대적인 토벌 작전에 밀려
    모두 다른 지역으로 옮겨 가고 없을 때였다"고 했다.
    간도특설대는 폭파, 소부대 행동, 잠입 등을 주 임무로 했던 일본군 특수부대였다.

    백 장군은 1993년 일본어판 자서전에서
    간도특설대 근무 시절 조선인 항일 독립군과의 전투가 있었던 것처럼 기술한 데 대해선
    "1930년대 간도특설대 초기의 피할 수 없었던 동족 간의 전투와 희생 사례에 대해
    같은 조선인으로서의 가슴 아픈 소회를 밝혔던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올해 한국 나이로 100세를 맞은 백 장군은 부축을 받아야 거동을 할 수 있고 귀도 어두웠지만
    말투는 또렷했다.
    군사편찬연구소 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주말과 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전쟁기념관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주한 미군은 지난 2013년 6·25전쟁미군과 함께 싸운 백 장군을 명예 미 8군사령관으로 위촉했다.
    역대 주한미군사령관들도 이·취임식 행사 때마다 그를 가장 먼저 언급하며 '전쟁 영웅'으로 예우하고 있다.
    하지만 백 장군은 "저는 (전쟁) 영웅이 아니며 같이 싸운 전우 중 한 사람일 뿐"이라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6/24/2019062400062.html

    與野대표 모임 대신 백선엽 찾은 황교안 "김원봉이 국군 뿌리라니"


               
    입력 2019.06.10 17:02 | 수정 2019.06.10 19:35

    黃, 백선엽 장군 만나 "김원봉, 북한군 창설에 기여...6·25 남침 주범 중 한 사람"
    국회 파행 관련해선 "한국당이 힘든 떠돌이 정치...이렇게 만든게 누구인가"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10일
    "북한군 창설에 기여했고 또 6·25 남침의 주범 중 한 사람인 김원봉
    우리 국군의 뿌리가 됐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며
    "이건 정말 말이 안되는 이야기들"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김원봉이 이끄는 조선의용대광복군에 참여한 것을 평가하면서
    "통합된 광복군은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 동맹의 토대가 됐다"고 한 것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왼쪽)가 10일 오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군사 편찬연구 자문위원장실에서 6·25전쟁 영웅인 백선엽 장군을 예방, 백 장군의 저서 '징비록'을 선물받고 있다./연합뉴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왼쪽)10 오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군사 편찬연구 자문위원장실에서 6·25전쟁 영웅인 백선엽 장군을 예방, 백 장군의 저서 '징비록'을 선물받고 있다.
    /연합뉴스
    황 대표는 이날 오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군사 편찬연구 자문위원장실로
    백선엽 장군(예비역 대장)을 예방한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황 대표는 백 장군에게
    "6·25 전쟁 당시 '다부동 전투'에서 제일 마지막 전선을 지켜주셔서
    우리가 다시 (수복하러) 올라올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이 전투로 유엔군이나 미군이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했다.

    백 장군은 1950년 8월 대구에 진출하려던 북한군을 물리치고 낙동강 전선을 지킨 '다부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바 있다.

    황 대표는 "장군님이 밑에서 지키면서 올라오고,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통해서 중간을 잘라서
    양쪽으로 북한군을 궤멸시킬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서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도 했다.

    황 대표는 이어
    "백 장군님이 우리 군을 지켰고, 오늘에 이르게 됐다는 사실이 명백한데
    김원봉이라는 사람이 군의 뿌리가 된 것처럼 말을 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문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에서 김원봉의 광복군 합류를 국군 창설의 뿌리로 연결시킨 데 대해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될 장소에서 (대통령이) 말을 잘못했다"며
    "(한국당이) 김원봉에 대한 실체를 제대로 알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고 했다.

    이에 백 장군은 "6·25 전쟁에서 우리 군이 많은 희생을 당했다"며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 대비를 해야 한다. 안보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했다.
    백 장군은 "안보는 한 단체나 개인이 아니라, 전 국민이 혼연일체가 돼서 지켜야 한다"며
    "안보가 튼튼하고 세계에서 손꼽히는 나라를 건설해달라"고 했다.

    한편 황 대표는 더불어민주당 등이 한국당의 원외(院外) 투쟁을 비판한 것과 관련해 기자들과 만나
    "저희 당이 국회를 나와서 힘든 떠돌이 정치를 하고 있다. 이렇게 만든 게 누구인가"라고 했다.

    황 대표는 이날 문희상 국회의장이 주재한 월례 여야 당 대표 오찬 모임인 '초월회'에
    일정상 이유를 들어 불참했다.
    이에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황 대표가) 원외에 계신다고 원내 발목을 잡지 말고 일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6/10/201906100221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