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12세부터 88세 마지막 해에 이르기까지 일기를 써온 아버지가 있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 자신의 딸에게 유산을 남기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이 평생 몰래 써온 일기장이었다.
그 일기장은 특별한 기록으로 가득했다. 가령 73세 1개월 18일의 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1996년 11월 28일 목요일 소변 줄을 단 채 밖에 나갔다….
본질적인 문제는 다른 데 있다. 당연히 내 것이라 믿고 있었던 오줌 누는 기능이 문제다.
언제나 내 의식에 복종하고, 내 욕구에 따라 작동하고, 내 결정에 따라 충족되던 기능,
그 기능이 이제 내 의지를 벗어나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다니엘 페낙의 소설 '몸의 일기'의 주인공은 몸의 변화를 기록한 자신의 일기장을
생리학 논문이 아닌 비밀 정원, 자신이 가꾼 영토라고 표현한다.
나 역시 죽는 그날까지 일기를 쓴다면, 그것은 결국 낡아가는 몸과 관련된 얘기일 거라고 짐작한다.
고백하면, 얼마 전 내가 쓴 일기의 내용은 몸의 변화, 즉 노안(老眼)과 관련된 것이었다.
한두 달 전부터 책 보는 것이 불편해졌다.
벚꽃이 피던 즈음, 글자가 다소 흐릿해져서 근시용 안경을 벗었는데 글자가 선명해 보였다.
책을 많이 봐야 하는 직업의 특성상 별수 없는 일이라고 위안했지만 쓸쓸함이 밀려왔다.
안과에 갔더니 의사 말이 지금은 초기이지만 점점 더 가까운 것은 잘 보이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멀리 떨어뜨려야 선명해 보일 거라고 말이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작업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적당한 거리란 어느 정도의 거리일까.
궁리 끝에, 노안이 찾아온 까닭은
이제 작은 일에 너무 세세하게 매달리지 말고 좀 더 큰 세상을 보라는 뜻이라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삶이나 사람에 가까이 붙어 아옹다옹하지 말고, 한 걸음 떨어져 크게 보라는 뜻이라고 말이다.
노안이 간격과 거리에 대한 몸의 일기라고 생각하자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그래도 돋보기를 쓰게 되는 날이 되면, 별수 없이 쓸쓸해지긴 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