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5.08 03:09
[99] 서정주 '자화상'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유랑으로 보낸 서정주 시인의 '바람'엔 유랑이 큰 몫을 차지하겠고,
'책'을 재발견한 대학 시절, 나는 평생 생계 걱정이 없어 책만 읽고 살 수 있다면,
그래서 일생을 오로지 인격 도야에만 바칠 수 있다면 얼마나 복된 삶일까, 생각했다.
그러나 곧 수천 권의 명저도 '밥값'을 하면서 읽지 않으면 나에게 피와 살이 될 수 없고,
생존을 위해 분투할 자유와 시련이 없었다면 나는 반쪽 인간밖에 될 수 없었음을 깨달았다.
이 정부는 우리 국체(國體)를 '자유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로 바꾸려는 개헌을 시도하다가
반대에 부딪혀 물러섰다가 이번엔 차기 교과서 개편안에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바꾸겠다고 한다.
자유민주주의나 민주주의나 같은 말이라면서 왜 단 두 글자를 말살하지 못해 그리도 안달을 할까?
'자유'는 왜 좌파에게 원수스러운가?
자유는 그저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어디서 외식을 할까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자유는 인간의 의식과 의지 형성의 필수 촉매이고,
자유를 박탈당하고 산 사람은 사육(飼育)된 동물보다 나을 것이 없다.
자유의 순기류를 타고 날아보기도 하고, 자유의 강풍에 전력으로 맞서보기도 하면서
자기 삶의 주체적 경영자로 성숙하지 못한 인간은 천부(天賦)의 인권을 박탈당한 서글픈 존재이다.
그런 사육된 시민을 자살 특공대로 내몰 수는 있지만
그들과 나라가 나아갈 길, 인류가 지향해야 할 목표를 의논할 수는 없다.
이 정부는 정부가 트위터 날리면 일제히 '좋아요'를 누르고,
희대의 살인마도 대통령과 다정히 산책하고 껴안으면 아이돌 가수처럼 애호하는
생각 없는 국민을 만들기 위해 '자유'를 암매장하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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