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4.17 03:01
TV조선 '대군' 실제 모델 '안평(安平)' 출간한 심경호 교수
"세종의 문화 정책 주도했지만 兄 수양의 적으로 죽음 내몰려"
![심경호 교수](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804/17/2018041700179_0.jpg)
"그가 과연 야심가였는가, 아니면 희생자였는가 하는 질문이
집필하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결론은 이랬죠.
그의 시대는 학문과 예술이 권력으로부터 해방돼 독자적인 영역을 형성하지 못했던 시기였습니다.
안평대군의 비극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이자 조선 초 대표적인 서예가로 알려진 안평대군(1418~1453)에 대한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이자 조선 초 대표적인 서예가로 알려진 안평대군(1418~1453)에 대한
1200여쪽 분량의 연구서가 나왔다.
심경호(63·작은 사진)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가 쓴 '안평(安平)―몽유도원도와 영혼의 빛'(알마)이다.
마침 안평대군과 수양대군을 모티브로 한 TV조선 사극 '대군―사랑을 그리다'가 인기가도를 달리면서
안평대군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심 교수는 안평대군의 꿈을 바탕으로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를 1983년 일본에서 처음 보고
'그림이 생각보다 어둡고, 거기에 쓴 안평대군의 글이 신비롭고 형식이 제각기 다르다'는 데
깊은 인상을 받았다.
1990년 무렵부터 안평에 대한 자료를 모으며 집필 작업에 들어갔는데, 의외로 자료가 많지 않았다.
"편찬자들이 이름을 드러내지 못할 만큼 날조가 심한 '단종실록'을 통해서는
안평대군의 실상을 파악하기 어려웠습니다.
그가 직접 쓴 시문(詩文)과 다른 기록을 샅샅이 훑어야 했지요."
![TV조선 ‘대군’에서 안평대군을 모티브로 탄생한 은성대군 역의 배우 윤시윤. 심 교수는 그를 “세종 시대의 문화 정책을 주도한 인물”이라고 말했다.](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804/17/2018041700179_1.jpg)
28년의 연구 끝에 심 교수가 복원한 '안평의 초상'은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후대에 칭송을 받은 명필(名筆)에서 그치는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출판과 예술을 비롯해 세종 연간의 문화 정책을 주도했던 인물이라고 봐야 합니다."
안평대군은 '훈민정음' 창제 과정에서 한자 표준음 연구서인 운서(韻書) '동국정운' 등의 제작 책임을 맡았고, '용비어천가'에 등장하는 질 높은 한시들을 짓기도 했다.
"안평대군이 맡았던 고전 정리 작업의 수준이 높아 깜짝 놀랄 정도였습니다."
'몽유도원도' 제작 당시 안평대군의 꿈과 관련한 글을 남긴 사람은
'몽유도원도' 제작 당시 안평대군의 꿈과 관련한 글을 남긴 사람은
집현전 학사 등 그와 가까웠던 인물들이었다.
그런데 심 교수는 이들에 대해
"단순히 시를 같이 짓던 모임이 아니라, 운서를 같이 편찬하던 학문적 동지였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모임'이 '세력'으로 비치면서 안평대군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됐다는 것이 심 교수의 설명이다.
이 같은 '모임'이 '세력'으로 비치면서 안평대군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됐다는 것이 심 교수의 설명이다.
"안평은 매화와 대나무를 뜻하는 매죽헌(梅竹軒)이란 호에 걸맞을 만큼
맑은 정신세계를 유지한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는 문학예술의 모임 자체가 권력 행위로 간주되던 때였고,
국왕의 아들인 안평대군은 정치적 위험인물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왕위를 노리던 안평대군의 형 수양대군(훗날 세조)은 정치적 대결 구도를 만들기 위해 '적'이 필요했다.
왕위를 노리던 안평대군의 형 수양대군(훗날 세조)은 정치적 대결 구도를 만들기 위해 '적'이 필요했다.
안평은 이 조건에 잘 맞았기 때문에 친형에게 죽임을 당했다.
하지만 안평이 남긴 글 어디에도 정치적 야심의 흔적은 없었다고 심 교수는 전했다.
그는 "수양은 안평이 맞은편에 버티고 있다고 생각하고
섀도 복싱(shadow boxing·상대 없이 혼자 하는 권투 연습)을 한 셈"이라고 했다.
심 교수는 순수 예술의 세계를 꿈꾸던 안평의 삶을 '35년간의 몽유(夢遊)'라고 평가하면서
"학문과 예술이 권력으로부터 홀로 선다는 것은 현대 한국에서도 여전히 위험한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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