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문의 뉴스로 책읽기] [36] 왕족으로 태어난 재앙
입력 : 2017.02.21 03:03
윌리엄 고드윈 '칼렙 윌리엄스'
추강(秋江)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
낚시 드리우니 고기 아니 무노매라/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 배 저어 오노매라.
장자 계승법에 따른다면 조선조 9대 왕이 돼야 했지만
장자 계승법에 따른다면 조선조 9대 왕이 돼야 했지만
권신 한명회의 사위였던 동생(성종)에게 밀려서 일생을 음풍농월하며 살아야 했던 월산대군의 시조다.
왕위에 오르지 못했을 뿐 아니라 행여나 왕좌를 넘본다는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낚시나 다니면서 세월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그의 처량한 신세가 가슴 아리도록 선명히 드러난다.
동서고금의 무수히 많은 왕자가
단지 왕위 계승권을 주장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갖가지 모함을 받고 비참한 죽임을 당했다.
자신은 왕좌에 대한 욕심이 없더라도 '예방'적으로 제거되거나
그를 옹위해서 보위에 올리고 권력을 잡으려는 신하들의 유혹과 모의의 희생양이 됐다.
중국 삼국시대 위왕(魏王) 조조가 죽은 뒤 등극한 아들 조비는 영특한 동생 조식을 제거하려 했다.
조식은 칠보시(七步詩)로 목숨을 부지했지만 형의 견제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결국 일찍 죽었다.
46세에 생을 마감한 김정남은
후계자 자리에서 밀려난 시점부터 죽음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운 날이 없었을 것이다.
18세기 말 영국의 '원조' 급진사상가였던 윌리엄 고드윈의 소설 '칼렙 윌리엄스(Caleb Williams)'에는
증오의 표적이 돼 쫓기는 자의 공포와 고난이 너무나 생생히 그려져 있다.
지방 귀족인 포크런드는 비서인 칼렙이 자기 고뇌의 이유를 눈치챈 듯하자 살인 전력을 고백한다.
그러고는 비밀을 알게 된 칼렙을 죽도록 증오하게 된다.
칼렙을 죽이겠다고 위협하고 무고해 감옥에 보내고
석방된 후에는 가는 곳마다 미행해 어디서도 뿌리를 내려 살 수 없게 한다.
이제는 김정남의 남은 가족들마저 공포의 세월을 살아야 할 테니 참으로 애처롭다.
그 잔혹, 담대함과 수법 및 도구로 볼 때, 김정은이 저지른 게 뻔한 형제 살인을 두고도
그 잔혹, 담대함과 수법 및 도구로 볼 때, 김정은이 저지른 게 뻔한 형제 살인을 두고도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위기를 모면하려고 벌인 짓이라고 음모론을 퍼뜨리는 세력이 있다.
이번만 그런 게 아니다. 이들은 북이 테러를 저지를 때마다 '남한 음모론'을 폈다.
아웅산 테러, KAL 858기 폭파, 천안함 폭침까지 모조리 대한민국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이었다면 누군지 밝혀내 고사포로 처형했을 인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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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2/20/201702200288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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