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5.19 03:00
신의 아들을 죽였다는 이유로 긴 세월 고난 속에 보낸 유대인
1965년 바티칸 공의회에서 '예수의 죽음과 무관' 판명받아
'아버지' 같은 종교 간 싸움은 개인보다 집단 앞세운 비극

엉덩이가 예쁜 남자, 멜 깁슨이 연출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는
제작 전부터 논쟁에 휘말렸던 작품이다.
사람들은 마음으로 신의 말씀을 듣고 제작을 결심했다는 멜 깁슨의 고백에서
꿈에 십자가를 보고 그리스도교를 공인했다는 콘스탄티누스 황제를 떠올렸다.
갑자기 웬 착한 척? 방탕했던 남자 배우와 피도 눈물도 없었던 황제는 그렇게 마케팅 선후배가 됐다.
딱딱 맞아떨어지면 의심이 더 짙어지는 법이다.
예수 역을 맡은 제임스 카비젤은 예수와 이름 이니셜(J C)이 같았다.
게다가 출연 당시 그의 나이는 서른셋으로 예수가 죽은 나이다.
논쟁의 핵심은 유대인들이 예수의 죽음과 관계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영화의 입장이었다.
기독교가 외래 종교인 우리 입장에서야 2000년 전 일이 뭐 그렇게 중요해? 하겠지만
기독교 문명인 서양인들에게는 매우 현실적인 문제다.
신의 아들을 죽였다는 이유로 유대인들은 긴 세월을 고난 속에서 보내야 했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을 보면 샤일록이 빨간 모자를 쓰고 나온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을 보면 샤일록이 빨간 모자를 쓰고 나온다.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빨간 모자는 유대인이라는 표지(標識)로 그들은 항상 자신이 유대인임을 밝혀야 했다
(이 표지는 나중에 가슴에 다는 다윗의 별로 이어진다).
거주권은 박탈돼 게토라는 성벽 안에 모여 살아야 했고 해 떨어지면 밖으로 나올 수도 없었다.
토지나 가옥 같은 부동산도 인정되지 않았다.
샤일록이 대부업에 종사한 건 그들이 가질 수 있던 것이 오직 돈뿐이었기 때문이다.
파리 목숨이었던 유대인들이 그나마 숨을 돌린 건
모든 인간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1789년의 인권 선언 이후부터다.
영화는 예수 체포에서 처형까지 12시간 동안의 이야기다.
영화는 예수 체포에서 처형까지 12시간 동안의 이야기다.
야밤에 잡혀 아침에 채찍질을 당하고 바로 십자가에 매달렸다.
채찍질은 살이 떨어져 나가는 가혹한 형벌이다.
유대의 채찍질에는 관용이 있었다. 남자는 대변, 여자는 소변을 지리면 집행정지다.
로마는 법대로!의 나라다. 선고한 대로 다 때린다.
채찍질을 가하고 십자가에 예수를 매단 이는 로마인 병사가 아니었다.
이들은 속주에서 징발된 병사들로 사마리아인들이다.
영화 속에서 이들은 채찍질을 하면서 끊임없이 유대인을 모욕하는 발언을 한다.
사마리아인은 유대인을 증오했다.
십자가 처형은 노예와 정치범에게만 가하는 형벌이다.
스파르타쿠스 반란으로 6000명의 노예가 십자가에 매달렸다. 그러니까 예수는 정치범이었다.
예수 대신 풀려난 바라바도 강도라고 나오지만 실은 반란을 모의한 정치범이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올라간 길은 '고난의 길'이라는 뜻의 비아 돌로로사다.
이 길은 지금도 보존돼 순례자를 맞고 있는데 대략 800여m 정도다.
복원하면서 고증이 빠졌나 보다.
폰티우스 빌라투스(본디오 빌라도)가 예수에게 사형을 선고하면서
"너희끼리 알아서 해. 나는 손 씻을래" '셀프 사면'을 선언한 곳은 헤롯 왕의 궁으로
처형장과의 거리는 100m 정도다.
![[남정욱의 영화 & 역사] 고비용 때문에 사라진 십자가 처형](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605/18/2016051803298_1.jpg)
사람을 매달려면 그 사람의 체중과 맞먹는 중량의 십자가가 필요하다.
물론 중간에 교대하긴 했지만
아침부터 죽기 직전까지 매를 맞은 사람이 그걸 진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십자가의 세로 기둥을 파티불룸이라고 하고 가로 기둥은 스티페스라고 한다.
사형수들은 어깨에 스티페스만 지고 형장으로 향했다.
형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파티불룸의 위쪽은 볼록 튀어나와 있고 스티페스의 중간은 거기에 딱 맞게 파여 있다. 그 요철을 끼워 맞추면 비로소 십자가가 완성된다.
실제로는 십(十)자라기보다는 영어 T자에 가깝다.
이 요철은 규격이 정확해서 각기 다른 지역의 파티불룸과 스티페스를 결합해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일종의 로만 스탠더드인 셈이다.
십자가 처형은 인건비가 많이 들어가는 형벌이다.
십자가 처형은 인건비가 많이 들어가는 형벌이다.
그래서 기독교 박해 말기에는 십자가 대신 경기장에 몰아넣고 맹수 등을 이용해 죽였다.
사나운 이빨에 물려 죽은 억울한 목숨이 대략 50만명 정도라고 한다.
영화 속에서 유대인들은 예수를 총독에게 끌고 갔으며 사형을 내리도록 총독을 협박했다.
반면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예수의 죽음과 유대인이 무관하다고 공식 선언한 바 있다.
그러나 정작 유대인들이 들으면 코
웃음 칠 일이다.
유대인의 역사에는 메시아가 다녀간 기억이 없다.
오지도 않은 메시아를 죽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똑같이 아브라함(Abraham)을 신앙의 선조로 섬긴다고 해서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를 A종교라고 부른다.
아버지는 같은데 자식들은 오늘도 서로 피 터지게 싸우고 있다.
개인을 위한 종교가 집단을 위한 종교로 바뀌면 이런 일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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