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12.21 09:03
'어? 저거 혹시 유행인건가?'
올해 길거리에서 유난히 많이 보였던 '옷'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당신의 옷장 속에서 '열일' 했던, 그리고 잠자던 구매 욕구를 불태웠던 패션 아이템을 꼽아봤습니다.
촌스러운 그것이 신발을 뚫고 나오다
하이힐에 양말 신는 여자와 샌들에 양말 신는 남자. 이 '패션 테러리스트' 냄새가 풀풀 풍기는 조합은 뭘까.
그동안 양말은 '안 보이게' 신어야 멋이었다.
신발 속에 쏙 감춰질 수 있는 발목 양말이나 덧신이 한동안 유행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올봄, 그런 '촌티의 상징'이 당당히 세상 밖으로 나왔다.
사실 남성복에서 양말 패션이 유행한 지는 꽤 되었다.
정장 바지를 입고 앉았을 때 발목이나 정강이가 보이면 아저씨,
개성있는 양말이 보이면 오빠라는 구별법이 있을 정도다. [오빠와 아저씨는 한 끗 차이]
올해 도드라진 건 여성 쪽이다.
여성들은 발끝이 보이는 구두나 샌들에 양말을 신어 소녀적인 느낌을 풍기거나,
운동화와 양말의 조합으로 경쾌함을 더했다.
패션 디자이너들은 일하는 여성이 늘며 실용적 패션이 대세가 되고,
이 때문에 편안하면서도 세련된 양말이 주목받는다고 분석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양말만을 취급하는 전문 브랜드도 속속 생겨났다.
비비안 등 스타킹 브랜드에서도 레이스나 자수 장식을 더한 양말을 경쟁하듯 출시했다.
비싼 양말은 한 켤레에 10만 원을 넘는 것도 있다고 하니, 그 위상 변화가 가히 놀랍다.
봄에 시작된 양말 열풍은 찬바람이 불며 양말과 부츠가 결합된 '삭스부츠' 유행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쯤 되면 '양말'이란 것이 한마디 할 법도 하다.
'너희들의 가장 더러운 곳을 감싼다고 날 무시했던 인간들아, 사실 나 먼 옛날에도 부의 상징이었어!'
미세먼지가 바꾼 길거리 패션
보통 연예인들이 신분을 숨기거나 민낯을 가리기 위해 착용하던 '검은 마스크'가 대중화됐다.
매년 봄이면 마스크를 쓰는 사람이 꽤 있었지만, 이것이 본격 '마스크 패션'으로 발전한 해이다.
아이돌의 공항 패션에는 마스크가 필수로 등장했고, 이를 본 10대들은 교복+마스크 조합을 완성시켰다.
이러한 '마스크 열풍'은 해가 갈수록 심해지는 미세먼지 때문이다.
사실 멋보단 건강이 목적인 셈.
하지만 너도나도 하는 똑같은 아이템은 싫은 법이다.
온라인 쇼핑몰을 중심으로 색깔·패턴을 다양화하거나 자수를 새겨넣은 마스크 등이 등장했다.
YG엔터테인먼트는 아예 삼성물산과 손잡고
군복·해골 무늬 등을 새긴 일명 '스웨그(swag·허세나 자유분방함을 상징)' 넘치는 마스크를 출시했다.
기능에 초점을 둔 첨단 마스크도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일본의 유명 마스크 브랜드 '노도누루'의 제품은 스팀 기능이 있어 목을 촉촉하게 유지시켜 준다고 해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다.
이밖에도 필터를 교체할 수 있는 마스크, 화장이 잘 안 지워지는 마스크, 안경에 김이 생기지 않는 마스크 등 다양한 아이디어 제품이 쏟아져 나온다. [마스크에 푹 빠진 일본]
황사나 미세먼지 등 오염물질이 달라붙지 않는 '방진(防塵) 재킷'도 나왔다.
'안티 폴루션(Anti-Pollution·오염방지)' 패션의 시대는 이제 시작인 듯하다.
어쩐지 씁쓸한 유행이지만 이왕이면 건강과 멋 두 마리 토끼를 잡아보는 건 어떨까.
참고로 영국 가디언의 팁에 의하면,
여성의 경우 마스크 착용시 눈썹을 진하게 그리고 머리를 올려 묶는 것이 어울린다고 한다.
잠옷 아니죠, '파자마 패션'이죠
하루에 '잠옷'을 네 번 갈아입고, 그 잠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빅뱅 태양의 모습을 보고
시청자들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충격 하나 더. 그의 옷장에 촘촘히 걸린 그 옷들은 한 벌에 20만 원이 넘는 '브랜드 잠옷'들이다.
우리가 잠옷과 동격으로 여기는 '파자마(pajama)'는 인도인들이 입던 통 넓은 바지에서 유래했다.
잘 때 입는 옷이라기 보다는 '라운지 웨어(lounge wear·집에서 휴식을 취할 때 입는 옷)에 가깝다.
그런데 왜 집에서 입는 옷을 굳이 밖에 입고 나오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이를 편안하고 자유분방한 패션 유행이 확장된 것으로 본다.
트레이닝복을 일상복처럼 입는 '애슬레저룩(애슬래틱(atheletic)과 레저(leisure)의 합성)'이나
'원마일 웨어(one-mile wear·집 앞 1마일 이내에서 입을 수 있는 옷)'의 유행도 이와 비슷한 흐름이다.
실제 올 초 런웨이에서 파자마 셔츠와 슬립 등을 외출복으로 입은 의상이 대거 나왔다.
하지만 누가봐도 '나는 잠옷이요' 하는 옷들을 일상에서 매치하기란 쉽지 않다.
이 때문인지 한국에선 파자마 패션 중 가장 난이도가 낮은 '로브(robe)'가 인기였다.
이효리가 제주도 소길리 집에서 툭 걸치고 있던 바로 그 가운이다.
로브도 본래 실내복이지만, 하이힐이나 운동화, 청바지 어디에든 카디건 대신 걸치면 외출복으로 손색이 없다. 단, '파자마 패션'을 연출할 땐 캐릭터나 동물 무늬가 있는 건 피하는 게 좋다.
진짜 '자다 나왔냐'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말이다.
있는 그대로가 아름다워
편안함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패션 유행은 속옷까지 스며들었다.
여성들이 '볼륨'을 포기한 것이 가장 파격적이다.
가슴을 위로 받쳐 올리는 철사(와이어)도, 가슴을 커 보이게 만드는 패드도 없는 홑겹 브래지어,
'브라렛(bralette)'이 대세로 떠올랐다.
이게 뭔가 싶겠지만, 브라렛을 한 번 입어본 여성들은 '브라의 신세계가 열렸다'며 놀라움을 표한다.
브라렛의 유행은 인위적인 것은 배척하는 자연주의와
'몸 긍정성(body positive·내 몸 그대로를 사랑하고 가꾸는 것)' 열풍 때문이다.
유명 란제리 브랜드들이 일제히 '브라렛'을 출시했는데,
미국의 빅토리아 시크릿은 '더 이상 패드는 필요 없다'는 광고 문구를 내걸어 여성들을 열광케 했다.
펑퍼짐한 옷으로 배를 가리는 것이 정석이던 임신부 패션도 180도 달라졌다.
요즘의 젊은 임신부들은 몸에 딱 붙는 스키니 패션을 즐긴다.
임신한 것이 숨길 일도 아닐 뿐더러 '임신부가 왜 패션을 포기해야 하나'는 심리가 반영된 것이다.
탁 트인 해변, 꽁꽁 싸맨 래시가드는 그만
배우 하석진은 언젠가 '래시가드를 증오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 그가 올해는 증오심을 조금이나마 덜었을 것 같다.
상체를 꽁꽁 감추는 래시가드의 인기가 다소 수그러들었기 때문이다.
래시가드를 밀어낸 올여름 핫 아이템은 '모노키니(monokini)'였다.
모노키니는 허리나 등, 가슴 부위를 깊이 도려낸 원피스 수영복.
디자인에 따라 비키니보다 더 파격적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실제보다 허리선이 높은 '하이웨스트(high waist)' 비키니를 찾는 사람도 늘었다.
1950년대 유행한 복고풍이다.
일반 비키니보다 노출이 적으면서도 적당히 몸매를 드러낼 수 있다는 점이
'은근한 노출'을 선호하는 오늘날 트렌드를 잘 반영한다.
그렇다고 래시가드가 완전히 '한물간' 아이템이 된 건 아니다.
다만 2~3년 새 너도나도 래시가드를 출시해 공급 과잉 상태가 됐고,
디자인의 한계 등으로 소비자들이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렸다는 분석이다.
다만 아동용은 여전히 래시가드가 강세였다.
업계 전문가들은 "래시가드가 가고 모노키니가 온 게 아니라, 수영복 종류가 다양해진 것"이라고 진단한다. [래시가드는 한물갔다?]
'파워 여성'들이 선택한 그 아이템
'킹스맨'의 후속으로 '킹스 우먼'이 나올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올가을, 명품·SPA 브랜드 할 것 없이 일제히 주력 상품으로 '여성 정장'을 내놨기 때문이다.
구찌, 발렌시아가와 같은 명품 브랜드 디자이너들은
독일의 메르켈 총리와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을 보며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언뜻 보면 남성복 같이 보이는 디자인이 이번 시즌 눈에 띄는 특징이다.
일명 '매니쉬(manish·남성적인) 룩'이다.
하의는 치마보다 바지가 인기였으며,
재킷의 각진 어깨와 넓은 라펠(재킷의 칼라(collar) 부분)도 남성 정장에서 차용한 것들이다.
'쫙 빼 입은' 정장이 부담스러운 여성들은 하이힐 대신 스니커즈를 매치해 편안함과 발랄함을 살렸다.
가을만 되면 유행하는 '체크'도 올해는 남녀 구분이 사라졌다.
작은 격자무늬가 모여 큰 격자를 만드는 '글렌체크(glen check)'가 여성복에 들어간 게 대표적.
영국의 전통적인 신사복을 대표하는 무늬였지만,
국내 여성 스타 이하늬·김나영·조보아 등은 하나같이 이 '신사의 상징'을 택했다.
패션 전문가들은 여성의 바지정장 열풍이 2018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정장을 찾는 여성들이 많아졌다는 건, 우리 사회에 '파워 여성'이 늘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한 땀 한 땀… 나만의 작은 사치
벌·나비·꽃 자수가 새겨진 핸드백이라니.
패션에서 '미니멀리즘(minimalism·단순함)'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경악할 만한 이 아이템,
그런데 의외로 잘 팔린다.
패션계의 자수 열풍은 사실 지난해부터 시작됐다. 명품 브랜드 '구찌'가 그 선봉에 있다.
구찌는 돌연 화려한 자수 패치를 붙인 여성 핸드백을 내놨는데, 이것이 돌풍을 일으켰다.
'다소 촌스러운' 자수 패치가 덕지덕지 붙은 명품백이 왜?
전문가들은 '나만의 아이템'을 갖고 싶어하는 심리가 반영된 결과라고 입을 모른다.
패치나 스티커를 별도로 구입해 'DIY 백'을 직접 만드는 사람도 적지 않다.
스티커 패치 한 장에 10만 원 안팎인데도 없어서 못 팔 정도라고.
핸드백에서 시작된 자수 열풍은 재킷, 원피스, 스니커즈 등 모든 패션 아이템으로 번졌다.
본래 패치(patch)는 옷의 구멍이나 얼룩을 가리기 위해 덧대는 헝겊을 뜻했다.
패션의 변두리에 있던 이 헝겊 조각과
마치 할머니가 손녀 옷에 한땀 한땀 수놓아 준 것 같은 자수 문양이 만나 이런 트렌드를 이끌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펭귄·김밥이라 불려도, 난 입으련다
사계절을 통틀어 가장 폭발적인 인기를 끈 아이템은 단연 '롱 패딩'이다.
본래 롱 패딩은 패션계에선 크게 주목받지 못한 아이였다. 부하고 투박해 보인다는 이유였다.
대신 벤치에 앉아 쉬는 운동선수나 장시간 야외에 있어야 하는 영화 촬영 스태프들이 애용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펑퍼짐한 롱패딩'(참고로 허리선이 들어간 형태의 롱패딩은 2013년 크게 히트했다)의
유행은 올해 절정을 찍은 듯하다.
10대들 사이에선 롱패딩이 노스페이스와 캐나다구스를 잇는 '등골 브레이커'로 등극했다.
그러자 일부 학교에서 교복에 롱패딩을 금지하는 웃지못할 일도 벌어졌다.
평창올림픽 홍보를 위해 제작된 '평창 롱패딩'은 롱패딩 열풍에 더욱 불을 지폈다.
'가성비가 좋다'고 소문난 14만9000원짜리 '평창 롱패딩'을 손에 얻기 위해
700여 명이 백화점 앞에서 노숙을 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롱패딩에 이토록 열광하는 현상을 보고, 일부에선 '따라민국'이라는 자조적인 목소리를 낸다.
과거에도 우르르 몰렸다가 금세 열기가 식어버리는 유행 아이템이 적지 않았던 탓이다.
하지만 유행 따라가는 게 아니라 '진짜 따뜻해서 입는 것'이란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사실 무릎·종아리까지 덮는 롱패딩은 혹독한 한파를 이기는 데 제격이다.
한혜연 스타일리스트는
"키가 작은 여성이라면 롱패딩 안에 하의를 짧게 입고 롱부츠를 신어 균형을 맞추라"고 팁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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