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세상

[시]송년회 - 황인숙 (정끝별 교수, 조선일보)

colorprom 2017. 12. 20. 15:11


[정끝별의 시 읽기 一笑一老] 송년회

  • 정끝별 시인·이화여대 교수


입력 : 2017.12.18 03:10

송년회

칠순 여인네가 환갑내기 여인네한테 말했다지
"환갑이면 뭘 입어도 예쁠 때야!"
그 얘기를 들려주며 들으며
오십대 우리들 깔깔 웃었다

나는 왜 항상
늙은 기분으로 살았을까
마흔에도 그랬고 서른에도 그랬다
그게 내가 살아본
가장 많은 나이라서

지금은, 내가 살아갈
가장 적은 나이
이런 생각, 노년의 몰약 아님
간명한 이치
내 척추는 아주 곧고
생각 또한 그렇다(아마도)

ㅡ황인숙(1958~)('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 문학과 지성사, 2016)

[정끝별의 시 읽기 一笑一老] 송년회
칠순을 훌쩍 넘긴 노시인께서 마흔을 갓 넘긴 나를 지긋이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뭘 해도 참 예쁠 나이다!
그때는 나도 속으로 깔깔 웃었다.

마흔 즈음에 나는 이제부터는 늙겠구나라는 헛헛함에
급기야는 양희은'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를 듣다 운전대를 부여잡은 채 울컥했더랬다.
터무니없는 조로(早老) 였다. '늘' 인생 청춘이었는데 말이다.

오십을 한참 넘긴 지금도 이제는 늙었구나라는 우울감에 휩싸이기 일쑤다.
'아직' 내 척추와 내 생각과 내 걸음은 곧고 곧은데도 말이다.
그러니 남들이야 '노년의 몰약'이라 하든 말든
"내가 살아갈/ 가장 적은 나이"가 바로 지금이니, 우리는 앞으로!
'늘 오늘'과 '작금의 지금'이 바로 청춘이니 또 앞으로,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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