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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 사물극장] [11] 담배, 프로이트의 욕망을 비춘 거울 (조선일보)

colorprom 2017. 9. 7. 13:40


[장석주의 사물극장] [11]

담배, 프로이트의 욕망을 비춘 거울

  •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입력 : 2017.09.07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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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는 위대한 시와 철학, 소설과 영화에서 자주 다루는 소재다.

한 시인은 "인생은 담배이며/ 불똥, , 그리고 불 자체이다"라고 노래한다.

담배는 불을 붙이고 연기를 깊이 빨아들이는 의식으로 세계를 유혹해왔다.

담배가 암의 원인이고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악의 표상으로 원성을 사지만,

한쪽에서는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고, 모든 이의 피로를 누그러뜨리고 덧없는 위안을 선사하는 벗으로

칭송받는다.

담배는 불안과 슬픔에 마법을 걸어 잠재우는 부적(符籍)이다.

'꿈의 해석'이나 '정신분석 이론'으로 유명한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 1939)는 애연가였다.

스물네 살 때 처음 담배를 피우기 시작해 평생 입에 시가를 물고 살았다.

새벽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다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입술에서 시가가 떨어질 줄 몰랐다.

골초였던 프로이트는 흡연의 해독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자신의 개인 주치의였던 슈르의 권고로 몇 번이나 금연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결국 끊지 못했다.

"이 즐거움을 결코 빼앗기고 싶지 않다.

나는 이 습관을, 아니 이 악덕을 충실하게 지켜왔고,

작업 능률이 증대한 것이나 나를 통제할 수 있었던 것도 시가 덕분이다."


프로이트에게 흡연 행위는 반항과 저항을 뜻했고,

나중에는 "쾌락과 위험의 탁월한 결합체"인 이 담배의 즐거움을 아무 죄책감 없이 누리고자 했다.

그는 정신분석학에서 자신이 거둔 탁월한 성과의 반은 담배의 몫이라고 말했다.

흡연이 지적 작업의 촉매이자 자양분이었다고 확신했음이 분명하다.

"담배가 이렇게 맛있을 수가 없어!"

발갛게 불꽃을 피우며 타오르는 담배의 쾌락에 탐닉했던 프로이트에게

흡연은 원초적 욕구이고 떨쳐내지 못한 쾌락의 궁극이었을 테지만

흡연만큼 욕망의 덧없음을 보여주는 것도 없다.

흡연에의 욕망은 곧 자기 소멸에의 욕망과 다를 바 없다.

흡연하는 이들은 자기 존재를 불쏘시개로 쓰는 것이다.


애연가에게 담배는 집중의 찰나와 대체되지 않는 쾌락을 선물하는 대상이자

무익한 욕망에 탐닉하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하는 사물일 테다.

그래서 누군가는 "담배는 숭고하다!"라고 외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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